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금융' 직격한 李대통령…난감한 금융권 속앓이만

이재명 대통령과 김용범 정책실장 잇따라 지적…금융당국도 검토
문제의식엔 공감, 뒤집기엔 난색…여신 위축, 건전성 악화 우려 상존

연합뉴스·김용범 정책실장 페이스북 캡처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이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이 가장 비싼 이자를 내야 합니까. 거꾸로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용범 정책실장이 인용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저신용자에게 가혹한 금융권의 대출 문제를 직격한 이재명 대통령 발언에 이어 청와대 김용범 정책실장 역시 '잔인한 금융'에 관한 문제의식을 표하자, 금융당국도 잰걸음에 나섰다.
 
저신용 차주가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도록 설계된 현행 신용평가체계와 대출 시장 구조를 재검토해 대안을 모색해 보기로 한 것이다.
 
청와대가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에 금융권에선 이에 관한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신용자가 높은 대출 비용, 즉 이자를 치르도록 하는 오랜 원칙을 무리하게 뒤집을 경우 오히려 여신이 위축되는 등 시장이 왜곡되고 금융권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통령과 정책실장의 '잔인한 금융'론, 금융권의 화두에


이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김 실장이 최근 SNS에 올린 '금융의 구조 시리즈' 글을 언급하며 "욕먹을 일이 아니다. 뜻대로 하라"며 당부했다.
 
김 실장은 앞서 '금융의 구조 시리즈' 글을 통해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가혹한 금융 시스템을 언급하며 "위험은 연속적인데, 금융은 그걸 가차 없이 끊어버린다. 그 경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더 높은 비용을 감수하며 시장 밖을 떠돈다"며 "우리가 만든 이 구조는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은행이 (저신용자 대출 등에 따르는 위험) '회피'를 합리적인 선택이라 믿는 구조를 바꿔야 하고, 낡은 신용평가란 틀을 과감히 넓혀야 한다"며 "언제까지 과거의 연체 기록이나 카드 이력만 쳐다보고 있을 건가. 사람들은 이미 매일의 소비와 납부, 플랫폼 활동을 통해 수많은 삶의 신호를 만들고 있다"며 제도 재설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간 금융의 공공성을 강조해 온 이 대통령이 김 실장의 의견에 화답하며 힘을 실어주는 한편, 금융당국 등의 시스템 재점검과 개선을 재차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성복 선임연구위원은 "쉽게 던질 수 없는 문제를 무게감 있고 신중하게 화두에 올렸다"라며 "그간 은행들이 '안전한 영업'을 넘어 과도하게 보수적인 측면이 있었던 만큼, 이 시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문제"라고 평가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에 내부 임원들을 중심으로 의견을 수렴하면서 가능한 대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간 금융권에 위험 전가, 옳지 않아"…은행 자기자본규제 비판도

 
류영주 기자

청와대의 강한 드라이브 앞에 금융권은 이 문제에 관한 언급을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안전한 담보 대출 위주 공급과 예대마진 수익으로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가졌음에도 현 시점 이러한 '금융 양극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비판 한가운데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후 신용평가체계에 변화가 생길 경우 연체율 등 건전성 문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등에 관해선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의 기치에 따라 금융권 전반이 미소금융 등 정책서민금융 출연금을 확대하고, 서민금융 관련 서비스도 신설하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그러면서 중소기업 대출 확대가 연체율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신용등급을 매기고 대출하는 문제에 관해선 업계에서도 새로운 기준들을 도입하고, 그에 맞춰 대출을 공급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도 "신용등급이 낮으면 그에 맞게 리스크를 반영해 금리를 산출하는 게 당연한 원리인 만큼, 이 자체를 뒤집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또다른 관계자는 "신용평가, 대출 제도 자체를 손보는 건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가능한 일인 만큼, 당국이 결정하기 나름"이라면서도 "연체율과 건전성이 악화하는 부작용은 결국 금융권이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체계 개편에 따라 이자 책정 등 방식이 바뀌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위험 부담을 져야 하는 금융권에서 오히려 여신 공급 부족과 같은 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려대 경제학과 강성진 교수는 "정부가 중‧저신용자들에게 낮은 이자율로 대출을 공급하기 위해 자금을 쓰는 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걸 민간에 넘겨 리스크를 감당하게 하는 건 시장을 왜곡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이 문제는 정책자금이나 사회복지 자금 등 정부가 가진 자금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 입장은 금융기관들이 정부의 상당한 규제를 받으며 과점적인 지위를 갖고 경쟁에 덜 노출되는 만큼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당국이 금융권에 관한 규제를 줄이고 경쟁적인 시장을 조성해 각 은행이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을 줄여 차주에게 이득이 돌아가게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 선임연구위원 역시 "기업과 개인에게 담보 위주로, 또, 신용이 높은 사람을 중심으로 대출을 공급하는 은행들의 관행은 결국 상당히 엄격한 자기자본규제에서 비롯된 일이기도 하다"라며 "우리나라 은행들은 대부분 국내 은행(domestic bank)임에도 글로벌 자본 규제를 과도하게 적용받고 있는 부분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