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논의를 '연령 인하 찬반'의 단선적 구도에서 벗어나 소년비행 및 범죄예방 정책 전반의 문제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형사법제연구본부 배상균 연구위원은 15일 성평등가족부 주관 촉법소년 사회적 대화 협의체가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공개포럼에서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연령 조정보다 ①절차 정비 ②처우 개선 ③피해자 권리 보장"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배 연구위원은 최근 10년간 법원에 접수된 촉법소년 사건 수가 2015년 7404건에서 2024년 2만 1139건으로 크게 늘었지만, 보호처분 비율은 2024년 50.1%로 낮아진 반면, 심리불개시 비율은 37.4%까지 상승한 점에 주목했다.
그는 "단순한 연령 하향 논의보다, 사건의 상당 부분이 실질적 개입 없이 종료되거나 사법적 접촉만 확대되는 구조"라며 "문제는 '처벌이 없느냐'가 아니라, 처분이 얼마나 적시에 적절하게 작동하느냐"라고 했다. 연령 인하보다 제도 운영의 실효성 점검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배 연구위원에 따르면 해외는 형사미성년자 기준 연령보단 절차와 처우 설계에 방점을 두고 있다.
독일의 형사미성년 연령은 14세인데, 피해자-가해자 조정(Täter-Opfer-Ausgleich, TOA)제도를 두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TOA는 형사절차 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전문 조정인의 중재 아래 대화하며 피해 회복과 화해를 시도하는 구조다. TOA가 성립하면 검사는 기소를 유예하거나 법원은 처분을 감경할 수 있다. 피해자 권리 보장과 소년 보호를 동시에 달성하는 설계다.
일본에서는 1997년 고베 아동연쇄살인사건 이후 소년법 엄벌화가 강화돼 형사미성년 검찰이송 연령을 16세에서 14세로 낮추고, 소년원 송치 대상도 확대했다. 18~19세는 특정범죄에 대해 성인형사절차를 적용하는 개정도 이뤄졌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저연령소년(촉법소년)에 대해서는 경찰이 아동상담소로 사건을 송치하거나 통고하고, 아동상담소는 훈계·복지조치·시설입소·가정법원 송치 여부를 판단한다.
미국은 주(州)에 따라 소년 형사소추 최소연령을 두지 않거나 매우 다양하게 규정하고 있다.
배 연구위원은 " 해외 동향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어느 나라도 연령 기준 변경만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없다는 점"이라며 "형사미성년자 제도 보완의 초점은 연령 인하 자체가 아니라, 경찰 단계의 다이버전(전환, Diversion), 전문적 조사와 처우 설계, 지역사회·복지 연계, 피해자 권리의 절차화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절차 정비와 관련해선 경찰 단계 훈방제도의 법제화와 화해권고제도 확대를 통한 '경찰-회복적 대화-보호자·학교·지역기관 연계'를 기본 대응모델로 제안했다. 처벌도, 방치도 아닌, 제3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우 개선은 "처분의 강도를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 처분의 다양성과 적합성을 높이는 문제로 이해돼야 한다"며 정신건강, 중독, 발달장애, 가족치료를 포괄하는 지역 기반의 치료적 처우망 확충을 제안했다.
피해자 권리 보장 측면에선 "형사미성년자 제도 논의가 피해자 관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며 "가해 소년의 인격권과 건적육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절차 참여와 정보 접근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날 포럼은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연령 기준에 관한 제도적 보완 방안'을 주제로 진행됐다.
주제발표에 이어진 토론에선 "비행소년이 학교로 복귀하기 전, '학교 적응 프로그램'을 거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방화중학교 이호욱 학교폭력책임교사), "불처분과 심리불개시 처분 사유를 판사 재량에 맡기지 말고 처분 사유와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한국성폭력상담소 최란 부소장)는 의견이 제시됐다.
또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만큼은 소년보호사건에서도 피해자의 안전권을 목적으로 하는 '디지털 증거 임시 보전 명령'과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탁틴내일 이현숙 상임대표)는 조언도 나왔다.
성평등부 주관 촉법소년 사회적 대화 협의체는 성평등부 누리집과 국민신문고 '국민생각함',
'청소년1388' 누리집을 통해 대국민 의견 수렴을 위한 온라인 공청회도 진행 중이다.
아울러 오는 18일과 19일엔 각각 오송컨벤션센터와 세종대컨벤션센터에서 시민참여단 200명의 오프라인 직접 숙의 토론회를 연다. 이달 안으로 공론화 절차를 마치고 비교적 명확한 의견을 담은 권고안을 국무회의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