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8000고지를 밟자마자 뒷걸음질쳤습니다. 연일 천장을 뚫으며 30만전자와 200만닉스를 눈앞에 뒀던 반도체 투톱 주가도 일단 후퇴했습니다.
반도체 투톱이 이끄는 코스피 랠리가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증권가가 분석한 △수급 △펀더멘털 △기술적 분석 등을 종합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삼전닉스 24조 매도한 외국인…"리밸런싱 수준"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내가 상투를 잡았나'하는 우려가 현실이 될까 걱정을 시작하는 구간입니다. 외국인의 매도세는 이런 불안을 키우는 요소인데요.외국인은 이달에만 모두 26조원을 코스피에서 순매도했습니다. 5월이 아직 절반이나 남았지만, 월간 기준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지난 3월(35조 7천억원)에 이어 역대 2위입니다.
이 기간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7000(6일)에 이어 7거래일 만에 8000(15일)까지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하며 6% 하락해 7500선을 내주고 마감하는 역대급 변동성 장세를 기록했습니다.
외국인은 종목별로 △SK하이닉스 12조 3500억원 △삼성전자 9조 3600억원 △SK스퀘어 1조 1400억원 △삼성전자 우선주 1조 1천억원 등 순으로 매도했는데요. 사실상 반도체 투톱을 집중 매도한 셈입니다.
삼성전자 주가는 30만원 턱밑에서 27만원선으로 물러났고, SK하이닉스 주가도 200만원 문전에서 181만 9천원까지 내렸습니다.
순매도의 절대 규모가 큰 것은 맞지만, '탈출'은 아니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립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4%인데, 외국인 보유잔고 기준으로는 63.8%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바구니엔 여전히 반도체 투톱 투자 비중이 압도적이란 의미입니다.
반도체 투톱의 주가가 워낙 높아졌기 때문에 조금만 발을 빼도 규모가 커보이는 것이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대신증권 권순호 연구원은 "무게중심이 대형 반도체에 쏠려 있고 해당 종목들의 주가가 크게 상승한 만큼, 2년 전 대비 적은 주식을 리밸런싱·차익실현해도 절대 금액으로는 큰 순매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권 연구원은 또 외국인 통합계좌 제도로 접근성이 확대한 만큼, 중기적으로 약 30조원 규모의 신규 자금이 국내로 유입될 수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AI 투자 경쟁, 불안한 빅테크의 '부채' 증가
일각에서는 빅테크의 인공지능(AI) 투자 여력이 감소하면서 부채를 동원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데요.지난해 아마존과 알파벳,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하이퍼스케일러(대형 클라우드 기업) 5개사가 발행한 회사채 규모는 1210억달러입니다. 이는 지난 5년 평균의 4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알파벳이 지난 2월 10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최근에는 장기 회사채 발행 증가가 눈에 띕니다.
하이퍼스케일러 5개사의 시설투자(CAPEX)는 △지난해 3787억달러 △올해 6857억달러(전망) △내년 8707억달러(전망) 등으로 급격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금흐름은 지난해 2000억달러에서 올해 500억달러를 간신히 상회한 뒤 내년에는 500억달러로 감소할 전망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회사채 발행 등 부채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이죠.
iM증권 이승재 연구원은 "빅테크들은 방대한 현금흐름을 축적하고 있었지만, 막대한 현금이 시설투자 증가에 동원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내부적으로 창출된 현금흐름만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않고 있다"면서 "장기채 발행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은 향후 AI 인프라에서 얻을 수 있는 현금흐름과 부채성 조달의 만기를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연방준비제도 인사들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의 영향으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 금리가 오르면 부채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빅테크가 AI 수익화로 지속가능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메모리 반도체, AI시대 '전략자산'"
반면 현재 시설투자 수준이 과거 '버블의 끝'과 비교하면 우려할 단계는 아니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유진투자증권 허재환 연구원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규모를 분석한 결과 19세기 중반 철도버블 때 6%, 2000년 닷컴버블 당시 4.9%로 집계됐습니다. 올해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 비중은 GDP의 2.2%이고 빅테크 이외 기업과 정부 지원까지 합하면 3~4%로 추정됩니다.
허 연구원은 "빅테크 기업들의 잉여현금흐름이 가파른 투자 확대로 축소되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이 매우 높고 부채로 자금을 조달한 것은 작년부터"라며 "기술혁명이 늘 그랬듯 AI 데이터센터 붐도 언젠가 버블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만 버블 붕괴의 임계점은 이전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습니다.
빅테크의 투자 증가에 힘입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 전망치는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요.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 91조원을 기록한 반도체 투톱 실적은 올해 630조원에서 내년 906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따라 올해 코스피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3배 증가한 919조원, 내년은 1000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KB증권 김동원 연구원은 "빅테크에게 AI 투자는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진입장벽으로 인식되고 있어 일각의 우려와 달리 AI 투자에 천장이 없을 것"이라며 "이러한 환경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AI 시스템 전체 성능을 좌우할 희소 전략 자산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주도주 사이클 후기 주가상승률↑·개인순매수↑
기술적 분석상 주도주는 상승 사이클 후기로 갈수록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경향을 보입니다.하나증권 이경수 연구원이 2010년 이후 반도체를 제외한 시가총액 상위 50개 종목에서 52주 동안 100% 이상 상승한 사례를 전수조사한 결과, 모두 54개의 주도주 상승 사이클이 평균 18개월 동안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이클을 구간별로 나눠 살펴보니 평균 수익률은 중위값 기준 초기와 중기 20% 수준에서 후기에만 60%를 넘었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특징은 주도주 후기 사이클의 막바지에 개인의 수급이 급증한다는 점입니다.
이 연구원은 "핵심은 단순하다. 가격 수익률과 개인 순매수 강도 모두 후기 구간에서 가장 높았다"면서 "개인 순매수가 추가로 급증하는 것은 후기 사이클의 강력한 신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KB증권 이은택 연구원도 역사적으로 반복된 버블 말기의 특징을 소개하며 "소수의 대형 우량주가 계속 상승하는 현상이다. 개인 자금이 대량 유입되며 주도주로 쏠린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종합하면 '상승 랠리의 끝은 예상할 수 없다' 입니다. 다만 공통으로 이번 랠리의 타격을 줄 요소로 '기준금리 급등'을 꼽습니다. 이번 랠리의 내러티브가 출발하는 빅테크의 AI 투자에 금리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요.
따라서 랠리의 핵심은 '어디까지'가 아니라 '언제까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KB증권 김동원 연구원은 "급등에 따른 불안감은 있지만 버블은 단지 크게 올랐다고 스스로 붕괴하는 법이 없다"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몇 포인트까지 오를까?'보다 '언제까지 상승이 지속될까?'가 더 좋은 질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붕괴를 위해서는 경기 사이클 붕괴와 금리 급등 중 하나라도 시그널이 나와야 증시 랠리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이 시그널이 단기(3~6개월) 내에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