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평화공존의 두 방파제, 평화헌법과 DMZ

강원도 춘천시 산천리의 작은 예배당 '평화의 샘'. 일본 평화헌법 9조 수호를 위한 시민 서명운동이 12년째 이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산천무지개교회 윤재선 목사 측 제공

지난 19일과 20일, 경북 안동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마주 앉았다. 올해 1월 이 대통령의 나라(奈良) 방문에 이은 답방으로, 양국 정상은 사상 처음으로 서로의 고향을 오가는 셔틀외교를 완성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역대 정부들에서 이루어진 한일 합의가 정권 교체와 함께 얼마나 쉽게 흔들려 왔는지를. 특히 과거사와 같은 민감한 의제는 정상이 손을 잡아도 상호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채 다음 정권에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그러므로 두 나라 사이에서 정말로 지속가능한 영역은 결국 시민사회이며, 양국이 함께 직면한 현실적 과제들이다. 가벼운 의제부터 풀어 가며 신뢰가 쌓일 때, 무거운 사안에도 비로소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전 총리가 저출산과 인구감소, 지방소멸, 수도권 일극집중을 양국 공동 협의체의 의제로 합의한 것이 그래서 의미 있고, 이를 양국 시민의 공동 연구로 확장해 가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흐름위에 한 가지 제안을 더 덧붙이고자 한다. 전쟁의 산물인 일본의 평화헌법과 한반도의 DMZ를, 동북아 평화의 공동 유산으로 함께 묶자는 것이다. 물론 한국전쟁의 책임을 다르게 서술해 온 북한의 자리를 생각하면, 한·북·일의 이해가 처음부터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의제 안에, 한·북·일이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풀지 못한 매듭을 시민의 손으로 풀어 갈 열쇠가 숨어 있다.

평화헌법의 현재적 가치는 최근 미일 정상회담에서 다시 한 번 입증된 바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평화헌법을 방패로 삼아 중동 전쟁터로의 자위대 파견을 막아 낸 그 장면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걸음 더 들여다보아야 할 사실은, 이 헌법이 처음부터 일본만의 약속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평화헌법은 일본 본토만의 폐허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식민 지배와 강제 동원, 위안부의 비극을 견뎌 낸 한반도, 일본군에 짓밟힌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침략의 피해를 입은 많은 곳의 희생이 그 헌법을 낳은 것이다. 그래서 평화헌법은 일본이 자신에게 한 서약인 동시에, 그 주변국들에게 반성의 의미를 담은 약속이기도 했다.

지난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약속은 단순한 문서에 머무르지 않았다. 일본은 다시 군국주의로 돌아가지 않았고, 한반도와 주변국은 일본의 재무장이라는 변수 없이 재건과 발전을 이루었다. 미·중·러·일이 맞부딪치는 동북아 화약고에서도 일본을 매개로 한 새로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평화헌법은 일본만의 자산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가 누려 온 평화의 토대였다. 그러므로 일본의 개헌 추진은 우리 모두의 안보 환경을 흔드는 일이다. 일본 시민사회가 오랜 세월 외롭게 지켜 온 그 헌법을, 개정의 기로에 선 지금이야말로 한·일 시민이 함께 지켜야 할 때다.

한편, 한반도의 DMZ 역시 같은 의미의 유산이다. 한국전쟁의 휴전선이 굳어진 자리에서, 250킬로미터의 비무장지대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북 군사 충돌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 왔다. 의도하지 않은 평화 장치였지만, 정전 이후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다시 일어나지 않은 데에 이 비무장지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평화헌법이 일본의 무력 사용을 절제한 법의 방파제였다면, DMZ는 남북의 충돌을 막아 낸 공간의 방파제였다. 두 방파제가 지금, 같은 방향에서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일본은 개헌을 추진하고, 한반도는 남과 북이 별개 국가의 길로 갈라서며 군사적 긴장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동북아가 80년 가까이, 그리고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지켜 온 두 방파제를 같이 잃을지도 모를 위기에 놓여 있다. 새로운 군비경쟁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 속에 한국 정부 역시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20년부터 문화재청은 DMZ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남북 공동등재를 공식 의제로 삼아 실태조사를 진행해 왔고, 지난해 가을에는 경기문화재단이 학술포럼을 열어 등재 추진 방향을 다시 다듬었다.

그러나 가장 큰 벽은 북한이었다. 2020년 북한 선전매체는 한국의 DMZ 등재 구상을 "민족 분열의 영구화"라며 거칠게 거부했고, 등재는 그 이후 6년째 답보 상태에 있다. 정부 차원의 단독 시도가 막힌 자리에서, 이제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DMZ를 홀로 두지 말고, 같은 결의 유산인 일본의 평화헌법과 함께 묶는 것이다.

그러면 의제의 무게중심이 자연스럽게 옮겨진다. 한반도 분단의 산물임과 동시에 동북아 전체가 함께 짊어진 전쟁의 유산으로, 한국 정부의 일방적 추진이 아니라 한·일 시민사회가 손을 잡고 출발하는, 그리고 언젠가는 북한까지 합류할 수 있는 공동의 의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평화헌법 9조의 입법 문서와 한반도 정전협정, 그리고 7·4 공동성명 이후 축적된 남북 합의문을 한데 묶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공동 등재를 추진하자. 물론 등재 자체가 이 제안의 본래 목적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의미 있는 것은, 그 추진 과정에서 자리잡을 민간교류의 새로운 무대다. 한·일 청년이 평화 자료를 함께 발굴·번역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 평화헌법의 80년을 양국 학자가 공동 연구하는 일, DMZ 생태 조사에 한·북·일 시민과 학자가 함께 참여하는 일, 평화교육 교재를 공동 개발하는 일. 이 모든 활동을 통해 정권의 시간표를 넘어 지속되는 평화의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다.

정부 간 합의가 흔들려도, 시민과 시민 사이의 네트워크는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제안은, 남북이 경색된 지금 북한에도 매우 유리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잠시 돌이켜 보자. 6년 전 한국 정부가 DMZ 단독 등재를 추진했을 때, 북한 선전매체는 이를 "민족 분열과 동족 대결의 비극을 영구화"하는 행위라며 거칠게 거부했다. 통일된 한 민족이라는 전제 위에서, DMZ를 별도 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은 곧 분단을 영구히 인정하는 행위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2023년 12월, 김정은 위원장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공식 규정했다. 그리고 그 선언은 정치적 수사에 머물지 않았다. 2026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 회의에서 북한은 헌법을 개정해 기존 9조의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한다는 조항을 삭제하고, 사상 처음으로 제2조에 영토 조항을 신설해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라는 문구를 명문화했다. 두 국가론이 정치 수사를 넘어 헌법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 변화의 옳고 그름은 별도로 평가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6년 전 북한이 DMZ 등재를 거부할 때 들었던 "민족 분열과 동족 대결의 영구화"라는 논리의 기반인 통일과 민족이라는 전제가, 북한 스스로의 손에 의해 헌법에서 지워졌다는 사실이다. 흥미롭게도 이번 개정 헌법은 "적대적"이라는 표현은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구체적 경계선 규정도 두지 않아, 남북 간 평화공존의 여지를 헌법 안에 남겨두었다는 해석도 함께 나오고 있다.

오히려 이제는 거꾸로다. 그동안 한반도 평화 의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라는 정치적 합의에 묶여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동의, 휴전 당사자 간의 셈법, 체제 인정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어떤 정권에서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평화 유산 등재의 길은 결이 전혀 다르다. 북한은 정치적 양보나 비핵화 협상의 부담 없이도 국제사회에서 평화 당사자의 위상을 얻고, 평화의 공동 관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DMZ가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되면, 이 공간은 어떤 정권도 일방적으로 허물 수 없는 국제 자산이 될 수 있다. 정치 문서로서의 종전선언은 다음 정권이 뒤집을 수도 있겠지만, 국제 유산으로 등재된 공간은 그 자체로 종전선언보다 깊고 평화협정에 준하는 사실상의 안전판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구도는 북한이 표방하고 있는 두 국가 노선과도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는다. 흡수통일을 전제하지 않은 채 평화공존을 국제적으로 보증받는 자리, 그것이 북한이 얻을 실질적 이익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재명 정부 역시 지난 2월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공식 대북정책으로 채택했다. 이 정책은 북한 체제 존중·흡수통일 불추구·적대행위 불추진을 3대 원칙으로 두고, 당면 목표를 "한반도 평화공존의 제도화"로 설정했다. 북한이 헌법에서 "적대적"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한국 정부가 "평화공존"을 대북정책의 이름으로 표방한 지금, 남과 북 사이에 평화공존이라는 의제가 다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 열린 셈이다. 이 수렴이야말로 평화 유산 등재라는 의제에 절호의 호기를 열어준다. 한·일 시민사회가 먼저 의제를 일구어내고 한국 정부가 그 길에 동행한다면, 북한 역시 자국의 두 국가 노선과 충돌하지 않는 의제로 합류를 검토할 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문화유산 분야에서 남북이 협력한 선례도 분명히 있다. 2018년에는 씨름이 남북 공동등재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랐고, 앞서 아리랑은 남과 북이 각각 등재되어 우리 문화가 남북 모두의 유산임을 국제사회에 보여 준 바 있다. 그 경험 위에 평화 유산이라는 새로운 의제를 얹는다면, 정치적 부담을 덜고 시작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한·일이 먼저 출발하되 북한의 자리를 비워두고, 언제든 합류할 수 있는 구도로 설계하면 된다.

평화헌법 개정의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시계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의 손이다. 일본 시민사회가 80년 가까이 그 헌법을 외롭게 지켜 온 것처럼, 이제는 한·일 시민이 함께 그 시계 앞에 서야 할 때다. 전쟁의 산물을 평화의 자산으로 바꾸는 일은 한 정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민과 시민이, 한 세대와 다음 세대가 손을 잡고 이어가야 할 긴 호흡의 작업이다.

평화헌법과 DMZ는 한·북·일이 함께 짊어진 20세기의 유산이자, 21세기 동북아 평화공존을 떠받칠 공동의 자산이다. 마침 한·북·일의 만남은 이미 한 무대 위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난 20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는 북한 축구팀이 8년 만에 방한해 수원FC 위민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준결승을 치렀다. 한국에서 처음 펼쳐진 남북 여자 클럽 대결이었다. 북한이 2-1로 승리하면서, 오는 23일에는 같은 운동장에서 일본 도쿄 베르디 벨레자와 결승을 치른다. 한 도시에서 한·북·일의 선수와 관중이 한 호흡으로 만나는 풍경 , 그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공존의 작은 예고편이 아닐까. 안동에서 마주 앉은 두 정상이 그려낸 풍경 위에, 이제 한·북·일 시민이 함께 다음 그림을 그려 갈 차례다. 평화헌법과 DMZ의 유네스코 공동 등재가, 그 첫 획이 되기를 소망한다.

윤재선 일본 오사카공립대학 객원교수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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