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청년 구직자들의 숙원인 '채용 공고 임금 명시 의무화' 제안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면서, '묻지마 채용' 관행에 제동이 걸릴지 관심이 쏠린다.
당장 개별 기업을 상대로 채용 시 임금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은 국회 입법의 문턱을 넘어야 하지만,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내년을 목표로 '산업별 임금 분포' 데이터를 공개해 시장의 임금 투명성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임금은 비밀" 청년 울리는 채용 관행에 李 "평균은 필요"
20일 노동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출범식 및 노동정책 토론회에서는 구직자들의 최대 불만 중 하나인 채용 시 임금 비공개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토론회 발언자로 나선 국제의료재단노조 한다스리 위원장은 "수많은 채용 공고에서 임금 항목이 '회사 내규에 따름', '면접 후 협의' 등으로 표기돼 지원자들이 쉽게 알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정보 비공개는 청년의 저임금 고착화로 이어진다"며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법 개정을 통해 채용 공고 시 임금 명시를 의무화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에 이 대통령은 "아주 일리 있는 말"이라며 "예를 들면 10%를 벗어나지 않는 평균 정도는 필요한 것 같다"고 힘을 실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우리나라는 기업별로 교섭하는 구조라 일종의 영업 비밀 문제가 있다"면서도 대안으로 "정부가 임금 정보를 취합해 산업별로 표준적인 임금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노사 협상을 촉진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법제화는 '아직'… 노동부, 국회 입법 논의 시 참여
대통령의 호응이 있었지만, 당장 모든 채용 공고에 연봉이 구체적으로 명시되기를 기대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현행 채용절차 공정화법 등에는 기업의 임금 정보 공개를 강제하는 조항이 없고, 다만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채용 조건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규정만 존재한다.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직업안정법 개정안을 통해 구인 시 근로조건 명시를 의무화했고, 같은 당 한정애 의원도 채용절차법 개정안을 통해 필수 근로조건 제시 의무를 명문화했다.
다만 여야 간 논의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노동부 역시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정부 주도로 제도를 강제하기보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향후 국회 입법 논의가 무르익으면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최소 금액 명시나 임금 범위 설정 등 적정 공개 수준을 모색하는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방침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청년 간담회 때마다 임금 공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는 만큼 논의가 시작되면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논의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임금 정보 공개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이미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6월 임금투명성 지침을 채택해 2026년까지 회원국들이 관련 법제를 마련하도록 의무화했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법은 없지만 캘리포니아, 뉴욕 등 주요 주에서 채용 시 임금 범위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브라질도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임금 정보 보고서 제출 의무를 부여했다. 이는 시장 내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성별 임금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7월 실태조사 2배 확대… 내년 '산업별 임금 분포' 공개
개별 기업의 임금 공개 법제화 논의와는 별개로, 김 장관이 언급한 '산업별 임금 정보 제공'은 국정과제의 일환으로 노동부 내부에서 이미 속도를 내고 있다.
노동부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매년 실시하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의 표본을 올해 약 2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업마다 직급 체계나 근속연수가 달라 이를 일괄 비교하기 어려운 만큼, 우선 산업을 기준으로 데이터를 정교화한다는 설명이다.
오는 7월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해 내년에는 산업별 임금 중위값과 상·하위 25% 수준 등을 공개, 누구나 시장의 임금 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부의 산업별 임금 분포 공개가 장기적으로 노동시장 내 이중구조와 임금 격차를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한국노동연구원 박명준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시급 공개나 독일의 산별 노사협약 표준 임금처럼 우리 노동시장에서도 지배적인 임금 규범, 즉 '준거점'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임금 분포 데이터가 축적되면 업종별 표준 임금 체계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노동조합도 개별 기업이 아닌 업종 단위의 표준 임금을 근거로 교섭에 나설 수 있어, 저임금 하락을 방어하고 전체 임금 체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표준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