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 사서 환호할 때 팔아라"라는 주식시장 격언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전설적인 투자자 피터 린치의 '칵테일파티 이론'이 있습니다. 칵테일파티에서 자신을 펀드매니저라고 소개하면 벌어지는 일을 토대로 시장의 분위기를 4단계로 소개했는데요.
시장이 바닥(1단계)일 땐 사람들이 인사만 받아주고, 지수가 20% 정도 오른 상승장 초입(2단계)일 땐 사람들이 가벼운 이야기만 나누다 '주식은 위험하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지수가 40% 오른 강세장(3단계)에 진입하면 사람들이 '종목을 추천해달라'고 요구하고요. 사람들이 몰려와서 오히려 먼저 종목을 추천하고, 그 종목이 실제로 상승하면 버블의 정점(4단계) 신호라는 설명입니다.
공포지수(VKOSPI) 올해 내내 '하락 경보' 수준
시장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정량적 기준도 있습니다. 이른바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 지표입니다. 미국에는 'VIX' 지수, 우리나라에는 '코스피200변동성(VKOSPI)' 지수가 있습니다.
VKOSPI 지수는 코스피200 옵션의 내재변동성을 기반으로 산출됩니다. 통상 기관은 외가격 풋옵션을 매수해 갑작스러운 시장 하락 가능성에 대비합니다.
옵션 만기 때까지 주식시장이 상승하면, 현물에서 수익이 나고 풋옵션을 매수한 투자금은 100% 손실이 됩니다. 하지만 만기 때까지 주식시장이 하락하면, 현물에서 손실이 발생해도 풋옵션 수익으로 이를 만회할 수 있죠. 보험과 똑같은 구조입니다.
VKOSPI가 급증한다면, 시장에서 코스피의 하락 전망이 강해진다는 의미입니다. 보험 가입비가 비싸진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보통 20을 돌파하면 '주의보', 30을 넘으면 '경보'로 해석하는데요.
위기 국면별 VKOSPI의 고점은 △2011년 8월 유럽 재정위기 때 70.33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때 71.75 등을 기록했고 △지난 3월 중동전쟁 직후 83.58로 사상 최고점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VKOSPI에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코스피는 4300선에서 8400선까지 2배 가까이 오른 강세장이었는데, VKOSPI가 3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습니다. 코스피 상승 내내 하락에 대비하라는 '경고등'이 켜져 있었던 셈이죠.
마찬가지로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코스피가 1439을 저점으로 연말 2873까지 거의 2배 상승한 2020년의 VKOSPI 중윗값은 23.63이었거든요.
이런 차이의 원인은 '포모(FOMO)'입니다. 나만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공포가 올해 VKOSPI에도 선명하게 반영됐습니다. 2020년 동학개미운동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올해 코스피 하락 대비한 '보험 가입자' 폭증
먼저 풋옵션 거래량을 콜옵션 거래량으로 나눈 'P/C Ratio'를 보면, 올해 중윗값은 1.9입니다. 1보다 작으면 콜옵션 거래가 많고, 1보다 크면 풋옵션 거래가 많다는 뜻으로 보통은 0.9와 1 사이에 머뭅니다.
특히 올해는 △1월 1.79 △2월 1.81 △3월 1.46 등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다가 △4월 3.09 △5월 3.05 등 두 달 동안 폭증했습니다. 코스피 하락을 우려한 '보험 가입자'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의미입니다.
2020년 P/C Ratio 중윗값은 1.03입니다. 오히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VKOSPI가 급등한 3월 한 달 중윗값은 0.98이고요. 당시 보험 가입자가 가장 많았던 날도 1.77 수준입니다.
급락도 급등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안전벨트' 필수
VKOSPI를 산출하는 옵션의 내재변동성(가격)의 중윗값은 2020년이 20.6이었고, 올해는 47.3입니다. VKOSPI 중윗값이 2020년 23.63, 올해 54.07이니까 여기까진 이상한 점은 없습니다.
그런데 풋옵션 내재변동성에서 콜옵션 내재변동성을 뺀 '스큐(Skew)' 지수를 계산해 보면 2020년 중윗값이 2.3인 반면 올해는 0.9입니다. 하락 공포가 클수록 스큐 지수는 커집니다. 즉 보험료가 비싸진다는 의미입니다.
2020년에는 코스피 하락에 대한 공포 때문에 보험료가 상당히 비쌌습니다. 물론 보험 가입자는 아주 일시적으로만 증가했고, 평균 가입자 수도 예년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올해는 코스피 하락에 대한 공포 때문에 보험 가입자가 폭증했는데도 보험료는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즉 스큐 지수가 0.9에 불과한 이유는 풋옵션 가격이 오른 만큼, 콜옵션 가격도 급등하며 상쇄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올해는 코스피 하락을 우려한 보험 가입자가 폭증하고 보험료도 급등한 동시에 코스피 상승을 추격하는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도 팔리는 상황입니다.
현재 VKOSPI에는 급락할 수 있다는 '공포'와 나만 벼락거지 될 수 없다는 '포모'가 유례없이 높은 수준으로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코스피는 급등도 급락도 이상하지 않은 '초고도 변동성' 장세이고요. 결국 "주식시장은 조울증 환자 같다"는 벤자민 그레이엄의 비유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상황입니다.
한국투자증권 정현종 연구원도 "기업의 강한 이익 성장세와 투자 심리는 견고한 상황이지만, VKOSPI가 극단적으로 높아져 있는 고변동성 환경은 국내 주식시장이 언제든 급격한 테일 리스크(극단적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절정의 탐욕과 공포가 맞부딪히는 지금은 수익을 즐기되 언제든 탈출할 수 있는 '안전벨트'를 매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