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만 20세 행정고시 합격.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석·박사 학위 취득. 청와대 비서관과 경제수석, 주미한국대사, 경제부총리, 두 번의 국무총리, 그리고 대선 출마까지.
76살 한덕수 전 총리가 걸어온 길이다. 대한민국 상위 1%조차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학력과 경력이다. 이런 '대단한' 한 전 총리를 2년 정도 가까이 접할 기회가 있었다. 한 전 총리가 주미 대사를 할 때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받았다.
한 전 총리를 접해 보니 정권과 세대를 넘나들며 50여 년간 공직에서 장수했던 비결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과 모나지 않은 일처리가 가장 도드라졌다. 오히려 부인 최 모씨의 목소리가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 씨가 대사관 직원들에게 거리낌없이 지시를 내리는 모습과 이를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한 전 총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적도 있었다.
한 전 총리의 장수 비결에는 경제 통상 분야 지식과 경험, 경기고-서울대-하버드대로 이어지는 '신화적' 학력, 여기서 파생되는 국내외 인적 네트워크 등도 빠뜨릴 수 없다.
그럼에도 '신의'나 '도의' 측면에서는 그때도 논란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부총리와 총리 등 직업 공무원의 최고 자리까지 누렸던 사람이 이명박 정부 주미 대사를 할 수 있냐는 논란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미 FTA의 미 의회 비준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권 보다 국익을 우선해야 하고 풍부한 통상 경험과 미국 내 인맥이 두터운 한 전 총리가 주미 대사 적임자라는 논리가 나름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노 진영에서는 한 전 총리가 주미 대사 자리를 수락한 것보다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조차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 인간적 배신감을 더 크게 느꼈다고 한다.
2012년 주미 대사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무역협회장이 됐을 때 한 전 총리가 다시 공직을 맡을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깨고 한 전 총리는 2022년 윤석열 정권의 총리로 다시 나타났다. '언제적 한덕수냐'는 비판과 함께 '한덕수는 관용차와 법카(법인카드)만 있으면 뭐든지 할 사람'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돌아온 한덕수는 달라 보였다. 장수 비결이었던 '모나지 않음'과 '무색무취'는 확연히 줄었다. 윤석열의 비정상적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야당 의원들을 향해 '윤 대통령은 잘하고 계시다'며 수시로 맞고함을 쳤다.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는 기행의 연속이었다. 국민이 위임도 없이 국민의 뜻도 묻지 않고 국민의힘과 공동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아예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후보 단일화 협상을 벌이면서 정치적 무능함을 드러냈다. 자기 주장만 소리 높여 반복하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통상 분야 협상의 전문가라는 평가가 의심을 받았다.
광주 5.18 묘역을 찾았다가 시민들이 막아서자 "나도 호남사람이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뜬금없는 '고향 커밍아웃'으로 '살려고 애쓴다'는 비웃음을 받기도 했다. 그와 공직 생활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그가 '호남 출신'임을 스스로 밝힌 적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윤석열 집권 이후 그의 모습은 공직자로서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와 헌신'보다는 '생존 지향'에 가깝다.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서울중앙지법의 내란 재판에서 그의 '생존 지향'은 더욱 뚜렷했다. 12.3 비상 계엄 선포 당시 윤석열로부터 계엄 관련 문건을 받아 놓고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CCTV 등 물증이 나오자 그제서야 마지못해 인정하며 '시간이 흘러 기억 나지 않았다'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를 말렸다'고 주장했지만 '계엄 저지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동문서답했다.
결국 한 전 총리는 내란중요임무종사와 위증 등의 혐의로 21일 징역 2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특검의 구형량 징역 15년보다 더 높은 형량을 이례적으로 선고 한 것이다. 거짓말의 반복과 변명이 중형을 자초한 셈이다.
그가 변신했다고는 하지만 원래부터 '생존형' 공직자였다는 지적도 있다. 중간에 변신했는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마지막 공적 경험은 법무부 교정본부가 되리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