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건설 원가 '쇼크'…공사비 인상 둘러싼 분쟁 불가피

유가·나프타 폭등…건자재 인상 도미노에 공사비 인상
"경유값·물류비까지 덮친 위기…불가항력 인정이 분쟁 핵심"
관공사 현장, 배임 우려에 예산 증액 '신중'
해외건설 단기적 위축…전후 재건의 기회 반전

아파트 건설현장. 강민정 기자

중동전쟁 장기화로 국제 유가와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국내 건설업계의 공사비 산정 체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에너지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페인트와 레미콘 등 필수 자재 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지자, 현장에서는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시공사와 발주처 간의 대립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에너지·물류비 동반 상승이 부른 '원가 쇼크'

공사비 인상의 동인은 에너지 수급 불균형에 따른 전방위적 원가 상승이다.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뛰면서 페인트와 혼화제 등 화학계 자재값이 급등한 것은 물론, 건설 장비와 운송 트럭의 주 연료인 경유 가격 상승이 물류비와 장비 운영비를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고조로 인한 해상 물류 비용(통행료) 가산과 고환율이라는 대외 악재가 겹치며 건설 원가를 구조적으로 압박하는 형국이다.

페인트 업체들은 제품별로 20%에서 최대 55%까지 인상된 단가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레미콘 역시 원료인 에틸렌 기반 혼화제 가격 상승과 경유가 인상이 맞물리며 가격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창호와 단열재 등 주요 마감재도 나프타 분해시설(NCC) 가동률 하락에 따른 공급망 불안의 영향으로 가격 인상이 예상된다.

원가 상승 지표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1분기 103.04였던 건설공사비지수는 2022년 113.77로 상승한 이후 현재는 150 선에 육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중동발 위기의 파급력이 2022년 자재 대란 당시를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유가가 오르면 자재 생산 원가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의 운영비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건설장비와 운송 트럭이 대부분 디젤 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경유 가격 상승은 공사 원가에 즉각 반영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환율 상승 역시 원유 도입 비용을 높일 뿐만 아니라 달러 결제 기반인 수입 자재 가격을 끌어올리는 가중 요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불가항력' 인정 여부 놓고 시공사-조합 간 대치 국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형 건설사들은 조합에 공사비 증액과 공기 연장을 공식 요청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최근 서울 마천4구역 재개발 조합에 발송한 공문에 따르면, 3.3㎡(평)당 공사비를 기존 약 584만 원에서 959만 원으로 약 75.6% 인상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총공사비 규모도 기존 3834억 원에서 6733억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가장 큰 쟁점은 현 사태를 '불가항력'으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시공사 측은 현 상황을 전쟁 등 불가피한 사태로 인정받아 지체상금(공사 지연 배상금)을 면제받고 비용을 보전받으려 하지만, 발주처인 조합은 이를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시공사는 지금 상황을 천재지변과 전쟁 같은 불가항력적인 사태로 인정받아 지체상금을 면제받고 추가 비용을 정산받으려는 의도이나, 이는 아직 일방의 주장인 상태"라며 "과거 코로나19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불가항력 사태로 인정받지 못한 선례가 있어 향후 치열한 분쟁이 예상된다"고 짚었다.
 
민간뿐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가 발주하는 관공사(官工事) 현장의 고충도 적지 않다. 이 연구위원은 "관공사에서는 근거 규정 없이 비용을 추가 지출할 경우 향후 배임 혐의로 감사를 받을 수 있다"며 "불가항력 상황인지에 대한 법원의 판례나 상위기관의 공식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정부 차원에서도 공사비 증액을 결정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해외 건설은 명과 암…단기 수주 위축, 장기 재건 기회

중동 지역에 진출한 국내 업체들은 인력 철수와 공사 중단이라는 단기적 악재를 맞이했으며, 현지 국가들의 신규 발주 역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은형 연구위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건 시장'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위원은 "전쟁 종료 후 파괴된 인프라를 복구하는 재건 사업의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며 "기존에 사용 중이던 인프라가 손상된 것을 복구하는 공사 물량이 먼저 발주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업황 반전을 기대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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