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에 추경 급물살…"핀셋 재정으로 물가 자극 막아야"

트럼프 호르무즈 압박, 외교 현안 넘어 경제 변수로
현대경제연 "고유가 장기화 땐 성장 둔화·물가 상승"
추경 규모 10~20조원 거론…유가 충격 완화용 재정 대응 검토
전문가들 "무차별 재정 대신 고유가 대응 '핀셋 추경' 필요"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멈춰있는 유조선의 모습.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충돌,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로 촉발된 국제유가 불안이 결국 한국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국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 주요국에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을 요구한 가운데, 정부는 이번 중동전쟁을 유가·물가와 내수, 산업 비용을 자극하는 대외 충격으로 보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추경에 따른 물가 상승 등을 우려해 고유가와 직결된, 꼭 필요한 부분에 재정을 투입하는 '핀셋 추경'이 이뤄져야한다고 지적한다.
 

중동발 에너지 충격에 추경 논의 급물살

16일 관가에 따르면, 이번 추경 논의가 급물살을 탄 배경에는 중동발 에너지 충격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추경을 통해 유가 급등 충격을 완화하고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에너지 취약 업종 지원에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석유 최고가격제에 따른 정유사 손실 보전과 에너지바우처, 물류·유통 업계 지원 등이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이번 추경은 단순한 경기 보강이 아니라 전쟁발 에너지 쇼크를 흡수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연구기관들은 이번 사안을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복합 리스크로 진단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4년 기준 한국의 경제 원유 의존도가 GDP 1만달러당 5.63배럴로 OECD 37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고 분석했다. 경제 규모는 세계 12위지만, 원유 소비량은 7위에 해당해 국제유가가 오를 때 인플레이션 압력과 경상수지 악화, 성장 둔화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게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거시경제 충격 추정치도 적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연평균 80달러 수준이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0.4%포인트 높아지고, 100달러 수준이면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낮아지는 반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포인트 오르며 경상수지는 260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유가가 150달러까지 치솟는 오일 쇼크 시나리오에서는 성장률 0.8%포인트 하락, 물가 2.9%포인트 상승, 경상수지 767억달러 감소를 제시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단순한 유가 상승을 넘어 저성장과 고물가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다.
 

경기 둔화 속 유가 충격…내수·물가 압박

황진환 기자

문제는 이런 충격이 경기 둔화 흐름 속의 한국 경제에 추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6일 발표한 '최근 경제 동향과 경기 판단(2026년 1분기)'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3% 감소했다. 민간소비 증가세는 둔화했고,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수출도 모두 감소세를 보였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의 중동전쟁까지 발발하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향후 비용 상승에 따른 공급 측 물가 압력이 커져 국내 물가 불안이 우려된다고도 덧붙였다. 유가 상승이 수입물가와 기업 비용을 끌어올리고, 결국 소비와 투자, 고용 전반을 누를 수 있다는 의미다.
 
에너지 구조 자체도 충격에 취약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차 에너지에서 석유 비중은 38.3%로 가장 높았다. 석탄 22.1%, 가스 19.8%, 원자력 12.9%를 웃도는 수준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또 국제유가가 연간 기준으로 하락했는데도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유류세 인하 폭 축소 영향으로 전년 대비 각각 2.1%, 3.4%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유가뿐 아니라 세제, 정유사 공급가격, 환율 등의 영향을 함께 받는 구조다. 이 때문에 중동 리스크가 커질 경우 소비자 체감 부담이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국내 주유소 가격은 일찌감치 전쟁 충격을 반영하고 있다. 오피넷에 따르면,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일부 하락세를 보였지만 하락 폭은 점차 둔화하고 있다.
 

공사비까지 번지는 고유가…'핀셋 추경' 필요성

산업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 13일 '건설동향브리핑'에서 최근 중동 정세 불안과 수입 원유 가격 상승이 국내 건설 생산비용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유가가 50% 오를 경우 전체 건설 생산비용이 1.06% 상승하고, 도로시설 분야는 2.93%까지 오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건설 투입 요소 가운데서는 경유가 전체 파급효과의 35.2%를 차지했고, 레미콘과 아스콘, 도로화물운송서비스가 뒤를 이었다. 건설비 부담 증가가 공공공사와 민간공사 원가를 동시에 밀어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민간 분석기관도 호르무즈 리스크를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 딜로이트 인사이트는 3월 1주차 글로벌 경제 리뷰에서 현재 전 세계 석유 흐름의 약 3분의 1, 천연가스 흐름의 5분의 1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고 짚었다.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하면 세계 경제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때 이번 추경은 단순한 경기부양용 재정 투입을 넘어서는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고유가와 직결된, 꼭 필요한 부분에 재정을 투입하는 '핀셋 추경'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합뉴스

연세대 경제학과 김정식 명예교수는 "전쟁이 장기화되면 유가가 오르기 때문에 추경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대신 유동성이 늘어나 부동산 가격과 환율이 또 오르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경 효과를 극대화하고 내수 부양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투자하는 데를 잘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악의 시기를 대비해 추경 속도를 조금 늦춰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가톨릭대 경제학과 양준석 교수는 "지금 추경은 조금 이르다고 본다"면서 "전쟁이 장기화 된다면 아마 2분기 말이나 3분기쯤에 절대적으로 추경이 필요할 텐데, 지금 추경을 하면 그때 돈이 모자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아직 구체적 규모를 확정하지 않았지만, 정치권과 시장에서는 10조원에서 20조원 안팎의 추경 가능성이 거론된다. 2006년 10월 국가재정법 제정 후 모두 18차례 추경의 총지출 순증 평균 규모는 13조7천억원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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