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뒷받침할 '대미투자특별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특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관세 재인상' 카드를 철회할 것으로 보이면서, 한미 통상 관계에서의 주요 불확실성이 해소될지 주목된다.
여야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한미전략투자공사' 설립키로
10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위한 특별위원회(대미투자특위)는 활동 시한 마지막 날인 지난 9일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대미투자특별법)을 의결했다. 특위는 오전과 오후 소위원회, 전체회의를 잇따라 열어 특별법을 처리했다. 여야가 합의한 만큼 특별법은 오는 12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통과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은 지난해 11월 한미 양국이 체결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업무협약(MOU)을 체결함에 따라, 이를 체계적으로 집행하고 관리할 전담 기구를 설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자본금 2조 원 규모의 '한미전략투자공사'를 신설한다. 당초 정부안은 3조~5조 원 규모였으나, 여야 협의 과정에서 재정 부담을 고려해 2조 원으로 줄이되, 자본금 전액은 정부가 출자하기로 했다.
공사 내에는 '한미전략투자기금'이 설치되며, 재원은 한미전략투자채권 발행을 기반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막판까지 기업 출연금으로 재원을 마련할지를 두고 여야 간 이견이 있었지만, "기업 팔을 비틀어 강제로 자금을 동원한다"는 야당의 우려를 수용해 최종안에서 제외됐다.
공사 사장과 이사는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기 위해 금융이나 전략 산업 분야에서 10년 이상 종사한 전문가로 자격을 제한했다. 또 이사회 내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신설해 투자 실패에 따른 국고 손실 위험을 상시 감시하도록 했으며, 대규모 투자에 대해서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사전 보고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진통 앓았던 특별법 처리… 트럼프의 '25% 관세' 압박까지
대미투자특별법이 특위 문턱을 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월 특별법 미처리를 문제 삼으며 "한국 국회가 무역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돌연 관세를 25%까지 재인상하겠다고 경고했다. 앞서 한국의 3500억 달러 투자를 조건으로 상호관세를 15%까지 낮췄는데, 이를 다시 인상하겠다는 취지다.
미국의 고강도 압박에도 국회 논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대미투자특위는 지난달 초 가동됐으나, '사법 3법' 등 다른 쟁점 법안을 둘러싼 여야 대립이 격화하면서 특위에서도 한 달 가까이 제대로 된 심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활동 시한이 임박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수위도 거세지면서 여야는 막판 협상에 속도를 냈다. 이날 특위 의결 직후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6단체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된 것을 적극 환영한다"며 "이번 법안 처리가 우리 기업들의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 확보와 한미 경제 협력 강화의 기폭제가 되길 기대한다"고 환영했다.
미국도 韓에 화답하면서 관세 재인상 불안 해소될 듯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9부 능선을 넘으면서 트럼프 행정부도 관세 재인상을 철회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등과 통상 현안을 협의하고 귀국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날 취재진과 만나 백악관 측의 긍정적인 신호를 전했다.
김 장관은 "미국 측에 우리 국회의 특별법 처리 상황과 투자 이행 의지를 상세히 설명했다"며 "백악관과 상무부 모두 한국의 입법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법안이 예정대로 통과될 경우 우려했던 관세 재인상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특별법 처리 지연을 콕 집어 통상 압박을 가한 만큼, 국회의 특별법 의결로 미국의 보복 명분을 일정 부분 차단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대미 투자 프로젝트 사전 검토를 진행하며 미리 시동을 걸고 있다.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 통과 이후 법령 제정 등 절차를 거쳐 3개월 뒤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부는 법 시행 전부터 후보 프로젝트에 대한 예비검토를 진행하며 법 시행 이후 신속하게 심의·의결을 추진할 방침이다.
산업부는 법안 처리 전부터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와 관련해 업계와 논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 산업부는 법안이 계류 중인 상황에서도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와 관련해 업계와의 논의를 계속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대미투자특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2000억 달러를 전략적 산업 동맹을 강화하는 계기로 만들기 위해 업계와 유망한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부분을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유력한 1호 프로젝트로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 △루이지애나주 LNG 터미널 △텍사스∙루이지애나주 화학 플랜트 건설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일본이 최근 대미 투자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면서 정부도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프로젝트에 입법 절차가 필요 없는 일본은 지난달 △오하이오주 가스 화력발전소 건설 △조지아주 인공다이아몬드 제조 시설 건설 등 투자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투자 속도를 비교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에서 프로젝트가 속도전이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프로젝트 예비검토에 만전을 기하는 상황"이라며 "법 시행 후 즉시 추진할 수 있도록 준비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