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오는 4일 출범 1년을 맞는다.
출범 직후부터 미국의 관세 압박이 들어왔지만, 이 대통령이 직접 미국을 찾고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협상 타결에 성공하면서 문제가 일단락됐다.
진보 정부는 안보에 소홀하다는 편견을 깨기라도 하듯, 핵추진잠수함 건조 추진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대일외교 정상화 등 국방과 외교 문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마스가'로 관세 협상 타결, 20년만에 핵잠수함 건조 공식화
지난해 6월 막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최대 현안은 미국의 관세 압박이었다.
이 대통령은 8월 말 미국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고, 10월에는 경주에서 다시 만나 대미투자 3500억 달러라는 조건으로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특히 1500억 달러는 조선업 분야 협력인데,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쇠퇴 일로를 걷고 있는 미국 조선업의 부흥을 돕겠다는 제안을 지렛대 삼은 셈이다.
외교안보 분야 현안 중 가장 큰 주목을 받는 핵추진잠수함 건조도 이와 일정 부분 연관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잠수함을 건조할 곳으로 한화가 인수한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우리 정부가 한국 내에서 핵잠수함을 개발·건조하겠다는 기본 원칙을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동중국해 등에서 중국 해군을 견제함과 동시에 자국의 조선업 부흥 또한 이끌어낼 수 있는 카드로도 본 셈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노무현 정부의 '362 사업' 이후 20년 만에 핵잠수함 건조가 현실화되면서 기대가 크다. 북한 상대론 비용 대비 효용성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많지만, 한반도를 벗어나 먼 바다까지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전략자산이라는 점에서 진짜 가치가 드러난다.
더욱이 핵잠 운용을 위해선 원자로에 들어갈 핵연료를 확보하고 재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에 의해 막혀 있던 농축·재처리 권한을 찾아올 수 있게 된 일도 큰 성과다.
한미 외교당국은 2일부터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JFS) 안보 분야 후속조치를 위한 발족 회의에 들어갔다. 2일에는 핵잠수함, 3일에는 농축·재처리 분야 협의가 진행된다.
'전략적 자율성' 위한 전작권 전환 가속화
이처럼 격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나라의 '전략적 자율성'을 보다 강화하려고 하는 노력은 전작권 전환 가속화에서도 드러난다.
한미는 지난 2015년 한국군의 군사능력과 역내 안보환경을 포함한 3개의 '조건'이 달성되고, 한국군이 주도하는 연합사의 임무수행능력이 검증됐을 때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했다. '미군 사령관, 한국군 부사령관'인 현 한미연합사 체제가 '한국군 사령관, 미군 부사령관' 체제로 바뀐다.
정부는 올해 가을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전에 전환 로드맵을 만든 뒤, 해당 조건을 임기 내 충족하고 전작권을 넘겨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평시작전통제권은 한국 합동참모본부가 행사하지만 연합권한위임(CODA)에 의해 위기관리, 연합작전계획 수립 등의 6개 권한은 연합사에 있다. 전작권이 전환되면, 이 같은 전쟁 대비 위기관리와 작전계획 수립도 우리 군이 주도하게 된다.
이를 의식한 듯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핵잠수함과 전작권 전환을 '자주국방'의 핵심으로 꼽으며 "이제는 충분히, 우리의 역량으로, 스스로 일어서고 지켜나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에서 미 상·하원 대표단을 상대로 "내일 전작권이 전환되더라도 아무 어려움이 없다는 취지와 내용을 전달했다"며, "한미 양국은 2020년에 전작권 전환 조건의 94%가 이미 충족됐다고 합의한 것을 비롯해 우리의 능력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다만 국제 안보환경의 변화는 물론 감시·정찰 등 우리 군의 여러 능력이 아직 불완전한 가운데 정부가 전작권 전환을 지나치게 서두르려 한다는 비판이 상존한다.
연합사에서 오래 근무한 한 퇴역 장성은 "전작권은 단순히 '작전 통제'의 문제뿐 아니라, 평시 위기관리 능력과 정보자산 운용은 물론 억제 단계를 넘으면(전쟁이 발발하면) 상대를 격멸할 수 있는 무기체계와 능력이 두루 필요한 사항"이라며 "북한의 중국·러시아 밀착으로 '제3국 개입(TPII)' 위험성도 높아졌기 때문에 호의적인 환경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연한 '국익 중심 실용외교'…日과 좋은 관계 이어가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이재명 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물러나고 강경 우파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취임했지만, 이 대통령은 '셔틀외교'를 이어 가면서 대일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고 있다.
올해 1월 이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나라현을 찾은 데 이어, 지난달 다카이치 총리가 이 대통령의 고향인 안동을 찾은 일은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드물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그 배경으론 먼저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내세운 이 대통령의 유연한 스탠스가 꼽힌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첫 한일정상회담 직전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과거사 문제도 중요하고, 사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도 "문제에 너무 매몰돼선 안 된다.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에게 도움되는 일은 최대한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 내에선 민주당 정부의 재집권으로 인해 또다시 한일관계에 문제가 생길 것이란 예측이 많았는데, 이를 뒤집고 과거사 문제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좋은 관계를 이어 간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정부에서 강력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른바 '제3자 변제'를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놓고 셔틀외교를 복원했다는 점 또한 한일관계 관련 변수를 줄인 요인 중 하나다.
트럼프 행정부 집권 이후로 국제 정세가 격변하면서, 일본 역시 한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판단을 하게 된 점도 중요한 이유다.
손 내밀었지만, 아직 풀기 어려운 '남북관계'
윤석열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북정책과 '평양 무인기 사건' 등으로 인해 악화될 대로 악화된 남북관계는 이재명 대통령이 아직 풀기 어려운 퍼즐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선 △북한의 체제를 존중하며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고 △적대행위도 추진하지 않겠다는 대북정책 3원칙을 공식화했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선 단기간에 해결이 어렵다며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를 필두로 하는 '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하고, 현실적으로 이행 가능한 조치부터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통일부는 최근 남북을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통일백서를 발간했는데, 이에 대해선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 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이 사실상 두 국가로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2024년 초 '적대적 2국가론'을 공식화한 이후 '우리 민족', '조국통일' 등의 개념을 삭제하고, 헌법에는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령토"라는 문구를 넣으면서 남북간의 모든 대화와 접촉을 단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남북관계가 위기에 봉착할 때는 전통적으로 스포츠·문화 행사 등 민간 교류를 통해 물꼬를 트곤 했다. 그러나 얼마 전 북한의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수원을 찾아 준결승전을 치렀을 때도 한 취재진의 '북측'이라는 표현에 반발해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는 평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