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 바다를 지명이 아닌 고유번호로 표기하는 디지털 표준 'S-130'이 채택된 가운데 동해 표기 확산을 위한 후속 과제가 주목된다.
26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모나코에서 열린 제4차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 디지털 데이터셋 S-130이 완성돼 정식 채택됐다.
이는 2020년 제2차 총회에서 기존 해도(海圖) 집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개정판 격의 S-130 개발을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S-130은 해역을 지명 대신 고유번호로 표기하는 디지털 방식의 새로운 해도집 표준이다.
전자 항해와 지리정보체계 활용에 적합하도록 명칭보다 숫자 기반 식별체계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라 향후 국제수로기구 체계에서는 모든 바다가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처럼 고유 식별번호로 관리된다.
이 번호는 각 해역 중심점의 위도와 경도를 조합해 부여된다.
해수부 관계자는 "현재는 초기 단계이며 IHO에서 기반을 마련한 뒤 실제 운영이 가능하도록 체계를 점차 고도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기존 표준 해도 집인 S-23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참고 자료로만 남게 됐다.
이번 채택은 S-23에 일본해가 단독 표기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적극 추진해 온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은 한반도 동쪽과 일본 서쪽 사이 해역의 명칭을 둘러싸고 오랜 기간 갈등을 이어왔다.
1929년 국제수로기구가 S-23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일본해(Sea of Japan)'로 등록했지만, 당시 일제강점기였던 우리나라는 명칭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후 지형 명칭에 대해 당사국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각국의 명칭을 병기한다는 원칙에 따라 일본과 협의를 진행했지만, 양국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이 같은 교착 상태 속에서 이뤄진 채택은 비록 일본해 단독 표기를 동해 병기로 바꾸지는 못했지만, 향후 도입될 디지털 표준에서는 바다 명칭 자체가 사용되지 않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계기로 동해와 일본해 명칭을 둘러싼 경쟁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지적한다.
과거 S-23 체제에서는 어떤 이름을 표기할지가 쟁점이었다면, 이제는 특정 명칭이 데이터 구조 속에서 기본값으로 작동하며 어떻게 노출되는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박창건 국민대 동아시아국제학부 일본학전공 교수는 "앞으로 동해가 지속해 노출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며 "외교적 설득을 통해 명칭 병기에 집중하기보다, 데이터 구조와 표준 규칙을 통해 동해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국제 표준 거버넌스 참여 역량을 강화해 의사결정과 설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며 "지명 표기의 실제 영향력이 구글 지도, 해양정보 시스템 등에서 결정되는 만큼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력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일본과의 저강도 경쟁 속에서 표준과 구조를 선점해 나가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