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부영 회장 "입사 1일차도, 돈 받고 퇴사해도…출산 시 무조건 1억! 준다"




◇ 박성태> 오늘 뉴스쇼 인터뷰는 화제의 기업인입니다. 사업을 일구고 키운 부분도 있지만 사업도 사업이지만 이 부분에 더 관심을 많이 받았고 화제가 된 분입니다. 직원들에게 아이 1명 낳으면 그냥 1억 원, 둘 낳으면 2억 원. 직원뿐만 아니라 고향 주민, 학교 동창, 군대 전우, 동기, 그냥 막 쏴주신 분입니다. 부영그룹 회장이고 대한노인회장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유엔협회 회장인 부영의 이중근 회장 모시고 인생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이중근> 안녕하십니까?

◇ 박성태> 실례지만 올해 연세가 꽤 많으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 이중근> 꽤 많이 먹었어요.

◇ 박성태> 41년생이시죠?

◆ 이중근> 여든여섯이나 됐습니다.

◇ 박성태> 우리 나이로 여든여섯. 그런데 지금도 다 활동하시죠? 부영 경영도 하시고 노인회장도 맡고 계시고.

◆ 이중근> 예.



◇ 박성태> 알겠습니다. 따로 건강관리를 하시는 비결이나 이런 게 있으십니까?

◆ 이중근> 그냥 매일 먹고 자고 그런 거죠. 따로 특별한 건 없습니다.

◇ 박성태> 그래도 워낙 많은 일을 하시기 때문에 또 피곤하거나 그러실 것 같은데 일단 여든여섯에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신다면 따로 관리하시는 비결이 있나 해서 여쭤봤습니다.

◆ 이중근> 없어요. 먹고 자고 하는 거 이 정도지 다른 건 없습니다.

◇ 박성태> 알겠습니다. 따로 비결은 없다. 잘 먹고 잘 잔다는 말씀이 있으셨고요. 그러면 계속 화제가 됐던 부영의 출산 장려금 얘기부터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누적으로 직원들에게 지급한 출산 장려금이 134억 원. 그러면 아이 한 명당 1억 원씩. 이건 같은 거죠? 금액이 1억 원으로.

◆ 이중근> 그렇습니다.

◇ 박성태> 134명의 아이에게 1억 원을 준 셈이네요. 1억 원씩.

◆ 이중근> 예.

◇ 박성태> 하나 좀 여쭤보면 이게 24년부터 줬다고 들었습니다.

◆ 이중근> 지불은 24년에 했고 해당은 21년부터 21, 22, 23을 합쳐서 24년 시무식 때 지불했습니다.

◇ 박성태> 그러면 24년 시무식이니까 24년 1월에 23년 말에 생각하실 때 출산장려금 같은 걸 좀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갑자기 올해부터 하면 그전에 낳은 사람들이 억울해할 것 같으니 21년부터. 이렇게 된 거군요.

◆ 이중근> 그것도 있지만 22년경부터 제가 주장을 했을 겁니다. 여기저기 주장을 해도 얘기가 안 통하고 그래서 못 하고 있다가 그냥 24년이니까 21년, 22, 23이 3년이 해당이 되니까 제가 그냥 한번 해 버렸습니다. 사방에 부탁해도 말은 된다고 하면서도 이걸 여기서 합법적으로 좀 조치해 주면 좋겠다 했는데 안 해주기에 그냥 잘못하면 세금을, 좀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면서도 한번 해 버렸습니다. 그런 것이 2024년 시무식 때, 2월 5일 시무식 때 해버렸습니다.

◇ 박성태> 앞서 좀 뒤에 얘기를 하겠지만 어떤 환경 말씀하신 거는 세금 문제나 이런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출산장려금을 줬을 때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부분이군요.

◆ 이중근> 그래서 건의를 많이 했습니다.

◇ 박성태> 정부에요?

◆ 이중근> 네.

◇ 박성태> 그런데 잘 해결 안 되는데 그러면 주고 보자.

◆ 이중근> 그래서 그냥 안 되면 그 1억에 대해서 증여세가 10%거든요. 아이한테 그냥 직접 한번 해 버렸습니다. 그냥.

◇ 박성태> 이거 여쭤보겠습니다. 계속 회사에서 주는데 만약 쌍둥이를 낳으면, 세 쌍둥이면 3억 받는 겁니까?

◆ 이중근> 아이에게 주는 거니까 그 부모가 몇이었든 간에 아이는 숫자대로 지불하겠습니다, 하고 있습니다.

◇ 박성태> 알겠습니다. 제가 언론인 생활에서 항상 나쁘게 일단 보는 게 버릇이 돼서 여쭤보면 그러니까 쌍둥이를 낳을 것 같아서 입사를 했다. 회사에 부영에. 그럼 됐어요. 그래서 낳았어요. 그럼 어떻게 됩니까? 그래도 다 줍니까?

◆ 이중근> 아이가 나왔으면 아이에게 주는 거니까 줍니다.

◇ 박성태> 그러면 아이만 낳고 1억 장려금 받고 갔어요. 회사. 다른 데로 또 조건 좋다고 어디로 갔어요. 그래도 줍니까?


연합뉴스

◆ 이중근> 아니, 줘버린 돈이니까 그래도 줍니다. 내 돈을 이미 줘버렸는데 해외로 나갔다면 조금 그게 규제가 되겠습니다만 국내에 있다면 그것도 국민인데 어떻게 같은 대우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현재 입사 조건에 아이를 낳고 밖에 나가면 이 돈을 반환한다,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 박성태> 그래요?

◆ 이중근> 예.

◇ 박성태> 어차피 대한민국 국민에게, 저출산 문제에서 준 거기 때문에.

◆ 이중근> 그렇습니다. 또 입사한 지 하루 만에 낳은 사람도 한 분이 있었습니다.

◇ 박성태> 입사한 지 하루 만에요?

◆ 이중근> 입사한 지 하루 만에 낳으니까 약간 걱정하는 모양인데 입사 이후 낳은 걸로 당연히 처리해 드렸습니다.

◇ 박성태> 임신한 채로 입사해서 하루 만에 출산한 경우도 똑같이 금액에 차등 없이?

◆ 이중근> 없습니다.

◇ 박성태> 알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얼핏 보면 서울 도심에서 가장 화끈한 회장님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나라에 주는 돈이기 때문에 우리 회사와의 연관성을 크게 따지지 않고 주는 걸로 이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출산장려금을 실제로 받은 직원의 목소리를 저희가 따로 인터뷰를 해 왔는데요. 이 직원의 목소리를 잠시 듣고 이중근 회장과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출산 장려금 받은 부영그룹 직원 : 김윤기고요. 작년 7월 말에 태어났어요.

◇ 박성태> 직원입니다.

★출산 장려금 받은 부영그룹 직원 : 통장에 찍혔을 때요? 그때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다 통장에 넣어주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진짜 0이 8개가 찍힌 1억이 딱 쓰여 있는데 정말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는 거예요. 심지어 너희 회사 어떻게 입사하냐. 입사하고 싶다. 경력직 채용 없냐. 이런 얘기들 많이 들었고 정말 세금 떼는 거 없냐. 이런 질문이 되게 많았고요. 그리고 장려금을 받고 난 후에는 사실은 지금 나이가 굉장히 많고 이래가지고 이 출산장려금 덕분에 둘째를 낳을 용기가 더 생긴 것 같아요. 남편을 좀 이렇게 회유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장님한테는 정말 말씀드리고 싶은 게 정말 만나 뵙고 제가 실력은 부족하지만 밥이랑 국 따뜻하게 만들고 맛있는 반찬 만들어서 식사 대접해드리고 싶고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 박성태> 직원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직원은 아이를 낳아서 통장에 1억 원이 직접 꽂힌 경험을 한 직원입니다. 너무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고맙다. 회장님에게 식사 한번 정말 밥 잘 지어서 대접하고 싶다. 기업하는 입장에서 직원들이 이렇게 얘기하면 기분이 좋으실 것 같아요.

◆ 이중근> 기분 정도가 아니라 이런 기분들이 국가 장래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 박성태> 일부 다른 기업들도 그래서 출산장려금을 좀 따라 하는 것 같습니다. 크래프톤 게임 회사가 있고요. 이런 게 좀 더 확대되는 걸 보고서도 좀 만족스러우시죠?

◆ 이중근> 나비 효과라고 용어를 쓰죠. 좋은 일이 생길 때 따라서 하는 것들. 그래서 나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타 기업들도 많이 인용해 가고 있는 걸로 알고 있고 딱 1억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저 금액의 차이는 있더라도 많은 분야에서 그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서 이런 운동이 점차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대단히 잘한다. 잘했다 하는 기분이 들고 있습니다.

◇ 박성태> 앞서 이 직원도 정말, 모든 직장이 사실 믿기지 않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장면 같은 게 있으십니까?


류영주 기자

◆ 이중근> 정말 어려운 사람들, 정말 아이는 필요한데 키우는 것도 문제고 또 입사 이후 심지어 하루 차이로 아이를 낳았을 때 부인 당할까 봐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해외 취업자가 둘씩 낳더라도 결국 서류 절차를 못 밟아서 전전긍긍한 예도 봤고 해서 그분들이 나름대로 제대로 대우받을 때 즐거워하는 것은 회사 전체의 즐거움이고 또 사회나 국가 장래에도 크게 보탬이 될 것 같다.

◇ 박성태> 알겠습니다. 그 고민을 하시는 건 회장님이, 저도 그 뉴스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순천. 순천의 이 동네가 운평리입니다. 전남 순천의 운평리.

◆ 이중근> 제 고향까지 아시는군요. 감사합니다.

◇ 박성태> 아니, 동네 주민들에게 1억 원을 쏘셨어요. 1인당. 일괄적으로 1억 원입니까? 아니면 누구는 1억 원 어떤 분은 또 어떻게 이렇게 좀 다르고 차이가 있었습니까?

◆ 이중근> 제가 순천을 출발할 때가 56년에 타향으로 나왔는데.

◇ 박성태> 1956년에.

◆ 이중근> 56년까지 살던 분들은 전부 다 1억, 그 이후에 새로 이사 온 분들은 차등을 좀 두었습니다.

◇ 박성태> 차등을 두고.

◆ 이중근> 제가 살던 당시에 계셨던 분들은 똑같이 다 1억으로 했습니다.

◇ 박성태> 몇 명이 있었어요?

◆ 이중근> 280 몇 세대인가, 300세대가 채 안 됐습니다.

◇ 박성태> 세대별로 하신 거죠?

◆ 이중근> 세대별로 했습니다. 6개 부락이니까 부락이.

◇ 박성태> 그럼 56년 전에 그러니까 1956년 이전에 살고 계셨던 세대.

◆ 이중근> 세대는 그냥 1억 똑같이 하고 그 이후에 새로 이사 들어온 분들은 좀 차등을 두었습니다.

◇ 박성태> 그러면 사실 56년 이후에 오신 분들은 회장님하고는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 많잖아요.

◆ 이중근> 없죠.

◇ 박성태> 그분들은 몇 천 받으셨어요?

◆ 이중근> 몇 천만 원씩 했을 거예요. 비용 차등을 둬서.

◇ 박성태> 차등을 둬서.

◆ 이중근> 10년, 10년 이상 그런 식으로 차등을 뒀을 겁니다.

◇ 박성태> 내 고향에 이렇게 살아줘서 고맙다가 되시는 건가요?

◆ 이중근> 살아줘서 고맙기도 하고 고향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도 참 좋은 일이죠. 고국 있다는 소리나 고향이 있다는 소리나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 박성태> 그러면 직전에 이사 가신 분들은 어떻게 해요? 56년 전에 순천 운평에 사시다가 회장님께서 내 고향에 56년 전부터 살았던 분들에게 세대당 1억 원 이렇게 했는데 직전에 이사 가신 분들은 어떻게 돼요?

◆ 이중근> 직전에 이사 갔어도 그 집이 비지 않습니다. 직전에 이사 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혜택이 갑니다.

◇ 박성태> 그 사람에게 혜택이.

◆ 이중근> 그 집에.

◇ 박성태> 그 집에. 그렇군요. 인생이 이렇습니다. 직전에 이사 간 분은 1억 받을 기회를 놓쳤고.

◆ 이중근> 직전에 이사 온 분은 해당이 되고.

◇ 박성태> 해당이 되고. 알겠습니다. 저희 뉴스쇼에서 운평리 마을 주민의 인터뷰를 과거에 했었습니다. 잠시 같이 들어보겠습니다.



★기부금 받은 고향 주민 : 5월 말경쯤 됐는데 이장님이 통장 한번 가서 확인해 보세요. 그러더라고요. 선물이 들어왔을 겁니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장난하는 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꿈 같았죠, 꿈. 이거 실제 긴가 아닌가 이게 장난인가도 싶었고 농촌에 살다 보면 빚도 지는 사람도 많고 돈도 필요하지만 이런 걸 가득 짊어지고 있는데 그때 말하자면 논에서 벼 같은 것을 한 짐 짊어지고 일어나지 못 해요. 그럴 때 뒤에서 누가 밀어주면 잘 일어난단 말입니다. 딱 그런 기분이에요. 저는 시방. 그리고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 박성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라고 얘기를 하셨습니다. 갑자기 그러면 결심하게 된 거는 내 고향에게 이렇게 기부를 해야 되겠다. 보통은 학교를 짓거나 다른 시설을 하지 이렇게 주민들에게 직접 돈을 꽂아주는 건 흔치 않은 일이거든요. 이런 방식을 생각하신 따로 이유가 있으십니까?

◆ 이중근> 이유가 있는 게 어느 집안에 부자가 났다 해서 그 집안에다가 돈을 나눠주는 거는 못 봤습니다. 못 봤는데 저는 가만히 생각하니까 가까운 친척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지사인데 그거는 안 하고 뭔 큰 국가 기구에 증여하고 한 것은 잘하고 유명해지지만 유명해질수록 그 가까운 친척들은 쟤가 부자 되더니 좋은 짓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관계가 없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래서 가까운 친척에 대한 대우도 하자 해서 상당히 많은 돈들을 주었습니다. 같은 동네에 만약에 반이면 반은 친척이니까 혜택을 받고 그 나머지는 친척이 아니니까 혜택을 못 받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 반도 주는 방법은 그냥 1억 정도는 다 주자 해서 그럼 동네만 하면 그 이웃 동네도 뭐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그걸 리로 해버리면 좀 불평이 적지 않겠느냐. 그래서 리로 적용을 해 버렸던 것입니다.

◇ 박성태>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원래는 친척들을 좀 챙기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고 이 가족, 친척의 개념이 점점 넓어져서 나랑 그래도 안면이 있고 가까웠던 분들을 이분들이 나의 사촌이다라고 규정하고 이분들을 도와주자 이렇게 된 거군요. 사실은 가족이 확대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중근> 확대가 돼도 한계는 동네에서 어느 집까지는 내 친척이니까 혜택을 받았고 바로 옆집은 또 친척이 아니니까. 그분들이 볼 때 자기들끼리만 이런 얘기를 들을 것 같고 해서 그냥 동네 전체를 친척이 아닌 동네의 사촌으로, 친척은 친척으로 그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 박성태> 알겠습니다. 이중근 회장의 이 여러 기부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그렇군요. 사실 그거 말고도 학교를 통한 기부, 또 해외 기부, 많은 기부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거는 나도 성공했는데 돕고 싶다. 이 기부의 배경은 뭡니까?

◆ 이중근> 기부의 배경은 처음에 출발이 제가 임대주택을 합니다. 임대주택을 하는데 처음에 순천에 연향초등학교라고 기부를 하게 됐는데 그 이유가 순천시 변두리에다가 임대주택,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변두리에 임대주택이 있었습니다. 임대주택을 시작했는데 임대주택이 영업을 해야 할 텐데 도시 변두리가 되니까 영업이 될 것 같지가 않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교육청에다 대고 우리도 학교를 좀 비워주시오. 초등학교가 있어야 집 장사가 잘될 것 같아서, 그러니까 우리 예산이 없소. 예산 확보되면 지어주겠습니다. 그런 얘기를 해서 그래서 땅이라도 주시오. 그러면 건물은 내가 짓겠습니다 해서 땅들을 제공을 받아서 건물을 지어서 개교를 하면서 아파트를 준공하니까 집이 잘 팔리대요.

◇ 박성태> 학교가 있으니까요.

◆ 이중근> 학교 분위기가 좋으니까. 그래서 장사 요령의 하나였지 꼭 기부를 할 목적만은 아니었습니다.

◇ 박성태> 처음에는 사업성을 보고.

◆ 이중근> 그래서 그것을 연결해서 기부를 했다고 하니까 기부도 한 셈 치고 장사도 한 셈 치고 양득이 돼서 만족합니다. 출발이 그렇게 돼서. 자꾸 잘했다고 칭찬하니까 칭찬도 들어서 좋아서 여유가 생길 때마다 기부를 조금씩 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좀 액수가 늘었습니다.

◇ 박성태> 사실 어떻게 보면 그게 또 솔직한데 하다 보니까 평가도 좋고 기분도 좋고 사업도 잘 되고.

◆ 이중근> 형편 되는 대로 조금씩 조금씩 더하다 보니까 좀 늘었습니다.



◇ 박성태> 알겠습니다. 최근에 유엔 한국협회 회장에 지난달에 2월에 취임했습니다. 여기가 잘 모르는 분들도 많아서, 어떤 곳입니까?

◆ 이중근> 그게 UN의 문자 그대로 국제연합의 평화와 우호 증진의 목표가 있는 건데요. 여러 가지 단체나 민간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도움 받았던 유엔에 대해서 길이 알리면서 기능적으로 보완 관계에 있던 것을 노력을 통해서 보답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 박성태> 그렇군요. UN데이가 과거에, UN데이가 있고 과거에 공휴일이었다고 그래요. 그런데 다시 공휴일로 재지정을 하자, 이런 말씀을 UN협회에서 하신다고 그러는데 좀 더 설명을 해 주신다면?

◆ 이중근> 그게 75년까지 UN데이가 공휴일이었습니다. 그 행사에 대통령이 나와서 직접 축사를 하시고 국가 중에 국가 행사로 했습니다. 그 얘기는 아시다시피 지금 47년에 언커크 한국임시위원단이 있었죠. 거기 와서 우리가 48년 선거 치러서 국가가 성립됐고 이후 50년에는 6.25를, 전쟁을 통해서 유엔군이 와서 지켜주고서 이 나라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50년부터 대통령이 직접 축사를 할 정도로 국가의 제1 행사로 치렀습니다. 그러다가 75년도에 와서 북한이 유엔 관계기관에 가입했다 해서 76년부터 폐지를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그 언커크를 통해서 우리가 국가가 성립이 됐고 또 6.25 때 유엔군에 의해서 국가가 유지, 존속됐는데 그 은혜에 대해서는 인정도 해야 되고 존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UN데이로 휴일로 재지정해서 지구상의 유일한 유엔에 의해서 도움받은 국가, 성립된 것은 우리가 유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휴일로 지정하고 관계국들이 그때 언커크에 참석했던 국가가 8개 국가고요. 그때 메논이 대표가 돼서 한국의 선거를 다 치러줬습니다. 그래서 6.25 때 참전국이 전투 의료 22개국, 그리고 금융 지원이 38개국입니다. 거의 60개국. 그리고 도합 합하면 68개국이나 되는데 그중에 5개국은 중복됩니다. 그런 관계를 유지하면 우리 후손들이 또는 우리 국가가 차후에 외교적으로 활동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돼서 유엔을 존중하고 유엔에 의한 나라로 존속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을 말씀드립니다.

◇ 박성태> 사실 한국전 때 유엔의 참전국들이, 동맹국들이 와서 지켜줬다. 고마움이 사실 큰 부분이 있죠. 알겠습니다. 지금 41년생, 우리 나이로 여든여섯이신데 노인회장, 유엔한국협회 회장 그리고 세계 한인상공인 총연합회 회장. 맡고 계신 직함이 많아요. 여기다 부영 회장도 당연히 있으시고요. 80년 넘게 쭉 일을 계속 하시는 거잖아요. 어떤 느낌이신지. 뭐랄까요? 비결이랄까요? 보람이랄까요? 내가 해보니까 이런 게 가장 중요하더라, 이런 게 있으십니까?

◆ 이중근> 중요한 것이 지식이나 실력은 젊은 사람들이 월등한데요. 상식은 노인들이 더 많데요. 그래서 상식과 지식이 부딪힐 때는 특히 법률 계통의 조문은 상식이 이길 수가 없데요. 조문에, 특히 법률 조문에서는. 그러나 상식을 계속 도덕과 예의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상식이라고 한다면 상식이 그래도 안정되게 자리를 잡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가 아닌가 생각해서 상식을 계속 좀 알려주고 싶은 생각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고 현재 UN데이도 상식으로 어찌 신세 진 것을 모른단 말이냐. 그런 입장에서 규정 따지기 전에 우리가 생겨나고 존재하고 하는 것에 대해서 예의는 갖춰야 할 것 아니냐. 그래서 감사하는 그 감사 자체가 상식 아니냐 그런 의미에서 부지런히 말을 해 보고 있습니다.

◇ 박성태> 여든여섯에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 지금 제 나이가 50대 중반이거든요.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한 말씀해 주신다면?

◆ 이중근> 젊은 사람한테.

◇ 박성태> 50대 중반이요, 제가.

◆ 이중근> 50대만이 아니고 우리 후배들. 후배라 하면 제 아들딸이 있고 손자손녀가 있습니다마는 결국 그들이 국가 장래를 짊어져야 되는데 우리 지금 노인회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고난을 많이 겪어 왔지만 그래도 세계 10대 경제 국가가 만들어 놨습니다. 그래서 우리 때 식량 문제를 해결했고. 그래서 옛날에 2000년도까지는 인사 자체가 진지 잡수셨습니까? 밥 먹었어가 인사였는데 안녕하십니까? 생긴 자체가 2000년 이후에 생긴 용어입니다. 우리 후배들이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우리 후배, 모든 국민은 우리 노인들의 인자를 다 이어 받았을 테니까 이 강대국을 만든 노인들이 못지않게 우리 후배들도 이 나라를 잘 지킬 것으로 나는 확실히 믿습니다.

◇ 박성태> 한국인의 인자는 우리가 이미 입증했다.

◆ 이중근> 그렇습니다.

◇ 박성태> 너희들도 의심치 마라라는 말씀이시군요. 사실 제가 50대 중반에게 해 주시고 싶은 말씀 여쭤보고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따로 여쭤보려고 했는데 말씀을 다 해 주셨습니다.

◆ 이중근> 전부가 다, 노인의 인자는 우리 젊은 손자들이 다 미치고 있습니다.

◇ 박성태> 사실 DNA가 비슷한 게 많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 너희들도 성공할 것이다. 의심치 말아라. 피가 그렇다. 이렇게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부영 또 대한노인회 또 한국유엔협회 회장직을 맡고 계시고 우리의 피를 믿어라라고 말씀하신 이중근 회장과 인생 얘기 들어봤습니다. 회장님 고맙습니다.

◆ 이중근> 감사합니다.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