사망노동자 어머니가 말한 '쿠팡 공화국'…"쿠팡은 하나의 나라였다"

'쿠팡 공화국'에 던지는 고(故) 장덕준 어머니의 마지막 호소
"벌레 보듯 노동자 취급… 그 위에서 이윤을 쌓았다"
"5년전에도 반짝 관심…지금의 관심, 잊힐까 두려워"
"이번에 바뀌지 않으면 제2,제3의 덕준이 계속 나올 것"

연합뉴스

2020년 10월, 쿠팡 대구 물류센터에서 심야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故 장덕준 씨. 그로부터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어머니 박미숙 씨의 시계는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다.
 
10일 '주말엔 CBS'에 출연한 박 씨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속에 담긴 분노는 날카롭고 단단했다. 그녀는 쿠팡을 단순한 기업이 아닌, 법과 도덕이 통하지 않는 '쿠팡 공화국'이라 명명했다.

 "노동자를 벌레 보듯… 새벽 배송은 누군가의 밤잠과 바꾼 것"

2020년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과로사한 故(고) 장덕준씨에 대한 사측의 산재 은폐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모친 박미숙씨. 연합뉴스

박미숙 씨는 쿠팡의 급성장 이면에 숨겨진 '야간 노동의 비극'을 지적했다. 과거 대형마트 규제 등으로 사라졌던 야간 노동과 일요일 강제 노동이 쿠팡의 등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도 처음엔 야간 노동을 없애야 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새벽 배송 없이는 못 산다'는 소비자들 눈치를 보며 말을 바꿉니다. 기업은 그 틈을 타 로비를 하고 세를 불렸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사람 대접이 아니라 '벌레 보듯' 취급당했습니다. 단 잠깐의 휴식도 허용하지 않는 가혹한 노동 환경, 하지만 기업은 '단순 업무'라며 본질을 흐립니다."
 
그녀는 소비자의 편리함이 결코 누군가의 죽음보다 우선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 누군가 지금 이 고통 속에 있다는 건 그 고통을 기반으로 편리함을 느끼고 살잖아요. 우리가 누리는 새벽 배송은 누군가의 밤잠과 목숨을 맞바꾼 결과물입니다."

 

 "죽은 자의 서명도 위조…회원 정보도 사라져"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다. 윤창원 기자

박 씨는 쿠팡의 조직적인 '자료 조작' 의혹도 제기했다. 박 씨는 산재 신청 시와 민사 소송 시 쿠팡이 제출한 자료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아들의 생전 사인을 그대로 복사해서 새로운 계약서에 붙여 넣었더라고요.저희는 4년 5년을 지나오면서 산재 때 받은 자료하고 민사 소송 때 받은 자료를 비교를 해 보니까 찾을 수 있었지 이게 아니라면 지나가 버렸을 일이에요. 쿠팡이라는 나라로 자기들이 마음대로 조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는 저희가 대응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심지어 아들이 생전 이용하던 '와우 회원' 정보마저 사망 직후 사라졌다고 한다. "회원 탈퇴를 한 적도 없는데 정보가 없대요. 자기들이 가진 정보를 이용해 불리한 기록은 지우고, 직원들은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며 입맛대로 휘두르는 거죠.  쿠팡은 자기들만의 법으로 다스리는 '쿠팡 공화국'인 겁니다."
 

장례식장에서부터 시작된 철저한 '차단'

박 씨는 아들의 사고 이후 찾아갔던 다른 노동자들의 장례식장 풍경을 회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21년도였죠. 고시원에서 숨진 택배 기사님의 장례식장을 갔는데, 이미 쿠팡 측 사람들이 입구를 딱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유족과 회사 관계자 외에는 누구도 못 들어오게 다 잘라버렸어요. 인사만 겨우 하고 쫓겨나다시피 나왔습니다."
 
그녀는 이것이 쿠팡이 사건을 덮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목천 물류센터 조리원 사망 사건 당시에도 유족이 산재 신청을 받기 위해 1년 넘게 길거리에서 피켓 시위를 하며 고통받아야 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거대 기업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폭로했다.
 

아직도 보관 중인 '웨하스'

박 씨는 아들에 대해 '늘 가족부터 챙기던 아이'로 기억했다. 휴대전화 번호도 '든든한 놈'으로 저장했다고 한다.  덕준 씨는 동생에게 사다 준 웨하스를 끝내 건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박 씨는 그 과자를 아직 집에 보관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첫 차를 기다리며 웨하스 하나를 집어 들고 나오는 모습이 찍혀 있었는데 그 웨하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에 쥔 채 집으로 올라오는 장면이 마지막이었어요. 동생이 좋아하는 걸 기억해 늘 그렇게 챙겼던 아이예요."

고된 야간노동을 이어가면서도 덕준 씨는 집에 돌아오면 늘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올리는 대신 부모가 걱정할까 먼저 마음을 다잡았다는 것이다. 박 씨는 그 착함이 결국 아이를 버티게 했던 것 같아 마음이 더 아프다는 말도 전했다.

 "잊혀질까 무섭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

박종민 기자

박 씨는 청취자와 독자들을 향해 간곡한 당부를 남겼다. 그녀가 가장 두려운 것은 쿠팡의 보복이 아닌 '세상의 무관심'이었다.

"5년 동안 이렇게 싸워왔어요. 잠시 주목받다 잊히면 또 다른 덕준이가 나옵니다. 이번에 제대로 심판하고 바꾸지 않으면 이 죽음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덕준이는 정말 '진실된 노동, 정직한 노동'을 했어요. 그런데 쿠팡은 그것들을 부정하는데만 집중했습니다.  제발 이번에는 제대로 좀 심판을 해 주세요."

노동자와 소비자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우리 아이도 노동자였지만 소비자였어요. 이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박 씨가 언급한 '쿠팡 공화국'은 법 위에 서 있는 나라가 아니라, 확인할 수 없는 권력이 일상이 된 구조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구조는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고  '쿠팡 공화국'의 견고한 벽 앞에 선 한 어머니의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