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시내에서 동북부쪽으로 차량을 타고 한 시간 이상 달리다 보니 큰 도로를 가로질러 안내판이 나온다. 중국 4대 국가과학센터가 자리 잡은 화이러우 과학성(怀柔科学城)이다. 중국에서 '성(城)'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생활공간을 말한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촌이 기업과 상업화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곳은 물리학, 생명과학, 재료과학, 환경, 대기과학 등 기초과학에 특화된 곳이다.
이 가운데 2일 취재진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다중모드 생체 이미징시설(Multi-modality Biomedical Imaging Facility)이다. 생체 이미징시설은 생명현상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특수 현미경'이라고 할 수 있다.
시설 소개를 맡은 선문(가명) 베이징대 교수이자 수석엔지니어는 "모두 3개의 건물이 각각 다른 이미징 방식을 위해 설계됐다"면서 "이 세 개의 건물을 통해 인간 몸의 미터 단위에서 분자 단위인 나노미터까지 스케일을 넘나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중모드'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3개의 건물은 각각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기), CT(컴퓨터단층촬영기), MRI(자기공명영상기), 초음파 같은 의료 이미징 △조직 및 세포 관찰 △단백질과 핵산의 구조 분석 등을 담당한다. 이런 방대한 이미징 데이터를 병합하기 위해 컴퓨터 과학자와 수학자도 함께 일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 장비를 스스로 개발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선 수석엔지니어는 "전시관에 있는 이미징 시설들은 실제로 우리 팀이 직접 제작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전신 고해상도 이미징 시스템은 "인체 내 대사물질을 이미징할 수 있는 가장 민감한 의료 영상 장비"다. 그는 "아주 작은 종양도 검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귀를 솔깃하게 한 건 '초소형 3광자 현미경'이다. 크기가 새끼 손톱보다 작은 2.2g에 불과했다. 선 엔지니어는 "매우 독특하고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다"고 전했다. 이 현미경은 쥐의 머릿속에 심으면 쥐가 자유롭게 활동하는 동안 뇌의 신경 활동을 관찰할 수 있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은 연구자들이 개발한 기술을 직접 상용화한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 팀의 모든 연구 책임자는 각자 회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다중모드 생체 이미징시설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비현실적으로 들릴 만큼 거창했다. 선 엔지니어는 "2035년까지 인간이 150살까지 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멀지 않은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 둘러본 곳은 '다장 저온과학기술(多场低温科技)'이라는 회사다. 나노기술을 이용해 극한 환경에서 움직이는 초정밀 장비를 만드는 곳이다.
예를 들면 영하 269도로 우주 공간보다 춥거나 MRI(자기공명영상기)보다 몇 배 강한 자기장이 있는 환경에서도 오차 없이 나노미터 단위로 움직이는 '로봇 팔' 같은 것이다.
창업자 총쥔좡(丛君状)씨는 기초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17년에 베이징 시내에서 회사를 차렸다. 처음 시작은 두명이었고 그때 나이는 겨우 28살이었다. 이후 연구실 제공 등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과학성으로 옮겼다.
총 씨는 과학성에 대해 "하드테크놀로지 창업에 적합한 토양을 갖춘 곳"이라고 했다. 이유는 "최고의 석사·박사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 이라면서 "연구와 개발 능력이 있는 팀을 쉽게 조직할 수 있다" 고 전했다.
회사는 4~5년 사이 빠르게 커져 해당 분야에서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가 됐다. 총 씨는 "직원이 15명 수준에서 170~180명으로 10배 이상 늘었고, 영업매출도 1천만 위안(약 18억 원)대에서 2억 위안(약 360억 원) 정도로 뛰었다"고 말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각국에서 몰려온 박사만 20명이 넘는다.
보유하고 있는 기술에 대해선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고,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으면 나노급 자동화의 개념이 된다" 면서 "이것이 바로 우리 회사가 만드는 제품" 이라고 설명했다.
회사가 만드는 부품은 미세한 공정이 필요한 반도체, 집적 회로 제품군이나 과학 연구 기기에 들어간다. 그는 금속으로 된 물체를 들고 "수술 로봇과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 봉합하는 데 사용한다" 고 설명했다. 그가 '극단적인 환경'이라고 한 이유는 안구, 신경, 모세혈관 등 초정밀도가 요구되는 수술이기 때문이다.
총 씨는 "6년이 지나서야 첫 월급을 받았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에 서게 됐다"며 한국, 북미, 싱가포르, 일본, 유럽, 중동 등지에 수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한국 업체는 대기업 중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