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란 전쟁과 미국의 패권 위기

연합뉴스

미국에게 밀레니엄은 혼돈으로 시작됐다. 2001년 9월 11일 본토가 공격을 받아 3천여명이 숨지는 미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기 위해 은신처인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2년 뒤에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이라크도 침공했다.

압도적 전력으로 미국은 전쟁 초기 아프간과 이라크 수도를 성공적으로 점령하고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다.
 
하지만 이후 현지 미군을 상대로 한 테러와 게릴라전으로 미국은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두 전쟁에서 미국이 완전 철수한 때는 모두 2021년으로, 정권이 4번이나 바뀌고 나서였다. 이 기간 동안 미군 6천여명이 사망했다. 전쟁의 직접 비용도 약 4조 달러로, 베트남 전쟁의 5배에 달했다.

이처럼 막대한 희생과 비용을 치렀지만 미국은 전쟁의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 이라크 전쟁의 이유였던 대량 살상 무기는 그 흔적도 찾지 못했다. 아프간에서는 빈 라덴을 보호하던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무엇을 위해 전쟁을 벌였는지 국제 사회는 미국에게 되물었다. 2009년 발생한 금융위기는 미국의 리더십을 더욱 흔들었다. 미국이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능력이 더 이상 없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란 수도 테헤란이 공습으로 폐허가 된 모습. 연합뉴스

27일로 미국-이란 전쟁이 한달을 맞는다. 며칠 안에 끝날 수도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달리 장기전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이란의 저항도 만만치 않지만 미국의 전쟁 수행 능력이 생각보다 허술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나의 전쟁조차 버거워하고 있다.

한국에 배치된 사드와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울 중동으로 빼내 '무기 돌려막기'를 하는가 하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 동맹국은 물론 중국에까지 군함 파견을 요청했다. 소해 전력(기뢰 제거 전력)도 약화돼 일본 자위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항상 미국의 발목을 잡았던 전쟁의 명분도 역시 문제다. 이란의 핵 능력 제거가 목적인지, 아니면 체제 전환이나 석유가 목적인지 불분명하다. 핵 능력 제거가 목적이었다면 성사 직전이던 핵 협상을 파기하고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 체제 전환이 목적이라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령의 하메네이를 제거해 결과적으로 젊고 더 강경한 무즈타바가 권력을 잡도록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25일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 국민들이 군부를 지지하는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깃발을 흔들며 새 이란 최고 지도자 무즈타바 하메네이의 포스터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석유가 전쟁의 목적이었다면 중동을 너무 쉽게 본 것이다. 이란은 베네수엘라가 아니다. 40년 이상 반미 신정 체제가 유지돼온 이란은 집권층만 제거하면 친미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적용되기 힘들다. 베네수엘라와 달리 현지에 진출한 미국의 석유 기업도 없다. 전쟁 과정에서 석유 인프라는 상당 부분 파괴될 수 있고 복구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사이 국제 유가는 급등하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는 얼어붙게 된다. 특히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카드를 늘 가지고 있다. 미국의 공격에 맞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국제 유가를 올리고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하리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워 놓지 않고 전쟁부터 시작했다. 그러고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했던 리언 파네타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문제가 엄청난 석유 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한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며 '내가 참여했던 모든 이란 관련 안보 회의에서 이 문제가 항상 거론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트럼프가 이란과 전쟁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은 자업자득이라고 지적했다.
 
동맹의 외면도 트럼프의 자업자득이다. 취임 이후 트럼프는 동맹국에게 고율 관세를 매기고 대미 투자까지 뜯어냈다. 동맹국이 안보에서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자존심을 짓밟았고 남의 나라 땅까지 내놓으라고 겁박하기도 했다. 동맹국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이란을 공격해 놓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군함을 파견하라. 파견하지 않는 나라는 기억해 두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 당시 50여개 나라로부터 지원을 받았던 것과는 달리 이번 이란 전쟁에서 미국을 군사적으로 돕는 나라는 이스라엘뿐이다. 이스라엘은 남의 전쟁이 아니라 자기 전쟁이니 미국을 '돕는' 나라는 없는 셈이다.
 
전력 약화와 전략 부재, 글로벌 리더십 위기까지 이란 전쟁은 패권국 미국의 쓸쓸한 뒷모습을 좀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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