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심보다 형량이 2년 늘어났는데, 무죄였던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 일부와 외신 대상 허위 프레스가이던스(PG) 작성 지시 혐의가 유죄로 뒤집혔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을 향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어진 일련의 행위로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켰다"며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렸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소집 통지 늦게 받은 국무위원 2명도…계엄 심의권 침해
서울고법 형사1부(윤성식 부장판사)는 29일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앞서 1심은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바 있다.2심에서 유죄로 뒤집힌 혐의는 '국무위원들의 계엄 심의권 침해'다. 1심은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소집 통지를 아예 받지 못한 국무위원 7명에 대해서만 심의권 침해를 인정했지만, 항소심은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 안덕근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까지 포함해 모두 9명으로 범위를 넓혔다.
박 전 장관과 안 전 장관은 당시 소집 통지를 받았으나 참석하지 못했다. 1심은 국무회의 소집 통지 및 개최 기준에 관한 구체적인 법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들에 대한 윤 전 대통령의 심의권 침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두 장관이 각각 자택에 있다가 회의 종료 직전 연락을 받았고, 실제 회의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윤 전 대통령이 소집 통보를 했더라도 국무회의 참여 기회를 보장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를 근거로 원심 무죄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모든 국무위원은 각자가 담당하는 국정의 각기 다른 분야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며 "계엄 선포와 같은 국가 긴급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이와 같은 절차적 의무가 완화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국무위원에 대한 소집 통지는 단순히 연락을 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국무위원의 현실적인 참여 가능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신에 '적법 절차 계엄' 허위 공보 지시…직권남용 인정
외신 대상 허위 PG 관련 직권남용 혐의도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이는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해제 후인 12월 4일 하태원 당시 해외홍보비서관(외신대변인)에게 전화해 '정당한 목적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취지의 PG를 외신에 전파하도록 한 사건이다.
당시 쟁점이 된 PG에는 계엄 당시 국회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막지 않았고, 국회가 계엄 해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본회의장 진입을 허용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1심은 대통령실 소속 비서관은 대통령의 입장을 가능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작성해 외신 등에 전달해야 할 의무를 부담할 뿐, 그 내용 중 사실관계를 판별해 전달할 권한이나 의무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달랐다. 재판부는 이를 사실과 다른 허위 설명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객관적인 사정과 달리 해당 사항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하거나 불확실한 점이 있음에도 과장되거나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잘못된 인식을 가지도록 했다"며 "이를 작성, 배포하게 한 것은 직권을 남용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만 사후 작성된 비상계엄 선포문에 대한 허위공문서 행사 혐의는 1심과 같이 무죄로 유지됐다. 재판부는 해당 문건이 외부에 행사되지 않은 채 대통령실 내부에 보관됐다 폐기된 점을 근거로 들었다.
"경호처를 사병처럼 사용"…공수처 체포영장 역시 적법
한편 윤 전 대통령 측의 핵심 방어 논리였던 공수처 수사권 문제도 항소심에서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서 윤 전 대통령 측은 대통령 불소추 특권을 근거로 공수처 수사 자체가 위법하고, 서울서부지법 체포영장 역시 위법하다고 주장해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헌법 제84조의 불소추 특권은 기소를 제한할 뿐 수사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내란 혐의 역시 직권남용 혐의와 직접 관련성이 인정돼 공수처 수사 범위에 포함된다고 봤다. 이에 따라 2024년 12월 30일 1차 체포영장 집행 저지와 지난해 1월 7일 2차 체포영장 집행 대비 행위 모두 유죄 판단이 유지됐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경호처를 통해 체포영장 집행을 조직적으로 막았다고 봤다. 경호처 인력 동원, 인간 스크럼 훈련, 위력 순찰 준비 등은 모두 정당한 경호행위가 아니라 적법한 영장 집행을 막기 위한 준비행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경호처 소속 공무원들에게 위법한 지시를 하여 자신의 보호를 위한 사병과 같이 사용하려고 한 것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국가 공무원들인 공수처 검사들과 물리적 충돌을 야기할 우려까지 초래했다"고 질타했다.
법정에 출석한 윤 전 대통령은 재판부가 1시간 넘게 판결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정면을 응시했다. 선고 직후에는 변호인들과 악수를 나눈 뒤 법정을 빠져나갔다.
이후 윤 전 대통령 측은 상고 방침을 밝혔다. 변호인단은 선고 이후 취재진에 "납득이 되지 않고 상고해 대법원에서 치열하게 다툴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도 변호인들에게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