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 인구의 20%가 노인인 천만 노인시대를 살고 있다. '웰다잉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된 지 만 10년, 시행된 지는 꼭 8년이 지났다. 그 사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국민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325만명을 돌파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거나 호스피스를 이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문서다. 의학의 발달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진 지금 품위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웰다잉의 핵심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인원이 300만명을 넘어선 힘은 법 제정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를 웰다잉 문화로 승화시킨 것에도 기인한다. 웰다잉의 전도사로 활동해 온 원혜영 전 의원을 지난 3일 국회도서관에서 만났다. 현역 국회의원 시절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을 주도했고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원 대표는 "내 삶의 마무리에 대한 일들을 미루지 말고 내가 결정해야 한다"며 "연명치료 여부나 재산 정리, 치매 대비 등에 대해 미리 결정해 놓으면 현재의 삶이 안정되고 품위있는 삶이 된다"고 강조했다.
여러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대표적인 게 연명의료 중단을 판단하는 시점이다. 현재는 임종기로 지나치게 좁아 말기환자까지 넓힐 필요가 있다. 원 대표는 연명의료 적용 대상에 인공 영양 공급을 포함시키는 것도 고통 경감과 환자의 존엄을 지키는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못 먹어서 죽는 게 아니라 죽게 돼서 못 먹는 것인데 강제로 밀어넣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얘기다. 원혜영 대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때의 대안"이라며 "병동부족과 고비용 구조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재택 호스피스를 활성화하는 과제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장례문화도 그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 중 하나다. 1인 노인가구의 비중이 증가함에 따라 "조문 올 사람도, 심지어 조문 받을 상주도 없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고인을 기리는 추모식 위주로 장례 문화를 바꾸는 게 사회적인 과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또한 재산을 물려받을 자식마저 노인이 된 지금 이른바 '노노 상속'은 사회적 활력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모은 재산의 10%만이라도 기부하자며 유산기부 운동을 제안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웰다잉 문화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에 앞장선 입장에서 그 법이 잘 시행되고 확산되도록 봉사하는 게 뜻이 있겠다 싶어서 웰다잉 문화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법 제정 10년, 시행된 지 8년이 지났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
"8년 동안 3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습니다. 법의 명칭에 들어간 것처럼 핵심은 '결정'의 문제예요. 내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받을지 안 받을지를 미리 결정하자는 것입니다. 자기 삶의 마무리에 관련된 문제, 죽음의 준비에 관한 문제들을 내가 결정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 미비한 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서 이렇게 확산되고 있는 걸로 봐서 참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죠."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한 언급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죠.
"그런 전통이 웰다잉 문화를 확산시키는데 장벽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부부나 부모 자식 간에도 무의미한 약물 치료를 받을지 여부나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하는 게 왜 좋다고 생각하는지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눠서 서로 이해시키고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게 필요합니다. 연명 의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품위있는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것입니다. 최근 수 십년 사이에 죽음의 과정이 우리 곁을 떠나서 병원으로 옮겨갔어요.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게까지 인공호흡, 심폐소생술, 강제 영양 급식, 혈압 상승제 처방으로 목숨만을 연명하는 게 일반화 됐어요. 마치 죽음을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착시현상에 휩싸여 있는 겁니다. 이 법이 제정되면서 시민들에게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 거죠."
-내 삶의 마무리를 위해 어떤 결정을 해야 하나.
"내 삶의 마무리에 대한 일들을 미루지 말고 내가 결정해야 합니다. 내 생명의 문제를 미루면 의사가 결정하고, 내 재산의 문제를 미루면 상속분쟁 때문에 판사가 결정하고, 장례 절차 문제를 미루면 장례업자가 결정하게 됩니다. 제가 쓴 책 『마지막 이기적 결정』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과정 즉 유언장, 사전연명의료 결정, 돌봄 방식 선택, 삶의 기록, 추모 방식 선택은 나의 삶을 나의 방식으로 마무리하겠다는 결정입니다. 나를 위한 결정은 가족을 위한 것이고 나아가 사회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웰빙의 시대에 왜 웰다잉을 이야기하나.
"셰익스피어 희곡의 제목에도 있듯이 끝이 좋아야 다 좋죠. 잘 죽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것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웰다잉은 아주 중요합니다. 연명치료 여부나 재산 정리, 치매에 걸렸을 때 나를 어떻게 돌볼 건지 등에 대해 미리 결정해 놓으면 현재의 삶이 안정되고 품위있는 삶이 될 수가 있는 거죠."
-치매에 대비한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요즘 쉽게 이행할 수 있는 대책으로 '부부 쌍방 후견 공증(후견계약)' 제도가 있어요. 만일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면 부인이 남편 통장을 못써서 병원에서 결제도 못하게 되죠. 그래서 앞으로 혹시라도 부부 중 한 사람이 판단 능력이 저하되거나 질병이나 사고로 의사결정이 어려울 때 배우자가 대신 통장 관리나 보험금 수령, 계약체결 등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미리 공증 사무소에 가서 약정해 두는 겁니다."
-웰다잉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존엄사나 안락사라는 용어와의 혼동인 것 같다.
"내 삶을 품위있게 마무리하기 위해 생명이나 재산 등의 문제를 나 스스로 정리하는 것을 포괄적 의미에서 웰다잉이라 부릅니다. 이 가운데 생명에 대한 결정과 관련해 가장 적극적으로 적용되는 게 안락사이며, 우리나라에서 현행법으로 시행되고 있는 건 소극적 의미의 존엄사인 연명의료 중단입니다. 그러니까 존엄사라는 범주에서 적극적인 부분이 안락사, 소극적인 부분이 연명의료 중단입니다. 안락사 도입은 미루거가 기피할 일이 아니예요. 신중하되 충실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한 때가 됐다고 봅니다."
-웰다잉의 실천적 과제는 뭔가.
"생명에 대한 결정이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등록입니다.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325만 6천 여명이 등록했습니다. 재산에 대한 결정은 유언장 쓰기입니다. 유언장을 쓰는 것은 내 삶을 한 번 정리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부터 써보기를 권합니다. 미국의 경우 20~30대에 유언장을 쓰는 비율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장수시대가 가속화하면서 지금과 같은 장례 문화가 존속할 수 있을까.
"장례 문화가 크게 바뀔 때가 됐습니다. 원래 장례의 본래 취지가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것 아닌가. 빈소를 차려서 손님을 접대하는 방식의 장례 대신 추모식을 통해 고인을 기리는 방식으로 바꾸는게 좋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초고령사회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의 연령이 80대 후반에서 90대인 경우가 많아요. 고인의 장례 때 그 분과 가까운 사람들은 거동이 불편해 거의 올 사람이 없죠. 또 1인 가구가 많다보니 조문 올 사람도 없고 심지어 조문 받을 상주가 없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손님을 접대하는 장례 문화를 추모식 위주의 장례문화로 바꾸는 게 사회적으로 시급한 과제가 됐어요."
-유산기부의 필요성은.
"요즘엔 재산을 물려받을 자식도 노인들이 다 되었어요. 이걸 '노노상속'이라고 하는데 사회적인 활력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아요. 자식들이 은퇴한 마당에 전 재산을 악착같이 상속.증여 하기 보다 내 재산의 일부를 좋은 일에 쓴다면 삶을 마무리하는 데 의미있는 재료가 될 겁니다. 영국에서는 '레거시 텐'이 도입돼서 상속재산의 10% 기부하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땀흘려 모은 재산의 10% 정도 만이라도 좋은 일에 쓰고 세상을 떠난다면 결국 내 뜻은 세상에 살아남게 되는 것 아닌가."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8년이 지났는데 개선해야 할 점은.
"연명의료 결정 기한과 적용대상을 손 보는게 가장 시급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더라도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시점을 말기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단계인 임종기로 좁혀서 적용하게 돼 있어요. 임종기 판정도 의사마다 다를 수가 있어서 실효성이 없어요. 따라서 말기 시점, 즉 더 이상 치료해도 회복 가능성이 없는 시점부터 적용하도록 기한을 늘리는 게 중요합니다.
연명의료의 적용 대상도 확대해야 해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기간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에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항암제, 혈액투석이 포함되는데 인공 영양급식은 제외됩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멸돼 가는 자연스런 과정이 음식을 못 먹고 물을 못 마시고 호흡을 못 하는 아닌가?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분에게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은 환자의 고통을 연장시키거나 가중시킬 수 있고 자연의 섭리에도 맞지 않아요."
-호스피스 제도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게도 병원에서 끝까지 치료하는게 관성이 돼 있어요. 그러다보니 생의 마지막을 소중하고 보내거나 의미있게 정리하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서 면회가 차단된 상태로 쓸쓸하게 죽어가는 게 현실입니다. 사망자의 77%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호스피스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때의 대안입니다. 의료의 초점은 통증완화와 심리적 안정에 모아지죠. 문제는 호스피스 병동 부족과 고비용 구조입니다. 내가 사는 집에서 의료와 요양, 돌봄을 받는 통합돌봄이 올해부터 본격 시행되는데 호스피스의 경우도 재택 호스피스를 활성화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장년층이나 노년층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1000만 노인들이 당당하게, 품위있게, 자존감 있게 자기의 삶은 누리기 위해 웰다잉은 중요해졌어요. 그건 개개인의 문제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품격과도 직결된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