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 ①韓경제 떠받치는 반도체…'도약' 위해선 대전환 필요하다 ②출산율 수치에만 집착…인구 '정책' 아닌 '전략' 필요하다 ③AI·반도체 경쟁의 병목은 '전력'…에너지 전환이 성패 가른다 ④기후위기 '기회'로…녹색대전환K-GX, 진짜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⑤'AI 강국'으로 가는 길…성패는 '사회적 기반 변화'에 달렸다 (계속) |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AI) 중심 국가 전환'을 전면에 내세운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하고, 대통령실에 AI 전담 수석을 신설하는 등 인사·조직 개편부터 강도를 높였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장관,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등 현장 AI 전문가를 공직에 전면 배치한 것도 이전 정부와는 다른 선택이다.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 역시 AI를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정부가 연초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는 'AI·AX(AI Transformation) 기반 초혁신경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AI 고속도로 구축, 국가 AI 컴퓨팅 인프라 확충, 온디바이스 AI 선도 분야 육성, 전 산업 AX 전환 등이 주요 항목으로 담겼다. 정부는 이를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산업 구조를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올해를 AI 전환의 실행 단계로 보고 구체적인 정책 과제도 제시했다. 제조·물류·농업 현장을 중심으로 AI 로봇 확산을 추진한다. 자율주행을 핵심 축으로 한 AI 전환 전략과 함께 제조업 전반의 AX를 목표로 한 '제조 AI 2030 전략'도 올해 마련할 방침이다. 온라인 기반 AI 교육 플랫폼을 구축하고, AI 교육 이수와 자격을 연계해 국가 공인 AI 자격 체계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책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험대'라고 말한다. AI를 국가 의제로 설정한 것과, AI를 중심으로 사회·산업 구조를 실제로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다. AX 전환의 방향, 부처 역할 분담, 연구개발(R&D) 집행 구조, 규제 운영 방식, 인재와 자본의 흐름까지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AI 중심 국가'는 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평가다.
AI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산업이 아니다. 반도체라는 기반 위에서 돌아가고, 제조업이라는 몸체에 실릴 때 힘을 얻으며, 에너지·기후·인구 구조와 맞물려야 비로소 사회를 바꾸는 기술이 된다.
"올해는 AI 보다 AX"…제조업 전환이 성패 갈라
학계와 산업계가 공통적으로 짚는 올해의 키워드는 AX(AI Transformation)다. AI 기술을 개발하는 단계를 넘어, 산업과 제품, 서비스 전반이 AI를 전제로 재설계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올해의 키워드는 AI를 적용하는, 이른바 AX가 될 것"이라며 "연구개발뿐 아니라 기업 현장에서 AI를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AX의 성패가 제조업에서 갈릴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홍성수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한국은 제조업 국가"라며 "제조업에서 온디바이스 AI로 어떤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 물건을 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 죽고 사는 문제"라고까지 표현했다.
온디바이스 AI는 클라우드 서버가 아닌 제품·설비·기기 자체에 탑재되는 AI를 뜻한다. 자율주행차, 산업용 로봇, 스마트 제조 설비 등이 대표적이다. 홍 교수는 "데이터센터 기반 클라우드 AI 경쟁은 이미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며 "이걸 그대로 따라가는 전략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온디바이스 AI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발표된 최종현학술원 과학혁신위원회의 'AI 주권 시대, 대한민국의 선택'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과 현장 데이터를 동시에 축적한 한국은 제조업 기반 AX 전환을 통해 차별화된 AI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이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AI를 축적해 나가는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흐름을 의식해 정부도 제조업 중심 AI 전환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제조 현장에 적용 가능한 AI 확산을 위해 '제조 AI 2030 전략'을 수립하고, 중소·중견 제조기업의 AX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 문제의식은 정부 조직과 정책 설계로도 이어진다. 홍성수 교수는 AI 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 집중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클라우드 AI는 과기부가 맡고, 온디바이스 AI는 산업통상부가 맡는 식으로 역할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며 "모든 부처를 하나의 전략으로 묶으면 클라우드 AI와 온디바이스 AI 모두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챗GPT나 제미나이처럼 대규모 데이터센터에서 연산을 수행하고, 이용자는 네트워크를 통해 결과를 제공받는 형태가 대표적인 클라우드 AI다.
다만 이는 부처 간 칸막이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홍 교수는 "AI GPU(인공지능 연산에 특화된 그래픽처리장치) 데이터센터는 '주방'과 같다"며 "이 인프라는 함께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통 인프라는 공유하되, 모델 개발과 산업 적용 전략은 분리해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취지다.
'국가대표 AI', 국민이 쓰지 않으면 의미 없다
과기부는 15일 글로벌 AI 모델 의존을 줄이고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추진 중인 '국가대표 AI(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단계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LG AI연구원·업스테이지·SK텔레콤 등 3개 팀이 2차 단계 진출 대상으로 선정됐다.
네이버클라우드와 NC AI는 독자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탈락했다. 과기부는 성능·활용성·비용 효율성에 더해 해외 모델 단순 활용 여부를 가르는 '독자성' 기준을 중점적으로 검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과기부는 탈락한 팀들을 포함해 정예팀 한 곳을 추가 선발해 국가대표 AI 경쟁 체제를 4개 팀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대표 AI 논의에서 '사용자 관점'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능이 95%라고 해도 국민들이 실제로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자국 AI 서비스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국가대표라는 명칭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사용과 확산이라는 현실적인 지적이다.
최종현학술원 과학혁신위원회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성능과 활용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모델을 '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산업 전반에 일괄 적용할 경우, 과거 액티브X나 공인인증서처럼 독자 규격에 갇힌 'AI 갈라파고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 선택과 시장 검증을 건너뛴 정책적 강제는 오히려 민간 활용을 위축시키고 국제 경쟁력에서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다. 결국 국가대표 AI의 성패 역시 개발 자체보다 실제 사용과 확산 구조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교수는 다만 최근 진행된 민·관·학 컨소시엄 방식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그동안 보기 드물었던 협력 구조"라며 "최종적으로 선정되는 모델에 대해서는 더 많은 기업과 대학이 참여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선택과 집중을 주문했다.
정부는 국가대표 AI를 포함한 AI 서비스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공공·민간 확산 전략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온라인 AI 교육 플랫폼 구축과 AI 자격 체계 확대 등을 통해 국민 체감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R&D 예산 늘었지만…현장은 "여전히 예측 어려워"
정부는 AI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 올해 R&D 예산을 크게 늘렸다. 2026년 국가 R&D 예산은 35조5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19% 이상 증가했다. AI 관련 예산도 10조원 수준으로 확대됐다. 정부는 AI·AX 관련 연구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컴퓨팅 인프라 확충과 연구 지원 체계 개선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예산 규모보다 집행 방식과 지속성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성로 교수는 "AI에 대한 투자 확대 자체는 시기적으로 맞고 긍정적"이라면서도 "연구비 지원의 예측 가능성이 부족하다. 일관되고 꾸준한 연구 지원이 필요하지만, 정책이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AI만을 우선시하는 연구 지원 방식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윤 교수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가 결국 AI 시대의 데이터와 응용의 재료가 될 수 있다"며 "소외되는 분야 없이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연구 행정의 획일성도 문제로 지적됐다. 윤 교수는 "100만 원짜리 과제나 1억 원짜리 과제가 동일하게 1건으로 계산되는 구조는 개선이 필요하다"며 평가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주문했다.
현행 국가 R&D 평가 체계에서는 과제의 금액이나 기간과 관계없이 '과제 1건'으로 동일하게 집계되는 경우가 많아, 연구 규모나 전략적 중요도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로 인해 장기·대형 과제보다 단기·소규모 과제가 상대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정부는 최근 예산 편성 절차의 분절을 줄이기 위해 R&D 예산 편성 과정의 상호 참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과기부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주요 R&D 예산 배분·조정안을 마련하는 단계에서 기획예산처가 참여하고, 기획예산처의 최종 편성 과정에서도 과기부 의견이 사전 협의와 상설 협의체를 통해 반영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신규 R&D 사업의 경우 과기부 검토를 거치지 않은 요구가 편성 단계에서 뒤늦게 반영되는 관행을 제한해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방침도 포함됐다.
AI기본법 시행 앞두고 규제 논쟁
AI 전환의 또 다른 변수는 규제다.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은 2025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오는 22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AI 산업 육성과 신뢰·안전 확보를 동시에 담은 최소한의 제도라는 입장으로 업계를 설득하고 있다.
AI 기본법은 AI 산업 진흥을 위한 지원 근거와 함께, 고위험 AI에 대한 안전성·투명성 확보 의무, 책임 주체 명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조사와 행정 절차가 수반될 수 있다.
이성엽 교수는 AI 기본법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미국과 중국에는 이런 포괄적인 AI 규제법이 없다"며 "AI 3강을 목표로 하면서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처벌 수위보다 '조사' 자체가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태료보다 더 큰 문제는 조사를 받는 것"이라며 "불법 사업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제 조정을 위한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인재·자본이 움직여야 전환이 완성된다
AI 전환이 성공하려면 사회적 분위기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는 "정부와 산업계에서는 인식 전환이 상당 부분 이뤄졌지만, 국민 인식은 아직 갈 길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특정 학문이나 소프트웨어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되는 한, 인재의 흐름은 바뀌기 어렵다"며 "우수한 학생들이 AI·공학 분야로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는 사회적 신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AI에 대한 진정한 인식 변화를 위해 자본과 시장 구조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변화도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AI 경쟁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으로 자본시장과 보상 구조를 꼽았다. 그는 "자산의 가치가 부동산에 머물러 있으면 혁신 기업으로 돈이 흘러가기 어렵다"며 "자산의 흐름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해야 AI 기업과 기술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진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미국의 경우 주식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국민들이 기업 가치와 기술 경쟁력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혁신 기업으로 자본이 유입된다"며 "이런 구조가 형성되면 기업들이 우수한 인재에게 제값을 주고 데려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인재가 모이고, 성과가 나오고, 다시 자본이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한계로는 부동산 중심의 자산 구조와 의대 쏠림 현상이 지적됐다. 최 교수는 "AI 전환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 투자와 인내가 필요한데, 지금의 자산·진로 구조는 이런 혁신과 잘 맞지 않는다"며 "의대 쏠림이나 단기 수익 중심 구조가 계속되면 AI 인재를 키우고 붙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AI 전환은 기술 정책 하나로 완결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의 구조 전환, 인구 감소 속 노동·교육 전략, 전력과 에너지 전환, 그리고 녹색대전환까지 맞물려 돌아가야 비로소 성과를 낼 수 있다. AI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 복합적인 전환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이자 촉매에 가깝다. 결국 AI 중심 국가 전환의 성패는 개별 정책의 속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전환 과제들을 얼마나 정교하게 엮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