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버스가 멈춘 지 이틀째인 13일 평소라면 붐볐을 버스 정류장은 한산했다. 버스 도착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에는 버스가 도착할 시간을 안내하는 대신 붉은 글씨로 '차고지'란 표현만 나와 있었다.
이날 오전 7시 20분 강남역 버스 정류장을 찾은 박성길(68)씨는 '차고지' 글씨에 당황했다. 박씨는 "버스가 멈춘 지 몰랐다"며 "주기적으로 근무를 나가는 게 아니라서 어제는 몰랐는데 지하철을 타러 가야겠다"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건너편에서 택시를 잡던 김모(28)씨는 "목적지가 지하철역이랑 멀고, 몸도 성치 않은 상태라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면 늦게 생겼다"며 "급하게 택시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류장 전광판에는 '출발대기'와 '운행종료'가 적힌 글씨만이 가득했고 시내버스 승객은 없었다. 마을 버스를 기다리던 일부 시민들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택시를 잡거나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마을버스가 운행하는 걸 확인한 한 남성은 전광판을 확인하고는 "버스 있다"고 외치며 서둘러 버스에 오르는 모습도 포착됐다.
시내버스 파업이 이틀 째 지속되자 출근길에 나서야 할 시민들은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평소보다 한 시간가량 일찍 기상했다는 유다연(27)씨는 "원래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어제 정류장에 왔다가 운행을 아예 안 한다길래 깜짝 놀랐다"며 "파업이라길래 운행 버스의 수가 줄어드는 건 줄 알았지 이렇게 한 대도 안 다니는 건 예상 못 했다"고 말했다. 자가용을 타고 출근했다는 이진영(54)씨도 "1-2대는 운행을 하는 줄 알았는데 아예 운행을 안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며 "차를 타고 왔는데도 너무 막혀서 늦을 뻔했는데 안 늦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이날 출근길 아침은 유난히 추웠다. 영하 15도까지 기온이 떨어질 것으로 예보돼 출근하는 사람마다 두꺼운 외투를 입었고, 일부는 모자까지 쓰며 추위를 피했다. 마을버스나 회사에서 지원하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입에서는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경기도 광역 버스를 이용한다던 백혜민(40대)씨는 "평소 광역 버스를 이용해서 버스 파업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지하철을 탔는데 평소보다 사람이 많아서 의아했다"고 말했다. 판교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문우진(29)씨는 "다행히 회사에서 셔틀을 지원해준다고 해서 집 인근에서 이걸 타긴 했는데 아침에 이게 없었으면 진짜 큰일 날뻔 했다"며 "날씨도 너무 추운데 파업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판교에서 서울로 직장을 다니는 도경덕(53)씨는 "보통 판교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종로1가에서 내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 버스가 없어서 곤란하다"며 "어제는 파업하는지도 몰라서 왜 안오지하다가 30분이나 걸어서 직장을 갔다"고 말했다.
각 자치구에서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하며 추위를 달래는 시민도 있었다. 평창동에 거주하는 김모(20대)씨는 "원래 버스만 타고 출근하는데 저희 동네는 버스가 없으면 시내로 나올 수가 없어서 곤란했다"며 "오늘은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려서 광화문까지 걸어왔다"고 말했다.
버스 이용객들이 지하철로 몰리면서 이른바 '지옥철'(지옥과 지하철 합성어) 모습도 한때 나타났다. 평소보다 배차 간격을 줄인 탓에 아침 이른 시간대에는 오히려 한산한 상황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8시 30분 전후에는 지하철역사에 수많은 인파들이 몰리는 모습이었다.
목도리를 여러 겹 두른 표병재(29)씨도 "날씨가 너무 추워서 지하철역에서 직장까지 걸어오는데 너무 힘들었다"며 "맨날 버스만 타다가 지하철 타서 시간 계산을 잘못해 회사에 늦을 뻔했는데 배차 간격이 좁아서 그런지 여유롭게 오긴 했다"고 말했다. 광화문역에서 만난 임진성(31)씨도 "오늘 너무 추워서 버스를 기다리면 너무 추울 것 같아 마을버스가 아닌 지하철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시내버스 노사에 따르면 노조는 지난 13일 오전 4시 첫차부터 이틀째 역대 최장 기간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노사는 지난 12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특별조정위원회 사후조정회의에서 11시간 넘게 협상을 벌였으나 최종 결렬됐다. 사측은 동아운수 판결 취지에 따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되 임금 체계를 개편하는 방식으로 총 10.3% 인상안을 제시했고 노조는 통상임금 소급 문제는 이번 협상에서 제외하고 임금체계 개편 없이 임금 3% 인상, 정년 65세 연장, 임금 차별 폐지를 요구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울시 버스노동조합의 노동쟁의와 관련한 특별조정위원회 사후 조정회의를 열기로 했다. 노사 간 양측이 이번 조정회의를 통해 다시 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협상이 오후에 시작되는 만큼 오전 출근길은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노사가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어 파업이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 노조는 하루 단위로 파업을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에 재협상이 진행되더라도 그 다음날 첫차부터 복귀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시내버스는 전체 인가 노선 395개 중 129개(32.7%)에 운행 중이다. 운행버스 전체 7018대 중 478대(6.8%)다. 마을버스는 서울 전역 정상 운행 중이다.
서울시는 비상운송대책으로 지하철은 출퇴근 시간대를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1시간 연장해 운행 횟수를 늘리고, 심야 운행 시간도 새벽 2시까지 연장했다. 또 지하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하고 있다. 파업 종료 시까지 가로변 버스전용차로 전 구간 운영도 임시 중지하고 일반 차량 통행을 허용한다. 다만 중앙버스전용차로는 기존대로 버스만 통행이 가능하도록 유지한다. 또 택시가 출퇴근 시간대(오전 7시~9시, 오후 6시~8시) 운행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