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산지 훼손' 재판 중에도 사업 재허가…통제 장치 부재

제주 유명 관광지,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축구장 4배 임야 불법훼손
제주도, 지난해 5월 휴양단지 지정 취소했으나 재판 중 9월 재허가
심의 과정 지적·법적 통제 장치 없어…시민단체 "상식에 어긋나"

2023년 7월 취재진이 살펴본 서귀포시 유명 관광지 불법 산림훼손 현장. 이창준 기자

축구장 4개 규모의 임야를 불법 훼손하고 개발사업을 추진하다 적발돼 결국 징역형을 선고받은 제주 서귀포시 유명 A관광농원. 그런데 행정당국이 사업자가 형사재판을 받는 중에도 취소했던 사업을 다시 허가한 사실이 확인됐다. 사업 심의 과정에서 임야 훼손 이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고, 이를 제재할 명확한 규정도 없어 제도 전반의 허술함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사업 취소해놓고 다시 허가한 제주도

19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제주도는 지난해 5월 서귀포시 안덕면 소재 A관광농원에 대한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지정을 취소했지만, 불과 4개월 뒤인 9월 다시 허가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소관하고 지자체가 주관하는 농어촌관광휴양단지 개발사업은 농촌의 소득 증대와 체험·관광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한다.

A관광농원은 2023년 5월 농어촌관광휴양단지로 처음 지정됐으며, 2024년부터 안덕면 일대 약 22만㎡ 부지에 690억 원을 투입해 자연체험시설과 산책로 등을 조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업자 B씨는 이보다 앞선 2015년 8월부터 약 8년 동안 행정 인허가 없이 중장비를 동원해 임야 3만3천여㎡를 훼손하고 산책로와 주차장 등을 조성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훼손 면적은 축구장 4개 규모에 달한다.

결국 산지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B씨는 지난 15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에 처했다. A관광농원 법인과 그의 부친도 2천만 원의 벌금형 등을 받았다.

수사가 마무리 되자 서귀포시도 불법 훼손된 임야에 대한 원상복구명령을 내렸다. 복구 비용만 약 2억2300만 원에 달했다.

임야 불법훼손 전(왼쪽 2013년)과 후(오른쪽 2017년)를 비교한 위성사진. 수사 결과 임야 불법훼손은 2015년 8월부터 이뤄졌다. 카카오맵 캡쳐

문제는 A관광농원이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6월, 취소됐던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지정을 다시 신청했고 제주도가 이를 허가했다는 점이다. 제주도는 사업 미이행을 이유로 지난해 5월 지정을 취소했지만 불과 4개월 뒤인 9월 재허가했다.

A관광농원은 오는 5월부터 2030년 12월까지 약 23만㎡에 690억 원을 투입해 원예센터와 지역특산물 마켓 등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심의

제주도는 지난해 8월 20일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정책심의회 제3차 회의'를 열어 A관광농원의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지정 신청 안건을 심의하고 일부 내용 수정 뒤 가결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입수한 회의록을 보면 이 회의에서 임야 불법 훼손이나 형사재판 진행 사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회의 과정에서 한 위원이 "훼손된 산지의 원상복구 절차 이행은 왜 진행된 것이냐"고 질의하자, A관광농원 측은 "확장 예정 부지 내 산지 일부가 훼손돼 원상복구를 진행했고 준공검사까지 완료됐다"며 "완벽하게 치유된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설명한 것이 전부였다.

특히 A관광농원 측은 임야 훼손에 대해 "산지관리법상 조림 등의 행위들이 산지 전용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행위로 명시가 돼 있는데 그 부분을 오해해 조림 작업을 했었다"며 고의성은 없었다는 취지의 설명을 덧붙였다.

지난해 8월 20일 열린 '제주도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정책심의회 제3차 회의' 회의록. 이창준 기자

제주도는 사업 재허가에 법적·행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원상복구를 완료했고 준공 허가도 받아 사업 추진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해 다시 고시했다"며 "형사처벌과 사업 인허가는 별개의 사안으로 형사재판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사업 추진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실제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지정을 규정한 농어촌정비법과 시행령·시행규칙에는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지정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지정 취소 처분을 받은 사업자는 취소일부터 1년간 농어촌관광휴양사업자 지정을 받을 수 없다',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지정 고시가 있은 날부터 2년이 되는 날까지 사업을 시행하지 않은 경우 그 2년이 되는 날의 다음 날에 지정이 해제된 것으로 본다'는 일부 제한 조건만 있다.

시민사회단체 "상식에 어긋나"…도의회 "제도 공백 유감"

시민사회단체는 제주도의 판단이 도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정도 기후자원정의센터 아크 사무국장은 "법률적·행정적 형식 요건을 갖췄다고 해서 도민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규모 산지 훼손으로 형사재판을 받은 사업자에게 다시 사업을 맡긴 것은 도의적 문제이자 행정 신뢰를 크게 훼손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집행유예는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반성과 참회를 전제로 한 판단"이라며 "사업자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면 행정이 부여받은 재량권을 행사했어야 한다. 행정 재량권은 도민의 눈높이와 상식을 반영하라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2023년 7월 취재진이 살펴본 서귀포시 유명 관광지 불법 산림훼손 현장. 이창준 기자

제주도의회도 현재로썬 조례나 별도 지침을 통한 제재 방안이 없는 듯하다며 제도적 허점을 살펴보고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양영식 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조례나 지침을 자세히 들여다봐야겠지만 현재로선 명확한 규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집행부에서 무리하게 인허가를 준 점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사무감사에서 많은 지적이 필요해 보인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된다"며 "설령 제도적으로 (사업 재허가가)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보완을 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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