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철거될 걸 알며서, 집을 왜 고쳤을까"…떠나지 못한 이유

헤수스 카라스코 '손을 찬양하다'
치유와 노동, 그리고 '임시의 삶'을 묻는 소설

헤수스 카라스코(Jesús Carrasco)

스페인 최고 권위의 문학상 '비블리오테카 브레베 상' 수상자인 헤수스 카라스코의 장편소설 '손을 찬양하다'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이 작품은 "처음 발을 들인 날 아침에 우리는 이미 그 집이 언젠가 철거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결말을 예고한 채 출발하는 이 소설은, 곧 사라질 운명을 알면서도 한 집을 고치고 살아가는 10년의 시간을 따라간다.

이야기는 스페인 남부의 낡은 시골집에서 펼쳐진다. 화자와 아내 아나이스, 두 딸은 철거가 예정된 집을 오가며 살아간다. 당초 몇 달 혹은 1년이면 끝날 거라던 시간이 10년으로 늘어나는 동안, 화자는 쥐를 쫓고 지붕을 고치며 손으로 집을 수리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변하는 것은 집이 아니라 사람이다. 가족은 성장하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누군가는 죽음을 맞는다. 집은 임시 거처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서 축적된 시간은 삶의 중심이 된다.

작품은 손으로 하는 노동을 단순한 생존 기술이 아닌 삶의 태도로 확장한다. 작가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내 손이 닿는 곳에서 일어난다"고 말하며, 손의 움직임을 예술과 관계, 존재의 방식으로 연결한다.

동시에 소설의 핵심은 '임시성'에 있다.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집이라는 공간에 투영한다. 철거될 집을 고치는 행위는 결국, 끝을 알면서도 삶을 지속하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민음사 제공

화자가 남긴 말처럼, "많이 집을 손봤지만 결국 변한 것은 우리 자신이었다"는 깨달음은 이 작품이 도달하는 지점이다.

화려한 사건이나 반전 없이도 이야기는 잔잔하게 이어진다. 대신 과정과 시간, 그리고 관계의 축적이 독자를 끌어당긴다. 결과보다 '살아가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 서사다.

헤수스 카라스코 지음 | 임도울 옮김 | 민음사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