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서 이란 비핵화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제사회에서 이란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향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국내 에너지 수급에도 숨통이 트일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양국의 합의를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하면서도, 아직은 외교적 선언 수준인 만큼 향후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실제 해협 개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중 합의에 전문가들 "에너지 수급엔 긍정적 신호"
16일 정부 등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정상회담 후 보도자료를 통해 "(양국이) 에너지의 자유로운 공급을 지원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된 상태로 유지돼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시 주석은 중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군사화와 통행료 부과 시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며 "양국은 이란이 결코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에도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중국 외교부도 회담 후 성명을 내고 "호르무즈 항로를 가능한 한 조속히 다시 열어 글로벌 생산·공급망의 안정성과 원활한 흐름을 함께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가능한 한 빨리 포괄적이고 지속 가능한 휴전을 달성하고, 걸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해야 한다"며 "지속 가능한 지역 안보 구조 구축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란 정부를 둘러싼 세부 입장에서는 차이를 보였지만, 호르무즈 해협 개방 필요성에 대해서는 미·중 양국이 큰 틀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란 문제와 관련해 "대화와 협상을 통해 각 측의 우려를 고려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 주요국과 한국·일본 등 26개국도 미·중 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내고 호르무즈 해협 개방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이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항행의 자유를 지원하기 위해 집단적인 외교·경제·군사 역량을 활용하겠다"며 "무역 안보를 위한 실질적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또 민간 선박 운항 지원과 선박 안전 확보, 기뢰 제거 작전 등 다국적 임무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국내 원유·나프타 등 에너지 수급 차질 우려도 완화될지 관심이 쏠린다. 한국무역협회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통화에서 "미·중 양국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한 것은 한국의 에너지 도입 측면에서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중국을 '뒷배'로 여겨온 이란의 국제적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향후 해협 개방 협상 과정에서 이란의 협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서강대학교 허정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회담을 통해 미·중 간 입장 차가 일부 완화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며 "이란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강화될 경우 향후 에너지 수급에도 숨통이 트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란은 미·중 정상회담 시점에 맞춰 중국 선박 30여 척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허용하며 중국을 향한 구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도 지난 11일 발표한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 관전 포인트와 전망' 보고서에서 "중국 역시 이란과의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에너지 안보와 경제 안정을 위해 중동 불안 확산을 원하지 않는다"며 "중국이 이란에 대해 제한적 중재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의 역할론이 실제 협상 결과에 반영될 경우 이번 회담이 중동 정세와 종전 협상 흐름을 좌우하는 외교적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개방까지는 '미지수'…"당분간은 에너지 가격 높을 듯"
다만 양국의 선언이 실제 이행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아직은 원칙적 수준의 외교적 선언에 가까워 향후 구체적인 실무 협상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이란에 대해 단순 외교적 압박에 머물지, 군사·안보 협력까지 병행할지에 따라 향후 해협 개방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 원장은 "단기간 내 에너지 수급이 완전히 정상화되거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실제 통항량 회복과 선박 안전 확보, 전쟁보험료 인하 여부 등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해협 통항이 재개되더라도 당분간 에너지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리더라도 기존 항로 대신 오만 연안 쪽으로 우회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당분간은 홍해 항로를 통해 원유를 들여오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협에 설치된 기뢰가 이동하면서 여전히 위험 요소로 남아 있다는 판단에서다.
INSS 역시 "가장 큰 변수는 중동 상황"이라며 "이란 전쟁 긴장이 관리된다면 경제·통상 중심 협의가 가능하겠지만, 군사 충돌이 재격화될 경우 회담의 무게중심은 안보 위기 관리로 급격히 이동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