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선두주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례적으로 오는 29일 같은 날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투자자 설명회를 갖는다. AI(인공지능)의 폭발적 확산과 맞물린 메모리 반도체 초호황기 국면에서 이뤄지는 '키 플레이어'들의 설명회인데다가, 이들의 핵심 신제품인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HBM4를 중심으로 사업 현황도 파악할 수 있는 자리인 만큼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제품을 통해 HBM 시장에서 역전을 노리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선두 지위 수성을 목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메시지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오는 29일 오전 10시에 실적 설명회인 컨퍼런스콜을 진행한다. 이 기업은 지난해 4분기(10~12월) 매출액이 전년 동기보다 22.7% 불어난 93조 원, 영업이익은 208.2%나 증가한 20조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최근 발표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 기준 한국 기업 최고치다.
이런 어닝 서프라이즈의 주요 배경으로는 무엇보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 폭증이 꼽힌다. 메모리 반도체는 AI의 두뇌에 대량의 데이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HBM 등 고성능 D램에 주요 제조사들의 생산 능력이 집중되자, 범용 D램 가격까지 덩달아 오르는 공급자 우위 시장 흐름이 한동안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의 메모리반도체사업부 영업이익만 18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컨퍼런스콜에서는 HBM4 사업 현황이 최대 관심사로 꼽힌다. 특히 삼성전자는 다음달 업계 최초로 엔비디아에 HBM4를 정식 납품할 것으로 파악돼 그 규모와 준비 상황 등을 둘러싸고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AI 칩 시장 1위 기업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는 최근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 2026에서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을 공개하고 양산 단계에 돌입했다고 밝혔는데, 삼성전자의 HBM4는 해당 가속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전 세대 HBM인 HBM3E 납품 경쟁에서는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던 만큼 이번 HBM4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 차세대 공정(10나노미터 6세대)을 적용해 전력효율과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야심작인데다가, 위탁이 아닌 자체 제작 제품이라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KB증권은 삼성전자 HBM4의 엔비디아 납품을 고리 삼아 "삼성전자의 HBM 점유율은 작년 16%에서 올해 35%로 2배 확대될 것"이라고 최근 전망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보다 1시간 이른 29일 오전 9시에 컨퍼런스콜을 갖는다. 양사가 이처럼 같은날 실적 발표와 설명회를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장에 내놓는 메시지에 시차가 생길 경우 한쪽에 유리할 수 있다는 물밑 신경전이 진행된 결과 아니냐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연결 기준 작년 4분기 실적에 대한 증권사들의 추정치(컨센서스)는 매출 30조 8323억 원, 영업이익 16조 3753억 원이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55.98%, 102.6% 증가한 액수다. 다만 워낙 업황이 호황이고, 지금까지 SK하이닉스의 HBM 주도권이 공고했던 만큼 영업이익이 20조 원을 웃돌 것이라는 전망도 일부 있어 깜짝 실적이 발표될 가능성에도 배제할 수 없다.
SK하이닉스의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은 지난해 3분기에 세운 매출 24조 4490억 원, 영업이익 11조 3834억 원이다. 당시 컨퍼런스콜에서 SK하이닉스 측은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들과 내년 HBM 공급 협의를 모두 완료했다"며 "2025년 9월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 체제를 구축한 HBM4는 고객 요구 성능을 모두 충족하고 업계 최고 속도 지원이 가능하도록 준비했다. 회사는 이를 4분기부터 출하하기 시작해 2026년에는 본격적인 판매 확대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힌 상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SK하이닉스의 이번 컨퍼런스콜에서도 HBM4 사업 진척 상황에 시장 관심이 집중돼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까지 글로벌 HBM 시장에서 점유율 과반 지위를 유지해 온 강자인 만큼 1위 수성 전략이 관심사다.
이 밖에도 양사의 컨퍼런스콜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관세 압박'에 대한 상황 파악과 대응 내용도 주목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메신저'로 여겨지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이달 중순 두 기업이 글로벌 점유율 1·2위를 점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를 콕 집어 고율 관세를 부담하기 싫으면 미국에 생산 기지를 만들라는 취지의 압박 메시지를 내놨다.
시장에서는 양사의 올해 합산 영업이익이 200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장밋 전망까지 나오지만, 이런 미국발 정책 불확실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