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의미심장한 강경 메시지를 잇따라 던졌다.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용어를 동원해 양국 간 공존 속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는가 하면 대만문제와 관련해선 "양국이 충돌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14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중미 관계의 안정은 세계에 호재"라며 대국(大國)이 올바른 공존의 길을 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과 미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을 넘어설 수 있을지, 대국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할 수 있는지는 역사적 질문"이라며 "나와 당신이 대국의 지도자로서 함께 써내려 가야 할 시대의 응답이기도 하다"고 역설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신흥 강대국에 대한 두려움이 전쟁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 고대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말에서 유래했는데 이를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대중화한 것이다.
시 주석이 이 용어를 쓴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024년 페루 리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때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나서도 양국 간 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가 다시 '투키디데스 함정'을 언급한 것은 양국 간 공존을 바탕으로 중국의 지위를 어느 정도 인정받으려는 전략적 발언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중미 간의 공동 이익은 이견보다 크며, 각자의 성공은 서로에게 기회가 된다고 늘 믿어왔다"며 "양측이 합치면 모두에게 이롭고 싸우면 모두가 상처를 입는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양측 간 갈등과 충돌이 일방적으로 중국에게만 불리하지 않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대결을 피하면서도 경제·군사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의 비서구권 국가)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며 꾸준히 견제해 왔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13일(현지시간) 미중정상회담을 앞두고도 "중국의 부상이 우리의 희생을 대가로 이뤄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중국은 자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고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 믿으며, 이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루비오 장관은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고, 그런 상황을 원치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시 주석은 미국의 반도체 등 대(對)중국 기술 통제에 대해서도 에둘러 비판했다. 그는 "무역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는 사실이 거듭 입증됐으며, 미중 경제 무역 관계의 본질은 상호 이익과 윈윈 협력"이라며 "의견 차이와 마찰이 있을 때는 대등한 협의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선택"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적수가 아닌 파트너가 돼 서로를 성취시키고 공동 번영하며, 신시대 대국 간 올바른 공존의 길을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건설적이고 전략적인 안정 관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향후 3년 또는 더 장기적인 중미 관계에 전략적 지침을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 주석은 대만 문제에 대해서 가장 단호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이를 잘못 처리하면 양국은 충돌해 중미 관계 전체를 매우 위험한 지경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대만 독립과 대만해협의 평화는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다"며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는 중미 양측의 최대 공약수"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은 반드시 대만 문제를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대만에 미국산 무기를 수출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사뭇 정제된 어조로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삼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관계는 매우 좋고, 나와 시 주석도 역대 미중 정상 중 가장 좋은 관계"라며 "시 주석은 위대한 지도자이고 중국은 위대한 국가"라고 화답했다.
이어 "역사상 가장 좋은 미중 관계를 열고 양국의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창출하고 싶다"면서 "미중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국가이며, 미중 협력은 양국과 세계를 위해 많은 큰일과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상회담 이후 톈탄(天壇)공원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회담결과가 "훌륭하다"고 말했다. 또 "멋진 곳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다. 중국은 아름답다"면서 긍정적인 표현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도 논의했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피했다.
신화통신은 이번 회담에서 두 사람이 중동 정세와 우크라이나 사태, 한반도 등 '중대한 국제 및 지역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고 보도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