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발 산업계 타격 본격화…석유화학 '도미노 셧다운' 우려

'세계 에너지 동맥'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 장기화
원유·나프타 공급 위기 신호…석유화학 업계 '아우성'
공장 돌릴 원료 없어 일부 중단 조치도
기초소재 원가 뛰고, 물류비 부담도 가중…산업계 파장 확산
정부, '대응 가능' 메시지…위기 심리 확산 차단에 주력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중동 전쟁으로 인해 '세계 에너지의 동맥'으로 여겨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이 장기화 되면서 국내 산업계의 비상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원유 수급 차질과 맞물려 플라스틱, 합성섬유, 고무 등 기초소재의 원천으로서 '산업의 쌀'로도 불리는 나프타 재고가 사실상 말라가면서 석유화학 업계는 '4월 위기설'의 한 가운데에 놓였다.

여기에 유가 상승에 따른 물류비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제조업 전반에 낀 먹구름이 짙어지는 모양새다. 이에 정부는 대응 가능한 상황임을 강조하며 위기 심리 확산 차단에 나섰다.
 

석유화학 업계 '나프타 공급' 끊겨…일부 공장 가동 중단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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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중동 전쟁이 3주 넘게 이어진 가운데, 미국의 각종 엄포에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이란은 강경 대응을 유지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불응 시 초토화'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해당 해협 개방을 압박했지만, 오히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협박과 테러는 우리의 단결을 강화시킬 뿐"이라고 맞받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세계 에너지 쇼크 국면이 장기화 될 수 있다는 비관론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위치한 이 해협은 중동 산유국들의 주요 수출 통로로서, 전 세계 원유 해상 교역량의 27%가 통과하는 '에너지 동맥'이다.
 
이곳이 막히면 에너지 뿐 아니라 제조업 원자재 공급을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은 특히 타격이 크다. 2024년 기준 한국이 수입한 원유의 약 70%가 중동산이며, 이 가운데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들어왔다. 나프타도 절반 이상은 수입을 하는데, 수입량의 대부분이 이 해협을 거쳐오는 중동산이다.
 
타격은 이미 현실화 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사들은 보통 보름치 나프타를 계약해 중동으로부터 공급받아왔는데, 이 공급이 최근 중단됐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4월에는 중동으로부터의 나프타 공급 일정이 없다"며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수입되는 나프타는 이제 끊겼다"고 말했다.
 
원유 정제로 나오는 나프타가 분해 설비(NCC)를 거치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핵심 원료가 생산된다. 이 원료들은 플라스틱과 고무, 포장·외장재 등 생활과 밀접한 기초 소재를 만드는 데 쓰인다.
 
나프타 품귀 현상에 직면한 다수의 석유화학사들은 고객사들에게 제품 공급 계약을 정상적으로 이행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는 안내를 하는 한편, 공장 가동률을 낮춰가며 긴급 조치를 이어가는 중이지만 거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내 석화업계 1위 기업인 LG화학은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일부 시설(2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이날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천NCC 역시 원료 공급 상황과 수익성 등을 감안해 소규모 프로필렌 계열 부산물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석화업계에서 나오는 제품들이 모두 제조업에 중요한 기초 소재라 생산을 중단할 순 없는 상황"이라며 "그러면서도 나프타가 말라 공장을 끄게 되면 재가동까지의 비용도 상당하기 때문에 가동률을 낮추고 있는 것인데, 이대로 상황 변화 없이 4월이 되면 '공장 셧 다운'이 잇따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나프타를 넘어 정유 업계에선 원유 자체의 수급 차질 우려가 크다. 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유조선이 지난 20일 충남 서산 대산항에 입항한 이후 향후 해당 경로를 통한 추가 입항 일정은 공백인 상황인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국내 비축유는 1억 9천만배럴로, 석유 소비량을 기준으로 따지면 2달치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한 전문가는 "비중동산 원유로의 대체 가능성, 수요 감축 또는 수출 통제 가능성 등 다양한 변수가 있어 현 비축분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늘어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유가 상승 등 여파로 비용 부담 '눈덩이'…"산업계로 충격 확산"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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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기초 소재 공급 차질이 본격화되고, 유가 충격까지 가중되면 제조업 전반의 악영향도 비례해서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19일 발표한 '미국·이란 충돌과 호르무즈 리스크, 공급망 시나리오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호르무즈 해협 차 상황이 3개월 넘게 이어지면 국제유가는 배럴당 150~180달러에서 움직이고 전 산업 평균 생산비는 9.4%, 특히 제조업은 11.8% 크게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산업연구원은 중동 전쟁의 산업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자동차는 원재료 가격 상승과 물류 차질, 중동 수요 위축 등에 따른 간접 영향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며 "반도체는 헬륨과 특수가스 등 공정용 소재 공급 차질과 장비 운송 지연, 물류비 상승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빙현지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석유화학, 운송업 등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들 위주로 가장 직접적인 충격 효과가 있다"며 "직접 충격이 간접 충격으로, 단기 충격이 장기 충격으로 점점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유가 상승과 맞물린 물류 비용 부담도 산업계 전반을 압박하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해상운송 운임 부담을 수치로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21기준 1706.95로 지난달 말과 비교해 약 3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 업계도 고유가 부담 가중으로 인해 운항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며 정부에 관련 조치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재완 한국무역협회 물류서비스실장은 통화에서 "중동 지역으로 물건을 수출하는 기업들은 특히나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번달이 넘어가면 수출 대체 루트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물류비가 수배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가 급한 상황이고, 이번달까지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버텨보겠다는 기업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산업계 불안이 커지자 정부는 원유 수급 문제는 대체 경로를 통해 해결할 수 있으며, 나프타 부족에 대한 대응 방안도 마련했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원유와 관련해 "각 정유사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대체 경로를 통해 물량을 확보 중이며,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도입하기로 한 2400만 배럴 가운데 3월 말과 4월 1일 두 번에 걸쳐서 400만배럴이 들어오고, 1800만 배럴도 4월 초중순부터 입항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양 실장은 나프타에 대해서는 "국내 나프타 공급의 약 55%를 차지하는 정유사들과 협의해 수출 물량을 국내로 돌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동 전쟁으로 인해 요소수 부족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된 가운데, 정부는 대란 수준의 부족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차량용 요소수는 중동 의존도가 낮고, 수급 불안이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비료용 요소수는 중동산 수입 비중이 약 40% 정도인데, 현재 비축 물량이 100일치 정도여서 당장 크게 위험한 상황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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