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철: 월간 마음 건강 시간입니다. 3월, 새 학년을 맞은 청소년들. 설렘과 함께 긴장과 부담도 커지는 시기인데요. 겉으로는 잘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중이 안 되거나, 아침마다 배가 아프고, 짜증이 늘었다는 이야기. 부모님들 걱정도 많아지는 때입니다. 오늘은 '새 학기 적응 스트레스와 청소년 마음 건강'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충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국주 교수와 함께합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권국주: 안녕하십니까.
◇권오철: 3월이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권국주: 흔히 '등교 거부'라고 표현을 많이 쓰는데요. 저는 '새 학기 적응 어려움'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방학 때는 괜찮다가 개학 이후 틱 증상이나 ADHD 증상이 악화돼 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고요. 이전에는 없던 분리불안이나 공황 발작 같은 새로운 정신과적 증상이 처음 나타나 병원을 찾는 아이들이 3~4월에 특히 많습니다.
◇권오철: 아이들마다 불안의 형태가 다를 텐데, 유형으로 나눠보면요?
◆권국주: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분리 불안형입니다. 특히 초등 저학년에서 많이 보이는데, 부모와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고 학교 가기를 힘들어합니다. 두 번째는 사회적 불안형입니다. 새로운 친구, 선생님과의 관계를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유형입니다. 세 번째는 수행 불안형입니다. 성적이나 과제에 대한 부담, '내가 잘 못할 것 같다', '뒤처질 것 같다'는 불안으로, 주로 고학년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권오철: 집중력 저하, 짜증, 복통 같은 신체 증상도 적응 스트레스로 볼 수 있습니까?
◆권국주: 그럴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울하거나 불안한 감정을 직접 말하지 못하고 몸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진단은 우울증인데 정작 본인은 우울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걸 의학적으로는 '가면성 우울(마스크드 디프레션, Masked depression)'이라고 하는데요. 짜증, 공격성 증가, 혹은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가슴이 답답하다 등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오철: 그럼 '학교 가기 싫다', '공부하기 싫다'는 말도 그냥 넘기면 안 되겠네요?
◆권국주: 물론 정말 공부가 싫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갑자기 힘들어한다면 그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지금 상황이 감당하기 벅차다', '실패할까 봐 두렵다'는 SOS 신호일 수 있습니다.
◇권오철: 틱이나 충동성 같은 증상이 새 학기에 더 심해지는 경우도 있죠?
◆권국주: 네, 그렇습니다. 틱, 강박, 충동성은 뇌의 도파민 시스템과 관련이 있는데요. 평소에는 억제하면서 생활이 가능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의 억제 기능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새 학기처럼 긴장과 스트레스가 커지면 기존 증상이 악화되거나, 새롭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권오철: 불안이 우울로 이어지는 과정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권국주: 적당한 불안은 정상입니다. 오히려 준비와 집중에 도움이 되죠.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불안이 지속되면 뇌가 지치게 됩니다. 그 상태가 오래 가면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무기력해지고, 결국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권오철: 배 아프다, 머리 아프다… 이걸 꾀병으로만 보면 안 되는 거죠?
◆권국주: 네, 그렇습니다. 이건 '신체화 반응'일 수 있는데요. 겉으로는 꾀병과 구분이 거의 안 됩니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실제로 아픈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때 부모가 "꾀병이다", "학교 가기 싫어서 그렇다"라고 단정하면 아이는 억울함을 느끼고, 이후에는 자신의 상태를 숨기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는 먼저 아이의 고통을 공감해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권오철: 그럼 이런 증상이 지속되면 문제 신호로 봐야겠네요?
◆권국주: 네, 맞습니다. 지속성이 중요합니다.
◇권오철: 학기 초, 학교 거부의 초기 신호는 어떤 게 있을까요?
◆권국주: 대표적인 게 '일요일 증상'입니다. 금요일, 토요일은 괜찮다가 일요일 저녁만 되면 잠을 못 자고 예민해지는 경우입니다. 이건 학교 가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권오철: 직장 가기 힘든 거랑 비슷한 건가요?
◆권국주: 비슷하죠. 월요병과 비슷합니다. 등교 직전이 되면 자꾸 화장실에 가고,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굼뜨고, 계속 미루게 되고, 지각도 잦아집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고, 특히 주말이나 연휴 때는 괜찮다가 일요일에 이런 모습이 심해진다면 학교 가기 힘들어하는 조기 경고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권오철: 짜증이 늘고 말수가 줄었다면, 부모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권국주: 아이들은 학교에서 버티기 위해 정신적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쓰고 돌아옵니다. 그래서 집에서는 이미 방전된 상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왜 자꾸 짜증 내냐"고 다그치면 아이들은 더 입을 닫게 됩니다. 이럴 때는 "요즘 많이 힘든가 보다", "애를 쓰고 있구나" 이렇게 공감부터 시작해야 아이도 말을 꺼내기 쉬워집니다.
◇권오철: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뭘까요?
◆권국주: 가장 흔한 실수는 '성급한 결론'입니다. 아이가 "학교 가기 힘들다"고 하면 부모는 마음이 급해서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노력은 해봤니?" 이렇게 바로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아이는 자신도 왜 힘든지 모르는 상태일 때가 많습니다. 이때 부모가 다그치면 "내 감정에는 관심 없구나"라고 느끼고 대화를 닫아버리게 됩니다.
◇권오철: "다들 그렇게 시작한다", "참아야지" 이런 말은 어떻습니까?
◆권국주: 부모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고, 틀린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 감정을 말로 설명하면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내가 왜 힘든지 말해보고, "아 내가 정말 힘들구나"라고 느껴야 그 다음에 조언이 받아들여집니다. 이 과정 없이 바로 결론을 주면 아이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단 충분히 듣고, 그 이후에 조언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권오철: 그럼 언제 개입하고, 언제 기다려야 할까요?
◆권국주: 참 어려운 부분인데요. 부모의 역할은 '베이스캠프'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힘들고 돌아왔을 때 먼저 보호해주고, 안아주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이후에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따로 시간을 만들어 현실적인 조언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권오철: 그래요. 학기 초, 부모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할 핵심은 뭘까요?
◆권국주: 가정에서의 안정감입니다. 불안이 높은 아이에게 학교는 전쟁터 같은 공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까지 또 하나의 학교가 되면 안 됩니다. 집에서는 아이를 무장 해제시키고 안심하고 쉴 수 있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권오철: 집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 있을까요?
◆권국주: 대화법이 중요합니다. 특히 "왜"라는 질문을 줄이시는 게 좋습니다. "왜 화났어?", "왜 학교 가기 싫어?" 이런 질문은 아이에게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대신 "힘들어 보이네", "오늘 많이 지쳐 보인다" 이렇게 감정을 짚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반응하면 이어가고,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면 억지로 캐지 말고 한 발 물러나는 것이 좋습니다.
◇권오철: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속으로 쌓아두는 아이들도 있죠?
◆권국주: 네,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인정 욕구가 강한 아이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 상태를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부모가 먼저 감정을 표현하는 '모델링'을 보여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비슷한 성향을 부모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 입장에서 엄마도 이런 게 힘들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불편한 감정을 먼저 표현해 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또 아이 이야기를 끌어낼 때 직접 묻기보다 남 이야기처럼 돌려서 물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 학교에서 힘들어하는 친구 없냐", "적응 어려워하는 애들 없냐" 이렇게 묻으면 아이들이 더 편하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권오철: 그래도 계속 어렵다면, 언제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 할까요?
◆권국주: 의학적으로는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봅니다. 또 증상이 짧더라도 학교생활이 어렵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면 치료가 필요합니다. 특히 아이가 학교를 못 가기 시작하면 소아정신과에서는 응급으로 봅니다. 이 상태가 길어지면 학교에 복귀하기 더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등교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거나,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친구 관계를 끊고 고립되는 경우도 치료가 필요한 신호입니다.
◇권오철: 이럴 때 조기 개입이 중요한 이유는 뭡니까?
◆권국주: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은 1년 쉬어도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 기간 동안 발달이 멈추게 됩니다. 우울이나 적응 문제로 친구 관계, 학교 적응 등 정상적인 발달이 중단되면 그 자체가 퇴행이 됩니다.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복귀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빨리 정상 상태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권오철: 지금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국주: 지금 느끼는 불안은 약해서가 아니라 잘하고 싶어서 애쓰는 과정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든 마음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너무 혼자 견디지 말고 주변 어른들에게 신호를 보내세요. 여러분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어른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권오철: 부모님들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국주: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부모도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부모까지 흔들리면 아이들은 기댈 곳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아이가 힘들수록 부모는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우리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아이에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권오철: 3월의 긴장은 아이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는 과정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아이의 신호를 조금 더 이해하고 부모의 마음도 덜어내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권국주: 감사합니다.
◇권오철: 지금까지 충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국주 교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