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핵심 정책인 '15분 도시'의 가치를 담아 아이들의 생명권과 보행권을 지키는 '안전한 학교 가는 길'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는 단순히 도로를 정비하는 차원을 넘어 학교와 학부모, 지역 주민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는 '부산형 통학로 정비사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든다는 목표다.
특히, 시범 대상지인 남천초등학교와 부산동여고의 보행 환경 개선 사업이 올해 연말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어, 그 결과에 따라 사업 확장 속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불안감 사라진 등굣길, 학교의 결단이 만든 웃음소리
부산 수영구 남천초등학교 앞 골목. 아이들이 폭 4m 남짓한 좁은 길에서 학원 차량과 뒤엉켜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보도와 차도의 경계가 없다 보니 아이들은 등 뒤로 바짝 붙어 지나가는 차량의 엔진 소리에 가슴을 졸여야 한다.남천초와 그리 멀지 않은 부산동여고 주변 역시 불법 주정차된 차량으로 인해 학생들이 차도로 내몰리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어폰을 끼고 길을 걷던 학생은 차량의 경적에 깜짝 놀라 길가로 몸을 피한다.
내년 새학기부터 이 같은 아찔한 모습이 사라질 전망이다.
부산시가 추진하는 '안전한 학교 가는 길' 사업의 시범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학교를 가로막던 낡은 담장이 헐리고, 그 자리에 아이들만을 위한 쾌적한 '보행자 전용 보도'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각 학교 측의 적극적인 참여가 결정적인 동력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학교 측은 시의 사업 취지에 공감의 뜻을 나타내며 사업 추진에 힘을 보탰다고 시는 설명했다.
15분 도시 부산의 핵심 과제…'학생 중심' 통학로 재편
'안전한 학교 가는 길' 사업은 부산 시내 학교 주변의 사고 위험 지역을 발굴해 차량과 학생의 동선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정책이다.시는 사업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체계화해 추진하고 있다. 특정 시간대 차량 진입을 전면 통제하는 '차 없는 길'과 학교 부지나 국공유지를 활용해 보도를 신설하는 '보행자 전용 보도', 도막 포장 등으로 시각적 분리를 꾀하는 '보행자 안심 도로' 등이다.
현재 부산 시내에는 초등학교 303곳을 포함해 총 660여 개의 학교가 대상지로 관리되고 있다.
시는 지난해 10월부터 16개 구·군과 교육지원청을 통해 총 64곳의 후보지를 추천받았으며, 이 중 사고 위험성과 개선 가능성이 큰 지역을 우선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담장 하나 허물기가 가장 큰 숙제"…현장의 높은 벽
사업 추진의 가장 큰 난관은 역설적이게도 학교 담장 너머의 어른들의 이해관계다.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들려면 도로 다이어트나 일방통행 지정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인근 주민들의 주차 공간이 사라지거나 상가의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교 내부의 설득 과정도 만만치 않다. 학교장 입장에서는 부지 내어주기에 따른 관리 책임과 소유권 문제로 인해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보도 확장을 위해 학교 측에 부지 활용 동의를 구했으나, 결국 협의가 무산되어 사업 대상지를 건너편으로 옮겨야 했던 사례도 있었다.
부산의 지형 특성상 경사지가 많고 길이 좁아 파리 등 해외 사례를 그대로 이식하기 어렵다는 점도 장애물로 꼽힌다.
학원 버스 등 차량 수요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부산만의 특수성을 고려한 정교한 모델링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아이들 등 뒤의 위험, 어른들의 양보로만 멈출 수 있어"
부산시 유정규 15분도시과장은 통학로 정비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유 과장은 "현장에 나가보면 아이들 등 뒤로 차가 바로 스쳐 지나가는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학부모의 시선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면 그 위험성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업은 단순히 보도블록을 까는 공사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온정을 확인하는 사회 혁신 운동"이라며 "지금 당장은 내 집 앞 주차가 불편하고 통행이 번거로울 수 있지만, 그 양보가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마중물이 될 것"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 연말 남천초와 동여고에서 일어날 기분 좋은 변화를 시작으로 부산의 모든 학교 가는 길이 안전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고 덧붙였다.
시민 참여로 만드는 '안전 통학로' 브랜드화 추진
시는 단순히 물리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이 정책에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최근 진행된 '안전한 통학로 명칭 시민공모'에는 모두 2076건의 아이디어가 접수되며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시는 공모 결과를 바탕으로 친숙하고 직관적인 정책 명칭을 확정해 대시민 홍보에 활용할 계획이다.
시는 또, '안전통학로 통합디자인 개발' 용역을 통해 부산만의 특화된 통학로 공간 재편 모델을 만들 예정이다.
노란색 위주의 단순한 스쿨존 표시를 넘어, 보행 환경과 위해 요소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시각적 디자인을 적용해 운전자가 자연스럽게 서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주민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보행권을 확실히 보호할 수 있는 세련된 도시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보행 친화 도시 '스텝업'… 민관학 협력으로 여는 15분 도시
'안전한 학교 가는 길' 사업은 부산시 주요 정책인 '15분 도시' 스텝업(Step-up) 전략의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시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통학로 정비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이를 바탕으로 생활권 단위의 보행 생태계 정비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시는 경찰청, 교육청과의 실무 협의를 정례화하고 대상지 선정부터 평가까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시스템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성희엽 시 미래혁신부시장은 "안전한 통학로 조성은 미래 세대를 위한 최우선 과제"라며 "경찰청, 교육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학생들이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15분 도시 부산을 반드시 만들어내겠다"고 의지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