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이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항소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동일하게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원심의 형은 가볍다"며 형량을 2년 높였다.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있었다"…유·무죄 판단은 1심 그대로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윤성식 부장판사)는 전날 내란중요임무종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위증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장관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일부 위증 혐의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은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항소심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단전·단수 지시 문건'을 전달받았다고 판단했다. 이후 경찰청장과의 통화를 통해 당시 국회 통제 상황을 확인한 뒤, 윤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소방청장에게 언론사 단전·단수 협조를 지시했다고 봤다.
이에 대한 근거로 재판부는 대통령실 CCTV와 통화 기록을 들었다. 재판부는 "대접견실 CCTV 영상에는 윤석열이 22시42분경 자리에서 일어나 피고인에게 다가가 전화하라는 동작을 취하는 장면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의 통화 목록 등을 보면 이는 경찰청장 내지 소방청장에게 전화하라는 지시로 이해함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이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당시 윤석열로부터 직접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들었고, 다른 국무위원들과 비상계엄에 대한 우려를 나누며 헌법 조항과 계엄 요건을 검색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비상계엄 상황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는 이 전 장관 측 주장에는 "피고인의 경력과 지위, 평균적인 법 감정을 가진 사회 일반인의 관점 등을 고려하면 내란에 대한 포괄적 인식조차 없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질타했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선 1심과 같이 무죄를 유지했다. 재판부는 소방청 차장이 서울소방재난본부장에게 전달한 내용이 "경찰과의 협조에 관한 일반적 지시" 수준에 그쳤고, 실제 일선 소방서가 단전·단수 대응 준비 태세를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위증 혐의 역시 1심 판단이 유지됐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지시 문건 전달과 단전·단수 협조 지시 사실을 부인한 증언은 허위 진술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계엄 문건이 전달되는 장면을 목격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봤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위증의 고의도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유무죄 판단을 내렸다.
"전화 한 통이라도 가볍지 않다…헌법소멸 행위"
그럼에도 항소심은 1심보다 죄질을 훨씬 엄중하게 평가했다. 재판부는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가 아니라 폭력 등의 수단에 의해 헌법 위반의 권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헌법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며 "내란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전 장관이 지시한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의 위험성을 반복해서 지적했다. 재판부는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 검열을 넘어 물리적으로 비상계엄에 비판적인 언론 보도를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국민들의 생명 및 신체의 안전에 중대한 위해를 가하는 것"이라며 "합법적인 비상계엄 상황에서도 허용될 수 없는 위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의 지위와 역할도 양형 사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당시 국방부 장관과 더불어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나 해제를 건의할 수 있는 2인 중 1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비상 계엄 선포 후 특정 언론사 단전 단수에 대한 협조 지시를 이행할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지위와 권한, 그리고 시간이 있었음에도 결국 최후의 순간에는 위헌 위법한 지시에 따를 것을 스스로 선택했다"며 "피고인이 한 구체적 행위가 소방청장에 대한 전화 한 통이라는 사정만으로 그 위법성이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실제 단전·단수 조치가 실행되지 않은 점 역시 이 전 장관에게 온전히 유리한 사정으로 보지 않았다. 국회의 조기 계엄 해제 결의와 소방청 내부의 우회적 대응 때문에 실행이 무산된 것이지, 피고인의 의지나 의도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화재 재난 현장의 최전선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다수의 소방 공무원들이 내란 행위에 연루돼 조사를 받게 되는 등 정신적으로 적지 않은 고통을 받게 된 점도 불리한 정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범행 이후 태도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단전 단수 지시를 직접 했을 뿐 아니라 이 사건 위법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주장을 반복하며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며 "위증 혐의 역시 내란중요임무종사 범행의 실체적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증언거부권을 포기하고 적극적으로 위증을 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