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성희롱·폭언…선거 앞 드러난 제주관광의 민낯

[소수자, 후보에 바란다③]
제주 관광서비스 노동자들
손님 담배연기에 성희롱·폭언까지
노동자 78% '인격모욕' 경험 응답
여전한 감정통제에 편히 쉴 공간 없어
"관광 활성화? 노동자 권익보호 우선"

제주 한 관광객 기념품 판매점. 고상현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장애인 정책을 왜 비장애인이?"…교통약자가 바라는 세상
②세금 내고 투표도 하는데…외국인들 "우리 공약은 없어요"
③흡연·성희롱·폭언…선거 앞 드러난 제주관광의 민낯
(끝)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받는 제주. '관광산업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려함 이면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감정노동자가 있다. 여전히 인격적 모독에 시달리고 제대로 된 휴식 공간조차 없다. 이들은 "노동 중심의 관광정책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담배연기와 성희롱·폭언…퇴사자 속출

 
도내 대형호텔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20년 동안 일하고 있다는 A씨는 지난 22일 취재진에게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다"고 토로했다.
 
A씨가 근무하는 카지노 안에는 8개의 VIP 고객 전용 게임 공간이 있다고 한다. 별도의 흡연실이 있지만 고객들이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다. '큰손' 고객들의 흡연을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못한다. 하루 8시간 가까이 일하는 딜러들은 상시 담배 연기에 노출되고 있다.
 
딜러들에게 "너 가슴이 커서 오늘 게임이 잘 될 것 같다" "객실에 가서 같이 밥 먹자"는 성희롱뿐만 아니라 "(돈을 많이 잃어서) 밖에 나가서 얼굴 보면 죽여버린다"는 폭언에도 시달린다.
 
하루 8시간 3교대로 근무하는 딜러들은 20분 쉬고 80분가량 게임을 진행한다. 20분 간격으로 담배 연기와 모욕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일을 하더라도 신입직원 기준 평균 연봉이 올해 최저 연봉(2588만 원 상당)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A씨는 말했다.
 
도내 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 고상현 기자

이렇다보니 매달 직원 수십 명이 퇴사하고 있다고 한다. A씨는 "대형호텔 카지노는 노동조합이 있어서 그나마 항의라도 할 수 있는데 영세한 업장은 노동환경이 더 열악하다. 카지노에 불법이 판을 쳐도 여태 제주도는 형식적인 관리감독만 했을 뿐 실효성 있게 진행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2022년 10월 민주노총 관광레저산업노조 제주본부가 도내 서비스 노동자 256명을 상대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고객으로부터 인격적 모욕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72.8%에 달했다. 특히 폭행의 경우 47.9%가,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노동자는 52.1%로 조사됐다.
 

"여전한 감정통제에 편히 쉴 공간도 없어"

 
제주의 관문인 제주국제공항 면세점 직원들의 노동 환경은 어떨까. 고객 '갑질'은 예전보다 크게 줄었다고 한다. 다만 직원들의 감정 표현을 규제하고 감시하는 상황은 여전하다. 회사가 과거와는 다르게 대놓고 안 할뿐이지 '고객의 소리(VOC)' 등의 형태로 직원들의 감정을 통제하고 있다.
 
면세점에서 23년간 일한 B씨는 "고객 불만이 VOC로 접수되는데 정당한 문제 제기도 있지만, 안 그런 경우도 있다. 그러면 사실관계를 따져야 하는데 무조건 본사에 통보하겠다고 한다. 고객 칭찬은 알리지도 않는다. 악성 소비자(블랙 컨슈머) 비위도 그냥 맞추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제주공항 면세점은 200여 개 매장에서 모두 900여 명이 교대로 일하고 있다. 동시 근무자만 200여 명이다.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손님을 상대하다 잠시 쉬려고 해도 쉴 공간이 마땅치 않다. 업장 주변에는 휴게실이 없어서 보안검색대를 지나 대합실로 가거나 활주로 쪽으로 가야한다고 한다.
 
도내 한 면세점 모습. 고상현 기자

20분쯤 걸어가야 도착하는 휴게실조차 "직원 모두가 쉬기에 장소도 비좁고 소파도 낡았다"고 토로했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있기라도 하면 공항 이용객들이 항의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B씨는 "원래는 점심식사 쿠폰을 줬었는데 이마저도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갑자기 없애버렸다. 그나마 싼 구내식당에 가면 공항 전체 직원이 이용하다 보니 점심시간 안에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도시락을 싸오더라도 공항 이용객 눈을 피해 먹어야 해서 창고 같은데서 급히 먹는다"고 하소연했다.
 

"관광 질 개선? 노동자 권익보호 선제돼야"

 
제주의 관광산업 정책은 관광 활성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관광서비스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에는 무관심했다. 관광 질을 높이기 위해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가 행복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김강석 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 제주본부장은 "코로나19 이후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관광 서비스 사업장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 때문에 청년들이 떠나고 인력이 없는 상황이다. 관광서비스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경영진들만 만나서 논의하고 포럼을 여는데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위한 게 아니다. 관광서비스 노동자를 담당하는 기구라든가 노정 협의뿐만 아니라 노정 교섭을 통해 관광서비스 노동자 목소리를 직접 듣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내 한 대형호텔 에스컬레이터를 청소하는 노동자. 고상현 기자

이를 위해 서비스노조는 지방선거 후보들에게 △관광노동자 건강과 안전 보호 △관광노동자 삶과 복지를 책임지는 지방정부 △관광산업 청년 노동자 권익 보호 등 5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특히 세부적인 정책안으로는 △노동권 강화를 위한 노동협의 기구 운영 △맞춤형 감정노동 보호 방안 마련 △기후위기 노동자 보호 방안 마련 △주거 복지 정책 확대 △출·퇴근 교통비 지원 △관광노동복지기금 조성 △디지털·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고용노동 실태조사와 영향평가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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