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의 안락함을 버린 채 홀연히 태평양을 건넌 김준호 목사의 목적지는 대구제일교회.
그는 "대구경북지역의 영적 물줄기를 바로 세우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로 (제일교회를) 세워가겠다"며 제일교회 새로운 100년의 비전을 제시했다.
제일교회 133년 CBS특별인터뷰…"영적물줄기 바로세우는데 헌신"
김준호 목사는 지난 22일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창립기념 예배를 통해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드렸고, 우리 교회가 133년 전에 세워졌을 때 그 선교사님들의 초심을 잃지 말자는 말씀을 선포해 교인들과 공감을 나눴다"고 밝혔다.창립 기념예배 설교 제목은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였다.
김 목사는 설교에서 "우리 교회는 단지 개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국한돼서는 안 되고 대구경북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답게, 이 지역 믿음과 선교의 영적인 물줄기를 바로 세워가는 데 헌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호 목사는 또 목회의 비전으로 '이음의 리더십'을 제시한다. 이음의 리더십은 세대와 세대가 함께하는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고 이것은 목회의 비전이기도 하다.
제일교회는 1893년 4월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였던 배위량 선교사가 대구 도성에서 첫 복음을 전한 그날을 기점으로 한다. 3년뒤인 1896년 1월 남성로의 예배당 부지를 매입했고 1897년 봄 안의와 초대 담임 목사가 부임하면서 교회 역사가 시작됐다. 제일교회의 초석을 놓은 미(美) 북장로교회 배위량 선교사는 부산에서 출발, 청도 팔조령을 넘어 대구땅에 발을 들인 베어드 목사이고, 안의와 목사는 아담스 선교사다. 미국에서 파송된 두 선교사는 대구지역 기독교의 조상인 셈이다.
베어드·아담스가 뿌린 복음의 씨앗…대구선교의 시작
이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은 구한말 척박했던 달구벌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백성들에게 구원의 확신과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전환점이 되었다.김준호 목사는 "제일교회는 대구 땅에 많은 교회를 개척,분립한 우리 지역의 모(母)교회, 어머니 교회다"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대구지역 기독교의 동량(棟梁)으로 자라난 교회들 가운데 사월교회, 침산교회, 설화교회, 범어교회, 서문교회, 남산교회는 모두 그 뿌리가 제일교회다. 제일교회의 초기 선교사역은 대구지역 복음화의 밀알이 돼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었다. 1,700개 대구지역 교회의 원류가 제일교회인 셈이다.
초기 기독교가 교회뿐아니라 학교와 병원을 선교의 주요수단으로 사용한 것 처럼 대구에서도 기독교 계열의 학교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희도학교, 계성학교, 신명학교, 동산의료원 모두 제일교회가 설립해 대구지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제일교회 성전이 세워진 동산언덕(일명 청라언덕)은 과거 영남신학대학교의 부지였는데, 제일교회가 인수해 1994년 현재의 새 성전이 건립됐다.
대구지역 모교회로서의 자랑스러운 위상을 지닌 제일교회 김준호 목사(14代)의 포부도 남다르다. 그는 2025년 제일교회로 청빙됐고 1년만에 위임식을 가져 성도들의 영적지도자로서의 역량과 지도력을 검증받았다.
"대구 제일교회는 단순히 우리 교회만을 위한 그런 공동체가 아니고 대구지역 가운데 흐르는 영적 흐름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감당해야 할 사명으로 여겨집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말씀과 선교로 든든히 세워지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로 세워가고 싶어요" 이것이 김준호목사가 꿈꾸는 선교사역의 핵심이다.
김준호 목사 "이민목회는 제일교회를 위한 준비기"
그는 "목회자의 역할은 성도들이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조언하고 코칭하는 것"이라고 규정, "성도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나갈 때 이 사회가 아름다워 진다"고 역설했다.김준호 목사는 목회자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대구 제일교회 담임 목사로 청빙을 받았던 그 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동안의 이민 목회 가운데 힘들었던 시간들, 내가 가는 길이 맞는가라고 때로는 어려웠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그 시간들을 지나고 나서 하나님께서 아~ 이 일을 위해서 나를 그렇게 연단시키셨구나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어서 그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했다. 오랜 미국 유학과 이민목회가 제일교회 강단에 서기 위한 준비기였다는 고백이다.
김 목사는 "미국 목회 21년을 거치는 동안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노후까지 보장되는 삶이었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한국에 오겠다고 할 때 순순히 따라준 아내(사모)의 모습이 참 귀하게 여겨져 늘 고맙게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