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흔들기'에 중동 변수 상수화…정부, 공급망 판 다시 짠다

호르무즈 재봉쇄·협상 불확실성 재확대…산업 변동성 확대
제조업 2분기 반등 제한적…원자재 부담은 오히려 가중
정부, 비중동산 원유 확대·수송 루트 다변화 '상시 전략' 전환
전문가 "나프타 비축·대체 원료 로드맵 병행 서둘러야"

황진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냉온탕식 대(對)이란 압박이 반복되면서 한국 정부가 중동발 공급망 충격을 일시적 변수가 아닌 상수로 보고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와 협상 불확실성이 겹치자 정부는 비(非)중동산 원유 도입 확대와 수송 루트 다변화를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구조 개편 과제로 보고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오락가락' 트럼프에 韓 산업 변동성 커져

 
20일 산업통상부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중동 전쟁 변수로만 보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낙관론과 강경론을 오가며 압박 수위를 조절하고, 이란 역시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재봉쇄를 반복하면서 에너지·물류 불안이 상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으로서는 '곧 끝날 전쟁'보다 '계속 흔들릴 공급망'에 대비해야 한다는 판단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실제 국내 제조업은 이미 이러한 불확실성에 취약한 모습이다. 전날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제조업 전체 현황 BSI는 시황 79, 매출 79, 내수 79, 수출 83, 경상이익 81로 모두 기준선 100을 밑돌았다. 2분기 전망도 매출 93, 내수 92, 수출 92, 경상이익 90에 그쳐 일부 업종 개선 기대가 있더라도 제조업 전반의 흐름을 바꿀 만큼 뚜렷한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비용 압박이 큰 문제로 지목된다. 제조업 전체 원자재 가격 현황 BSI는 1분기 130으로 높았고, 2분기 전망도 125에 달했다. 정유·화학·철강 등 소재 업종의 부담이 특히 컸으며, 정유 업종의 2분기 수출 전망은 51까지 떨어졌다. 반도체와 조선이 상대적으로 선방했지만, 중동 변수 장기화 시 원가 부담과 수익성 악화가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공급망 전략 전환 상수…"원료 체질 자체를 바꿔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연합뉴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원유 단기 비축을 넘어 조달 구조 자체를 바꾸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전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위기의 본질은 우리가 중동산 원유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특정 항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전쟁이 끝나더라도 비중동산 원유 도입을 확대하고 수송 루트를 다원화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공급망 전략 전환을 사실상 상시 과제로 못 박았다. 그는 "과거에는 비용 절감을 위해 필요한 만큼 제때 들여오는 '저스트 인 타임(Just-in-Time)'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고 공급처를 분산하는 '저스트 인 케이스(Just-in-Case)' 전략이 필수"라며 "싼 가격만 보고 특정 지역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대응 방향을 크게 세 갈래로 설정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확보한 원유 물량과 비축 여력을 바탕으로 수급 불안에 대응하고, 중기적으로는 미국산을 포함한 비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을 확대하며 항로를 다변화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장기적으로는 해외 자원 지분 투자와 공급망 내재화 전략을 병행해 특정 지역과 특정 항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원료 체질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석준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화학공학부 교수는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의 해외 에너지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근본적 기술이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바이오 소재 기반 나프타 원료 확보나 전기화학 기반 e-나프타 공정 기술의 상용화가 핵심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어 "이러한 방법은 기존 원유 기반 석유화학 설비와 호환 가능한 원료를 사용할 수 있어 인프라 전환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공급처 다변화가 가능하다"며 "정부 차원의 나프타 비축 체계 구축과 같은 중단기 대책과 함께 대체 원료 로드맵 수립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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