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한글 현판 놓고 "국가 정체성" vs "역사 왜곡 우려"

광화문 현판 토론회…'기존 한자 현판 유지, 아래 한글 현판'
찬성 측 "한글, 대한민국 정체성 드러내는 상징적 조치"
반대 측 "문화유산의 원형성, 역사성 훼손할 수 있어"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 의견 수렴을 위한 토론회. 연합뉴스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추가로 다는 방안을 두고 찬반 의견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31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회의실에서 열린 '광화문 현판 토론회'에서는 한글 현판 추가 설치를 둘러싼 상반된 주장이 거세게 충돌했다.

이번 토론회는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월 제안한 광화문 한글 현판 설치 구상을 놓고 각계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 방안은 2023년 3층 누각 처마에 설치된 기존 한자 현판은 유지한 채, 그 아래에 한글 현판을 별도로 다는 내용이다.

광화문에는 1968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한글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8월 15일 광복절을 계기로 원형 복원을 이유로 한자 현판으로 교체됐다.

이후 2023년 10월에는 균열이 생긴 기존 한자 현판이 철거됐고,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를 쓴 현재의 한자 현판이 새로 설치됐다.

찬성 측은 한글 현판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발제에 나선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다는 일은 국가의 정체성을 문화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한글은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기본인데도 국가 상징 공간인 광화문에 한자만 있고 한글은 없다"며 "한글 현판 설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주성을 세계에 드러내는 헌법적 가치의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김주원 한글학회 회장도 "한글은 우리 민족을 오늘날 여기까지 있게 한 혁신의 산물"이라며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며, 그 혁신 중 하나가 바로 광화문 한글 현판 달기"라고 밝혔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 원장은 "광화문 한글 현판 설치는 역사 왜곡이 아니라, 후손의 자각과 시대정신을 더해 역사를 완전체로 만드는 과정"이라며 "한글 현판은 대한민국 문화관광 콘텐츠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 측은 문화유산의 원형성과 역사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은 "한글 현판은 역사를 왜곡하고 옛사람의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문화유산은 우리가 물려받은 과거의 흔적"이라고 했다.

이어 "시류에 따라 문화유산을 변형하는 것은 과거의 물질 증거를 조작하는 것"이라며 "과거에 개입하지 말고, 과거가 당시 사회와 문화를 스스로 증언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자 현판 아래에 한글 현판을 더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이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한자 현판 아래 한글 현판을 덧붙이는 것은 단순한 발음기호 표기에 불과하며, 이는 오히려 한글의 주체적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현판 자체가 한문 문명권에서 나온 것이므로 한글 표기는 다른 형식을 찾는 것이 더 맞다"고 했다.

홍석주 서일대 건축과 교수도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단다면 최근에 복원해 겨우 제모습을 갖춘 고종 당시 광화문의 모습을 왜곡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지금은 원형에서 멀어지는 복원이 아닌 원형에 가까워지는 복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각적인 결론보다는 논의를 더 이어가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왔다. 김권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전통과 현대의 혼종성과 역동성이 공존하는 광화문 공간을 어떻게 가꿔나갈 것인가란 물음은 미래를 향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문체부는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광화문 한글 현판 문제를 둘러싼 추가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문체부 누리집에 의견 게시판을 열어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전문가 의견 조사와 대국민 설문조사도 진행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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