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 CU(씨유)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물연대 조합원 사망 사고로 촉발된 이른바 'CU 사태'가 극적으로 타결됐다. 파업 돌입 25일, 사망 사고 발생 10일 만이다.
노동자 사망 이후 열린 교섭 과정에서도 사측의 '사용자성' 부정과 책임 회피 논란 속에 노사 갈등이 한때 극한으로 치달았으나, 정치권과 정부의 막후 중재가 해결의 실마리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밤샘 교섭 끝 극적 타결…정치권·노동부 막후 중재
30일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와 편의점 CU 물류 운영사인 BGF로지스는 이날 오전 11시 진주고용노동지청 회의실에서 조인식을 갖고 최종 합의했다. 진주 등 물류센터 봉쇄도 합의서 체결 직후 해제됐다.
앞서 양측은 그제 오후 8시부터 이어진 밤샘 교섭 끝에 전날 오전 5시 단체 합의서 잠정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고인에 대한 조의와 책임 문제, 사과 관련 문구 조정 등으로 예정됐던 조인식이 미뤄졌고, 전날 오후 11시 49분에서야 잠정 합의에 다시 이르렀다.
이번 합의서에는 △운송료 7% 인상 △분기별 1회 휴무(유급휴가) 확대 △대차 비용 상한 설정 △화물연대 노동조합 인정 및 단체교섭 정례화 △파업으로 인한 불이익 철회 등 처우 개선안이 담겼다. 아울러 사망한 조합원과 관련해 회사의 책임 통감, 유가족에 사과 표명, 고인의 명예 회복 및 유가족 위로 방안도 포함됐다.
화물연대 김동국 위원장은 조인식에서 "이번 합의는 단순한 운송료 인상이나 처우 개선을 넘어, 그동안 부정되어 왔던 화물연대의 교섭 주체성과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실질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다단계 외주 구조 속에서 원청이 책임을 회피해온 기존 관행을 넘어, 현장 화물노동자들을 교섭의 대상으로 인정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극적 타결의 이면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등 정치권과 정부의 적극적인 막후 중재가 있었다. 김 의원은 "절충안을 마련해 양측을 따로 만나 의사를 타진하고,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편의점 물류인 만큼 서로 윈윈하자고 설득했다"며 "노동부 장관과 진주지청 직원들도 밤을 새우며 헌신적으로 조력했다"고 전했다.
'교섭' 명칭 피했지만…노봉법 시대 '첫 타결' 해석도
이번 합의 과정에서 사측은 합의서를 작성하면서도 '교섭'이라는 단어 사용을 극도로 꺼리고 '협의'라는 표현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여전히 노동조합법상 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로 인정받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노동계 안팎에서는 이번 타결이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원청을 상대로 이끌어낸 '최초의 유의미한 합의'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절차적 흠결이나 명칭 논란을 떠나,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노동 조건에 개입해 합의를 도출한 사실 자체가 노란봉투법의 취지를 현장에서 구현한 사례라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비계약적 사용자가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교섭이 이뤄졌다"며 "입법 취지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어 "노동위원회를 거쳤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관계의 본질과 입법 취지를 보면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원하청 간 의미 있는 첫 타결로 평가했다.
앞서 지난 27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도 CJ대한통운과 한진에 대해 화물연대의 교섭권을 인정하는 판정을 내린 바 있다. 두 회사가 교섭 요구 공고에서 화물연대를 제외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하며, 특수고용 노동자인 화물연대 조합원들에 대한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한 것이다.
특고·플랫폼 '유급휴가' 명문화…노동권 확대 신호탄?
특히 이번 합의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분기별 1회 유급휴가 보장'이다. 합의안에 따르면 회사는 조합원의 건강권과 안전권 보장을 위해 기존 주 1회 유급휴무와 별도로 추가 휴가를 명시하고, 점진적인 휴무 확대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이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 분야에서 이례적으로 유급휴가가 명문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특고 노동자들은 부모상 등 불가피한 경조사가 발생해도 하루 휴무 시 일당의 2~3배에 달하는 대차 비용(대체 기사 투입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해야 했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노동절에도 쉬지 못하거나 할증 수당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 합의는 그동안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됐던 장시간 노동과 휴식권의 사각지대 문제를 일부나마 제도 영역으로 끌어왔다는 점에서 평가된다. 운임 현실화에 집중됐던 기존 요구를 넘어 휴식권 자체를 권리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이번 CU 사태의 타결이 단순히 한 사업장의 갈등 봉합을 넘어, 특고·플랫폼 노동자의 '쉴 권리'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