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현대 이스라엘과 구약의 이스라엘, 왜 동일시해서는 안 되는가?

오대식 목사 제공.
오대식 (높은뜻 덕소교회 담임목사, CBS 자문위원)

최근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지 곳곳에서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목격되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유 대교 절기를 맞이해 거리를 지나가는 기독교인들을 향해 일부 정통파 유대인들이 침을 뱉거나  모욕을 주는 행위가 빈번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레바논 남부에서 예수상의 목 을 망치로 파손한 이스라엘 병사의 모습이 전해지면서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심한 공분을 샀 습니다.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 내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기독교 선교 활동을 전 면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징역형에 처한다는 법안도 여러 차례 제안이 되어 국제적인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 믿으며 무 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왔던 그 이스라엘이 정작 복음과 그리스도인들을 배척하고 있는 이 상황 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회 안에서 이스라엘은 단순한 국가 이 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성경의 배경이자 하나님의 언약이 시작된 땅이기에 많은 성도들은 현 대 이스라엘의 국가적 안위와 번영을 신앙과 연결하여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 정이 지나쳐 1948년 건국된 현대 세속 국가 이스라엘을 구약의 '언약 공동체'와 무비판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심각한 오류를 낳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신 앙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이 둘 사이의 간극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1. 신약의 완성 : '혈통'의 담을 허물고 '그리스도'께로

구약의 이스라엘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비하기 위해 구별된 통로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경륜은 혈통적 담을 허무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끊임없이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3:28-29)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혈통적 유대인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에게 계승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즉, 신약적 관점에서 '참 이스라엘'은 특정 국적이나 혈통이 아니라 그 리스도를 머리로 한 영적 공동체인 교회입니다. 현대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특별 백성 이라는 주장은 자칫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완성된 복음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다시 구약의 그림 자(혈통과 할례)로 회귀하는 '신학적 퇴보'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2. 정체성의 본질적 차이 : '제사장 나라'와 '세속 시온주의'

우리가 지지하는 현대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신정 체제가 아닌, 19세기 말 유럽에서 시작된  '시온주의(Zionism)' 라는 정치적 민족주의 운동의 산물입니다. 시온주의의 정치적 실체는 현 대 의회 민주주의와 세속법에 의해 운영되는 근대 국가입니다. 이스라엘 시민 중에는 정통파  유대교인도 있지만 상당수는 종교적 신념보다 민족적 생존을 우선하는 세속주의자이거나 무신 론자입니다.  

또한 언약의 조건도 다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토라)을 준행할 때 비로소 그  땅의 소유권이 보장되는 '조건적 언약' 아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속 적 국가의 행보를 무조건 성경적 예언의 성취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의 엄중한 공의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바꾸는 아전인수격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3. 선지자적 공의 : 편향된 지지가 아닌 '보편적 정의'로

성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이방인을 압제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돌보지 않을 때 그 누구보 다 매섭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선택받은 백성이니 무엇을 해도 정당하다" 는 생각은 구약 선지자들이 가장 경계했던 영적 교만이었습니다.

오늘날 중동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갈등과 인권 문제를 바라보며 한국 교회가 특정 국가의 입 장만을 대변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성경적 가치는 국경을 넘어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압제받 는 자를 향합니다. 현대 이스라엘의 국가 정책 또한 성경이 말하는 '공의(Mishpat)'와 '정의 (Tzedakah)'의 잣대로 분별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지지가 아니라, 그 땅의 유대인과 팔레스 타인인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화(Shalom)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사 랑의 길입니다.

4.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국 교회에 깊이 뿌리박힌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종말의 시간표와 직접  연결합니다. 이 때문에 현대 이스라엘의 군사적 승리나 영토 확장을 말세의 징조로 보고 열광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정점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국가의 흥 망성쇠가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이스 라엘 국가를 향한 과도한 집착은 오히려 복음의 본질적인 사명, 즉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이 되리라'는 명령을 민족주의적 프레임 안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어떠한 마음과 신앙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우리는 여전히 유대 민족을 사 랑하며 그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국가'를 향 한 정치적 지지와는 별개의 신앙적 의무입니다.

현대 이스라엘을 구약의 이스라엘과 무조건 동일시하는 것은 성경의 점진적인 계시를 오해하 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편협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혈통적 유대인 을 넘어 온 열방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One New Man)이 되는 하나님 나라의 거대 한 비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영토의 확장이 아니라, 그 땅의 영 혼들이 참된 메시아인 예수를 만나는 데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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