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 내 비군사적 목적의 출입에 대한 승인 권한을 놓고 우리 정부와 유엔군사령부 간 마찰이 벌어졌다. 양측의 갈등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예전과 달리 입법을 통한 해결이나 이례적 불만 표시 등의 양상으로 볼 때 수위가 높고 장기화 가능성이 예상된다.
갈등의 시작은 DMZ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한국 정부의 책무 등을 규정한 법안 3건이 국회에서 입법 추진되면서다. 유엔사는 지난 해 12월 반대 성명에 이어 지난 29일에는 국내 언론 접촉을 통해 노골적으로 불만과 우려를 나타냈다.
유엔사 관계자는 "유엔군 사령관의 권한은 부정하면서 결과에 대한 책임만 지우는 법안"이라며 "정전협정에 정면 위배 된다"고 비판했다. 다른 관계자는 "만약 DMZ 내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해서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 책임은 한국 대통령이 아니라 유엔군 사령관에 지워질 것"이라는 말도 했다.
유엔사의 DMZ 관할권은 6·25전쟁 정전협정 1조 7항~10항과 부속합의서(1954년 2월 비준)에 명시됐다. "DMZ 내 군사분계선 이남의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Civil administration and relief)은 유엔군 사령관이 책임진다"(10항)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유엔사의 주장은 논리적·법률적으로는 일리가 있다. 정전협정 서문의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라는 규정이 해석상 논란이 되지만 그저 논란일 뿐이다. 비군사적 문제는 협정과 상관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유엔사는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종전협정)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이라고 반박한다.
유엔사, 이례적 불만 표시…'오해' 탓이지만 해묵은 갈등 표출 시각도
이번 DMZ 관할권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DMZ 법안은 일견 우리 정부의 관할권을 규정하는 것 같지만 관계기관 간 협의·협력을 전제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9일 해당 법안은 유엔사와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했기 때문에 정전협정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밝힌 이유다.
협의·협력 관계기관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유엔사는 당연히 포함될 수밖에 없다. 통일부 당국자는 "현실적으로 (유엔사와) 협의가 안 됐는데 (DMZ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라며 "(법안은) 유엔사의 관할권을 존중한다는 취지"라고 부연 설명했다. 유엔사는 30일 "추가로 밝힐 내용은 없다"며 공방 확대를 자제했다.
하지만 이런 봉합 기류와 달리, DMZ 법안을 계기로 잘 드러나지 않던 정부와 유엔사 간 불편한 관계가 표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안보 전문가는 "유엔사가 직접 한국 언론을 상대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차제에 (서로 부담은 되겠지만) DMZ 관할권뿐만 아니라 전반적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사는 DMZ 법안을 일종의 레드라인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유엔사 관계자는 "DMZ 법이 통과되면 법리적·합리적으로 해석할 때 한국 정부가 정전협정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다른 이해 당사국들에서도 큰 우려를 낳고 엄청난 여파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조로 말했다. 입법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는 DMZ 출입과 관련해 최소한의 협의를 요구하는 것조차 정전협정 이탈 시도로 여기는 지나친 경직성이다. 정전협정 체결 70여년이 지난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자세다.
정전협정은 협정 당사자 중 하나인 중국인민지원군이 일찌감치 철수하고, 협정의 주요 축인 중립국감독위와 군사정전위도 사실상 기능이 마비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전협정이 와해되지 않은 것처럼, DMZ 법안 하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침소봉대에 가깝다.
정전협정 70년 현실 무시한 경직성…관할권 대신 관리권 전례 참고할 필요
유엔사는 1971년 북측에 'DMZ의 평화적 이용'을 제안한 바 있다. 남북은 이를 거름 삼아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DMZ 평화적 이용에 합의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의회 연설에서 DMZ 내 세계평화공원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유엔사가 DMZ의 평화적 이용 법안을 반대하는 것은 자기모순이기도 하다. 세월과 상황 변화를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 평화의 가치는 불변하고 지금이 오히려 더 절박한 시점이다.
남북군사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김도균 전 수방사령관은 "북한의 군사분계선 국경선화나 윤석열 정부의 9·19 군사합의 파기 때는 침묵하던 유엔사가 지금 이렇게 나오는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70여년 전 과거와 가장 크게 달라진 현실은 또 있다. 정전협정에 끼지도 못했던 한국은 이제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대북 억제를 전담하는 것은 물론 대중 견제까지 요구받고 있다. 유엔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미국의 새 국방전략(NDS)에 의해서다. 이런 한국에게 유독 DMZ만큼은 쳐다 보지도 말라는 식의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다.
유엔사가 우리 정부에 제한적이나마 권한을 부여한 전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유엔사는 2018년 남북 철도 연결사업 추진 시 마찬가지로 제동을 걸었지만 '관할권'(Jurisdiction) 대신 '행정적 관리권'(Administration)을 한국 측에 부여하는 방식으로 절충했다.
한 예비역 장교는 "유엔사는 DMZ 출입을 함부로 허용하게 되면 남북 간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전쟁을 가장 걱정하는 것은 한국"이라며 "유엔사가 의도와 상관없이 과도하게 우리 주권을 제약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