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지도, 함부로 뒤집지 마시라[기자수첩]

日 정한론 두둔했던 프로이센 장교의 '한반도 비수론', 140년만에 재등장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단검론' 논란…동맹을 도구화한다는 비판
작년에는 '뒤집힌 한반도 지도' 논란…동맹에 대한 배려 부족

조선 낚시놀이. 20세기 교체기 무렵에 일본에서 주로 시사 화가로 활동한 프랑스인 조르주 페르디난드의 풍자화로, 1887년 2월15일자 '도바에' 1호에 실렸다. 다리 위 군복 차림인 러시아인이며, 청나라 사람(오른쪽)과 일본 사람이 낚싯줄을 내리고는 고기를 낚으려 하는 중이다. 이 물고기에는 'COREE'(코리아)라는 글씨가 써 있다. 연합뉴스

국운이 쇠한 조선을 놓고 일본과 중국, 러시아 등이 쟁탈전을 벌이던 19세기 말 서구열강의 미디어는 조선을 일개 먹이감으로 묘사한 삽화를 자주 그렸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한 민족, 심지어 한 문명 전체의 불행이나 비극조차 지배적 강자의 시선에는 한낱 도구에 불과했다.
 
프로이센(현 독일)의 장교도 그 중 하나였다. 1885년 일본 메이지 내각 군사고문 야코프 메켈 소령은 "한반도는 일본의 심장을 겨눈 비수"라는 지정학적 규정으로 정한론(征韓論)을 두둔했다. 
 
대륙세력이 한반도라는 비수를 손에 쥐기 전에 일본이 먼저 조선을 차지하는 것은 자위적 예방조치로서 정당하다는 논리를 제공했다. 
 
연합뉴스

이 낡은 제국주의 논리가 무려 140여 년만에 한반도에 다시 등장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달 팟캐스트 방송에서 한국을 아시아의 중심에 있는 '단검'(dagger)이라 지칭했다.
 
중국이 대양으로 진출하려 할 때 한국과 일본, 필리핀이 단검과 방패처럼 자신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에서다. 
 
논란이 되자 그는 "우리가 처한 작전 환경을 설명하려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다른 이들의 관점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맥락이었다고 부연했다. 
 
그는 "우리는 너무나 자주 아군(blue)과 적군(red) 이분법으로만 생각해 왔다"며 "이제는 대화를 나누고 군사적 사고를 발전시킬 기회가 있는 '녹색'(green)이 존재한다"고도 말했다. 
 
해명대로라면 그리 탓할 일은 아니다. 한국·일본·필리핀의 삼각 진형으로 전쟁 억지력이 강화되면 외교의 공간이 만들어질 것이란 발언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그의 발언에 동맹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이 삼각형을 하나의 '킬 웹'(kill web)으로 엮는 구상을 언급했다. 킬 웹은 적을 탐지하고 제거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인 킬 체인(kill chain)을 더 발전시켜 거미줄처럼 네트워크화 한 것이다.
 
반격 능력이야 당연히 높아지겠지만, 이는 동시에 적의 1순위 표적이 됨을 뜻한다. 최근 중동전쟁에서 미국의 걸프 동맹국들이 이란의 공격을 받은 것처럼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 된다. 
 
그는 "우리는 지금 꽤 좋은 위치에 있다"고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주한미군 평택기지(캠프 험프리스)는 제국주의 일본이 중국 공략을 위한 최적의 요충지로 건설한 곳이다. 
 
'우리' 미군 입장에선 맞는 얘기겠지만 한국민이 듣기에는 거북하다. 미국 중심 사고로서 동맹을 도구화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주한미군사령부. 제공

브런슨 사령관의 이런 언행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11월에는 동쪽을 위로 하는 '뒤집힌 한반도 지도'(East-Up Map)를 공개하며 대륙을 견제하는 한반도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당시에도 '관점의 전환'을 언급하며 평택에서 평양은 255km, 베이징은 985km, 블라디보스톡은 691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음을 지적했다. 
 
지도를 거꾸로 본다고 해서 시각적 효과 외에 어떤 전략적 통찰이 가능한지는 비전문가들로선 알기 어렵다.
 
다만 남의 나라 지도를 함부로 뒤집고, 단검이라는 듣기 흉한 표현까지 쓰는 것은 아무리 동맹이라도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