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스포츠레터] 비상식·불공정이 판치는 챔프전? 총재 버프 논란을 대한항공이 극복할 수 있을까요?

지난달 대한항공의 정규 리그 1위 시상식에서 조원태 KOVO 총재(오른쪽부터)와 대한항공 정지석, 한선수, 러셀, KOVO 신무철 사무총장 등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한 모습. KOVO

V리그의 축제인 봄 배구, 그 중에서도 우승컵이 걸린 최후의 승부 챔피언 결정전. 배구 팬들과 선수들이 후회 없이 즐겨야 할 무대가 경기력이 아닌 다른 문제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가장 공정해야 할 스포츠 경기에서 비상식과 불공정 등 다소 듣기 불편한 말들이 난무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먼저 시작된 여자부 챔프전에서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달 26일 한국도로공사는 김종민 감독과 재계약 불가 방침을 밝혔습니다. "김종민 감독과 함께 한 지난 10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는 도로공사는 계약 기간이 3월 31일까지인 김 감독이 지난 1일부터 진행되는 챔프전까지만 팀을 이끌겠다고 한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챔프전을 불과 5일 앞두고 내려진 결정. 더군다나 10년 동안 팀을 이끌었고, 도로공사를 정규 리그 1위로 챔프전으로 올린 김 감독을 내친 도로공사였습니다. 결전을 코앞에 앞두고 사령탑을 날리는 어처구니없는 도로공사의 행보에 배구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정규 리그가 끝나는 3월까지가 계약 만료 기간이라고 해도 팀이 포스트 시즌(PS)에 진출하면 자동으로 연장이 되는데 도로공사의 방침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상식을 벗어난 구단 운영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도로공사는 정규 리그 1위로 챔프전에 직행해 2주 동안 비축했던 체력적인 우위를 전혀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정규 리그 3위로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까지 3경기를 더 치른 GS칼텍스에 1경기도 이기지 못한 채 도로공사는 3연패로 씁쓸히 우승컵을 내줘야 했습니다.

2주 동안 휴식보다 김 감독이 갑자기 떠난 충격으로 5일 동안 선수들이 받았던 정신적인 피로가 훨씬 더 컸기 때문입니다. 별안간 날벼락처럼 감독 대행을 맡은 김영래 수석 코치는 지난 1일 GS칼텍스와 1차전에 앞서 "(김 감독 관련) 기사가 나가고 나서는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 했다"면서 "코치들도 그 일 이후 자지도 못 하고 먹지도 못 하고 있는데 나는 6kg이나 빠졌다"고 마음고생을 털어놨습니다.

여기에 10년 동안 2번 우승을 이끈 김 감독의 전술 공백도 컸습니다. 김영래 대행은 1차전에 앞서 "혹시 경기 중에 돌발 상황이 생겨서 내가 수를 틀리게 하면 선수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걱정"이라고 우려를 드러냈는데 경기 후 "정말 많이 힘들고 무게감, 압박감이 엄청 크더라. 선수들을 너무 믿고 작전 타임이나 교체가 늦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우승을 위해 시즌은 물론 시즌 전부터 피땀을 흘려온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이들을 지원해온 구단 직원들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물거품이 된 꼴입니다. 배구계에서는 이런 비상식적인 행정이 모기업 수뇌부의 결정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공기업인 까닭에 정치권의 입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도로공사의 상황도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도로공사는 김 감독과 관련해 "A 코치에 대한 폭행 및 명예 훼손 사건에 대해 지난 2월말 검찰이 약식 기소하는 불미스러운 사항이 있어 고심 끝에 재계약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 '약식' 기소만으로 김 감독을 배제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런 가운데 도로공사는 김 감독에게 31일까지 선수단 훈련을 지휘하라고 요청했다는 얘기까지 들립니다. 이러니 어쩌면 도로공사의 준우승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을지 모릅니다.

지난달 포스트 시즌 미디에 데이에 참석한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왼쪽)과 배유나. 연합뉴스


여자부가 비상식이었다면 남자부 챔프전의 최대 화두는 '불공정'이 아닐까요? 정규 리그 1위 대한항공이 포스트 시즌(PS)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를 전격 교체하면서 분위기가 묘해졌습니다. 정규 리그를 같이 뛰었던 아포짓 스파이커 러셀을 제외하고 쿠바 국가대표 출신 미들 블로커 마쏘를 영입한 겁니다.

3년 연속 비슷한 시기에 같은 결정을 내렸는데 우승을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현대캐피탈 필립 블랑 감독은 대한항공과 챔프전 1차전 패배 뒤 "절대 공정하지 않다"면서 "국제 배구계에서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를) 교체하기 위해선 의학적 소견이 있어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물론 대한항공이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닙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외국인 교체 시점과 횟수를 제한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구단 관계자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연봉을 모두 지급한 상황에서 교체 선수에 대한 새로운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런 결정을 현실적으로 내릴 수 없는 구단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규정이 있지만 각 구단의 상황이 다른 만큼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2차전에서는 오심 논란까지 일었습니다. 현대캐피탈이 5세트 14-13 매치 포인트를 맞은 가운데 레오의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가 라인에 걸친 것처럼 보였지만 아웃 판정이 된 장면입니다. 비디오 판독에도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결국 현대캐피탈은 승리 직전에서 듀스 끝에 2연패를 당했습니다. 경기 후 기자 회견에서 블랑 감독은 책상을 내리치며 "승리를 강탈당했다"며 격노했습니다.

팬들 사이에서는 판정의 형평성 논란이 일었습니다. 앞서 비슷한 상황에서 대한항공에는 유리한 판독이 이뤄진 까닭입니다. 레오의 공격이 마쏘의 손에 맞고 현대캐피탈 진영 라인 쪽에 떨어졌는데 최초에는 아웃 판정이었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번복됐습니다. 중계 화면을 보면 두 장면은 거의 흡사하게 공이 라인에 걸친 것처럼 보입니다.

이에 현대캐피탈은 재판독을 요청했지만 KOVO는 사후 판독 및 소청심사위원회에서 레오의 서브에 대해 오심이 아닌 정심이라고 발표했습니다. "KOVO 운영 요강 로컬룰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접지면 기준 최대로 압박된 순간 라인의 안쪽 선이 보이면 아웃'이라는 규정에 따라 해당 판정은 정심으로 판단된다"는 설명입니다. (앞서 마쏘의 손을 맞고 아웃에서 인으로 번복된 장면도 같은 결과일지 사뭇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남자부 챔프전 2차전에서 아웃에서 인으로 번복된 장면(위)과 아웃으로 그대로 판정이 유지된 장면. 중계 화면 캡처


블랑 감독은  2차전 뒤 "정확히 가려내기 위해 만든 비디오 판독이 제 역할을 못 했다"면서 "(KOVO) 총재와 심판 모두가 대한항공의 굴레 안에 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현 KOVO 조원태 총재가 한진그룹 회장 및 대한항공 구단주를 맡고 있는 상황을 꼬집은 겁니다.

물론 블랑 감독은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했지만 파문은 커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외인 교체까지 맞물려 총재사인 대한항공에 유리한 규정과 판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챔프전을 앞두고, 또 2차전에서 나온 대한항공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성격은 다소 다르지만 도로공사처럼 대한항공 역시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노력해온 선수들과 코치진, 지원 스태프의 노력이 외부의 요인에 결실을 거두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대한항공은 안방에서 치른 1, 2차전을 풀 세트 끝에 이겼지만 3, 4차전 천안 원정에서 무기력하게 연속 0-3 패배를 안았습니다. 역대 남자부 챔프전 최초 리버스 스윕 위기에 처했습니다.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에 우승컵을 내줬지만 2023-24시즌까지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이룬 명가입니다. 지난 1969년 실업 배구팀으로 창단한 대한항공은 현대캐피탈(1983년), 삼성화재(1995년) 등 다른 구단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1961년 창단한 한국전력과 함께 한국 남자 배구를 이끌어온 역사적인 팀으로 꼽힙니다.

인하대와 인하사대부중·고 등 대한항공의 연계 학교는 인천 배구의 젖줄이었습니다. 대한항공컵 유소년 클럽 배구 대회가 지난 2024년부터 열리는 등 한국 배구 저변 확대를 위한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배구계에 대한 지원을 줄고 있는 일부 구단들의 상황과 맞물려 대한항공은 총재사로서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V리그 타이틀 스폰서로 한진그룹 산하 진에어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제천 대한항공컵 구단 유소년 클럽 대구 대회 시상식 모습. KOVO

프로 구단이 우승을 위해 전폭적으로 지갑은 여는 경우는 흔합니다. 자유계약선수(FA)와 외국인 선수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구단의 우승 가능성이 높은 것은 비단 배구뿐만이 아니라 야구, 축구, 농구 등 다른 프로 종목에도 통하는 공식입니다. 이런 점에서 대한항공의 외국인 선수 교체에 대한 비판은 설득력이 없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다른 구단들도 할 수 있는 교체인데 노력이 부족하다는 반대 여론도 있는 겁니다.

여기에 비디오 판독은 대한항공 선수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영역의 문제입니다. 물론 총재사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선수단의 의지와 경기력과는 무관한 KOVO의 결정인 것입니다. 도로공사의 감독 재계약 불가는 스스로 내린 것이라면 남자부 논란의 판정은 선수단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비상식적인 인사로 감독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문 도로공사, 똑같은 정규 리그 1위 대한항공 역시 불공정과 오심 논란 속에 역대 최초 리버스 스윕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과연 대한항공이 이런저런 논란을 극복하고 2년 만의 통합 우승을 이룰지, 현대캐피탈이 2년 연속 정상 등극의 기쁨을 누릴지 지켜볼 일입니다.

p.s-조원태 총재는 지난 2017년 대한항공 구단주에 이어 KOVO 총재를 맡아 프로배구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여자부 제7구단 페퍼저축은행의 창단과 안정적인 리그 운영 등의 공로로 3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새로운 총재사로 흥국생명이 거론되는 가운데 조 총재가 임기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지 궁금합니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