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양승태 측 "월권적 직권남용 아냐"…2심 유죄 근거 판결들 직격

양승태 전 대법원장 측 상고이유서 제출
"일반적 직무권한 부정된 적 없는 사안들" 반박
재판독립 위해 직권남용 인정 vs "법관 우선적 사고"
재판개입 시도만으로 권리행사방해 결과 '무리' 주장도
대법원 2부 배당,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 주목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종민 기자

이른바 사법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심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하며 근거로 제시한 5개 판례에 모두 반박했다.
   
2심 재판부는 사실상 대법원에서 '월권적 직권남용'을 인정한 사례로 해당 판결들을 거론하며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개입 혐의도 성립된다고 판단했는데,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해당 판결들이 본래 내용과 달리 오용됐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2심 제시 판결들, 월권적 직권남용 사례 아냐"

1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최근 대법원 2부에 제출한 상고이유서에 원심(항소심)이 판결문에서 거론한 5개 판례를 재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①원세훈 국정원장 정치개입 ②A시 자치행정국장의 개발제한구역 내 허가 요구 ③해군 법무실장의 군검찰 수사기밀 보고 요구 ④B시 도시개발 부서 팀장의 하도급계약 체결 요구 ⑤C시 시장의 기부금 납부 요구 사건이다.
   
(※직권남용죄는 일반적 직무권한 범주 내에서 직권을 행사하는 척-가탁하여- 권한을 남용해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한다. 직권 없는 자의 행위나 직권과 관계없는 권한을 모용한 행위, 즉 명백한 '월권'은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앞서 2심 재판부는 '재판에 개입할 직권 없이 남용도 없다'는 취지의 1심 무죄 판결을 파기하면서 위 판례들을 소개했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일선 재판 개입 권한'을 상정할 수 없는 것처럼, 국정원장이 '정치개입을 지시할 권한'이나 시 자치행정국장이 '개발제한구역 관련 허가를 요구할 권한' 역시 상정할 수 없는데도 직권남용이 유죄로 인정된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직권 행사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월권적 직권남용'을 대법원이 인정한 사례가 있는데도, 재판개입에 대해서만 직권남용 성립 여부를 엄격히 판단하고 있다는 취지다. 2심 재판부는 문제가 된 행위(재판개입)가 일반적 직무권한(사법행정권) 내의 일이냐를 따져선 안되고, 마치 형식적·외형적으로 문제없는 직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가장했느냐에 주목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상고이유서에서 "원심은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어도 직권남용죄가 인정된다고 법리오해를 하고 있다"며 5개 판례 역시 일반적 직무권한의 존재가 인정됐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된 사안이라고 맞섰다. 사법행정권자에게는 '법관의 재판권'과 관련한 직무감독 등 일반적 직무권한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전혀 다른 판례들이라는 것이다.
   
상고이유서에서 인용한 ①국정원장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대법원은 국정원이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한 수사' 등의 직무를 수행하고, 국정원장은 이러한 직무를 통할하면서 소속 직원을 지휘·감독할 권한을 가진다고 서술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민간인에 대한 사찰·보고나 이들에 대한 견제·제압방안 수립·실행 등은 국정원장의 직권과 완전히 동떨어진 월권행위가 아니라 직권에서 뻗어나간 남용행위라는 점에서 재판개입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②A시에서 조직관리와 공무원 인사 등 내부 행정 전반을 담당하는 자치행정국장(총무국장)이 개발제한구역 내 행위에 관한 허가에 관여한 사안에 대해서도 "원심은 이 판결의 내용 중 일부만 언급했다"고 지적했다. 자치행정국장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 허가신청을 허가하도록 담당자를 압박하면서 승진 문제를 거론하고 허가 지연시 감사를 예고하는 등 인사문제를 언급한 사안이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이 사안이 '월권적 직권남용'이 아니라 전형적인 직권남용이라는 취지로 주장한다. 만약 요건을 갖춘 허가신청임에도 담당자가 부당하게 처리를 지연할 경우엔 피고인(자치행정국장)이 직무권한에 따라 인사에 반영하고 감사도 실시할 수 있어 월권을 고민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③해군 법무실장 사건 역시 법무실장은 해군 소속 인원에 대한 사법처리 관련 중요사항을 보고받을 일반적 직무권한이 있다는 전제에서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기밀사항까지 요구한 것이어서 직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안과 다르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④B시 도시개발사업단 택지시설팀장이 B시가 발주한 공사를 맡은 시공사에게 자신이 지정한 하도급업체와 계약하도록 요구한 사안에서도, 2심 재판부와 양 전 대법원장 측의 판례 해석이 갈렸다. 2심 재판부는 B시가 발주한 공사와 관련해 해당 팀장(피고인)이 시공사에게 감독·시정을 요구할 권한은 있지만, 시공사가 특정 하도급계약을 체결하도록 요구할 권한까지는 없는데도 월권적인 직권남용이 인정됐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피고인이 가진 감독권한으로 시공사가 선정한 하도급업체의 업무에 관해서도 직권 행사가 가능한 경우였다"며 "일반적 직무권한의 존재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이지 월권적 남용이 문제된 경우가 전혀 아니"라고 강조했다.
   
⑤건축허가권을 쥔 C시의 시장이 허가를 받으려는 업체들에게 기부금을 납부하도록 한 사안에서도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기부금을 납부하게 할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는데도 업체들에게 기부금을 납부하게 한 행위를 직권남용죄로 처벌한 사안이 결코 아니"라고 밝혔다. 돈을 내지 않는 업체 등에 대해 인허가를 지연시키거나 내주지 않는 등 시장이 가진 건축허가권이라는 직무권한을 남용했다는 게 해당 판결의 요지라는 것이다. 해당 판례 역시 월권적 직권남용이 문제된 사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재판독립 위해 직권남용 인정 vs "국민보다 법관 우선 사고"


앞서 2심은 재판사무를 핵심영역·행정사무·사법지원으로 3등분하고,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사무의 핵심영역'에 관한 직권은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게 되면 정작 가장 중하게 보호해야 하는 재판독립 침해 사안은 처벌할 수 없는 모순이 생긴다는 점도 유죄 성립의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서도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헌법과 법률, 법관의 양심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지 재판개입 행위에 대해 직권남용의 죄책이 성립한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며 "그 죄책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해서 재판독립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고 할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민주주의의 작동원리인 3권 분립과 법치주의를 거론하면서 "3권 분립의 내용 중 하나가 재판의 독립이라면 법치주의의 내용 중 하나는 죄형법정주의다. 재판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 죄형법정주의를 훼손해 형법 규정을 확대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의 원심 판단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보다는 법관의 지위와 권한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는 논리"라고 강조했다.
   

재판 결과 안바뀌었어도…재판개입 시도=권리방해 될까

또 직권남용죄 성립 요건 중 '권리행사방해' 결과 발생 부분의 법리도 상고심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통합진보당 의원직 상실 관련 행정소송 개입 사건'은 재판개입 시도가 있었을 뿐 실제 재판 결과가 180도 바뀌진 않았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재판관여 행위는 그 자체로 당해 재판이 사법행정권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하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 있는 외관에 해당하고 이는 그 재판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으로 재판권 행사가 방해됐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재판의 주체이자 사법부 소속 공무원인 개별 법관이 사법행정권자의 직무권한 행사에 대해 자신의 이중적 지위 중 어느 지위에서 대응해야 할지 불분명한 상황이 있고 △재판에서 법관의 심증 형성 과정을 외부에서 확인하거나 객관적 지표로 검증할 수 없다는 점 △이에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외관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특수한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상대방에게 '법령상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서 '현실적인 행사가 가능한 구체화된 권리'가 방해돼야 한다"며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초래했다는 막연한 결과까지 직권남용죄의 권리행사방해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는 것은 결과발생에 관한 요건을 형해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개입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은 소부 심리로 한 차례 결론을 내렸다. 앞서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의 재판개입 사건 상고심에서 '재판개입 직권 없이 남용 없다'는 논리를 승인하는 취지로 무죄를 확정했다. 양 전 대법원장 1심을 비롯해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다른 피고인들의 재판에서도 같은 취지로 무죄 선고가 나왔지만, 양 전 대법원장 2심은 "대법원의 일반적이고 확립된 판례라고 보기 어렵다"고 정면으로 도전한 상황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상고심은 오경미·권영준·엄상필·박영재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 2부에 배당됐다. 소부 대법관들의 의견이 불일치하거나 판례 변경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사회적 중요도가 큰 사건 또는 이같은 사항을 고려한 대법원장의 판단에 따라 전원합의체로 회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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