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 꼬마의 '반전 인생'…인간 박찬대, 인천시장으로 우뚝

독립운동가와의 연대, 그리고 가난
전액 장학생에서 공인회계사까지
노무현의 죽음이 낳은 박찬대의 반전
험지 연수구서 일군 '정치적 기적'
朴의 'ABC+E'로 그리는 인천의 미래

학창시절 박찬대 인천시장 당선인의 모습. 박 당선인 측 제공

6·3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박찬대(59·더불어민주당) 인천시장 당선인은 인천 용현동 판자촌에서 출발해 공인회계사, 국회의원, 원내대표를 거쳐 인천시정의 수장 자리에 오르게 됐다.

독립운동가들과의 인연이 남긴 가문의 기억, 가난을 딛고 일어선 성장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시작된 정치 여정, 그리고 이재명 정부와의 긴밀한 '핫라인'까지.

박 당선인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함께 성장한 정치인의 압축판으로 평가된다.

 朴 집안의 뿌리, 독립운동가와의 '연대'…결핍은 자양분

박 당선인은 인천 용현동 판자촌이자 일본 기업명에서 유래한 '히다찌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집안은 안동 유림의 전통과 독립운동가들과의 인연을 간직하고 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일부 정치적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박 당선인 측은 임청각 종가와 자신의 가문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항일 동지애'로 뭉쳐 왔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친증조부와 외고조부 등이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함께 견뎌냈다는 가족사가 전해진다.

그러나 독립을 향한 연대의 대가는 혹독한 가난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17세에 결혼한 뒤 한국전쟁을 겪으며 일곱 식구의 생계를 짊어졌다. 미군부대를 따라 서울 용산과 인천 부평 등을 전전하며 푼돈을 모아 구멍가게를 열었고, 식탁에는 팔고 남은 식재료가 오르기 일쑤였다.

박 당선인은 훗날 "외식 한번 해보는 게 소원이었다"고 회상했다.

박찬대 인천시장 당선인이 가족들과 함께하고 있다. 박 당선인 측 제공

배고픔은 그의 어린 시절 가장 선명한 기억이었다. 중학생이 돼서야 처음 짜장면과 카레를 먹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미술에 재능을 보였지만 화가를 꿈꾸기에는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미술대회에서 선생님이 사준 설렁탕 한 그릇, 대학 시절 지도교수와 함께 먹은 삼겹살은 지금도 잊지 못하는 '배부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결핍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공동체'였다.

집 근처 사찰은 끼니를 챙겨줬고, 교회는 정서적 안식처가 됐다. 차비조차 부족했던 고등학교 졸업 무렵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곳은 자신이 태어난 판자촌 터에 세워진 인하대학교였다.

박 당선인은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돼 등록금과 생활비 지원을 받으며 경영학을 공부했다.

가난이 그를 주저앉히지 못한 이유는 늘 곁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 속에서 꽃 피워…회계사 등 '경제통'으로 변신

서울대 정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박찬대 당선인과 그의 가족들. 박 당선인 측 제공

군 복무를 마친 뒤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은 박 당선인은 20대 후반 한국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며 전문직의 길에 들어섰다.

나아가 그는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까지 취득하며 국제적 전문성을 갖췄고, 세동회계법인과 삼일회계법인 국제부에서 활동하며 기업 재무와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익혔다.

이후 금융감독원 공시국과 회계감독국에서 근무하며 시장 감시와 회계 투명성 확보 업무를 맡았다.

직접 한미회계법인을 설립해 경영인으로도 활동했다.

직원 급여와 세금, 경영 부담을 몸소 경험하며 서민경제의 현실을 체감했고, 복잡한 재무구조를 분석하며 경제를 읽는 눈을 키웠다.

어느새 판자촌 소년은 숫자로 세상을 읽는 경제통이 돼 있었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자책감"…정치인 박찬대의 등장

그를 정치로 이끈 결정적 사건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였다.

박 당선인은 당시를 "무심함과 방관이 노무현 대통령을 그렇게 떠나보낸 것은 아닌지 자책감이 밀려왔던 순간"으로 돌이켰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에 참석한 그는 노란 풍선 물결 속에서 영구차에 손을 얹고 눈물을 흘렸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말을 되새기며, 자신도 사회에 빚을 갚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왼쪽부터 김남준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당선인, 정청래 대표, 박찬대 당선인 모습. 박 당선인 측 제공

이후 그는 인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을 찾아다니며 "회계사인데 도움이 될 일이 없겠느냐"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시민사회 활동만으로는 세상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현실도 마주했다. 그가 정치 참여를 결심한 이유였다.

2012년 민주당에 입당한 그는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걷진 못했다.

고향에서의 지역구 출마가 무산되자 당의 결정에 승복했고, 인천시당 청년위원장을 맡아 동료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으며 대중 앞에 섰다.

이후 민주당계 후보가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던 험지인 연수구 지역위원장을 맡게 된다.

박 당선인은 "판자촌도 극복했는데 못할 게 무엇이 있겠느냐"는 각오로 바닥 민심을 훑었다.

결과는 '기적'이었다.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 창당으로 야권이 분열된 상황에서도 연수갑에서 단 214표 차이로 승리했다. 그가 이곳에서 내리 3선을 하게 된 서막이었다.

당시 그의 승리는 민주당이 원내 제1당이 되는 결정적 한 표가 됐고,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는 정치 지형 변화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박찬대가 만들어낸 214표의 기적이 대한민국 정치의 흐름을 바꾼 셈이다.

막힌 길 뚫어내는 '당찬' 국회 의정 활동과 리더십

전통시장 상인과 함께하고 있는 박찬대 당선인 모습. 박 당선인 측 제공

10년간의 의정 활동에서 박 당선인은 회계 분석 전문가 출신답게 제도 개혁에 두각을 나타냈다.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개정을 주도하며 회계 투명성 강화에 힘썼고, 공정과세 실현을 위한 정책 활동에도 참여했다.

지역 현안 해결에도 적극적이었다. 경제성 부족 문제로 난항을 겪던 청학사거리역 신설 논의에 GTX-B 노선과 제2경인선 계획을 연계해 돌파구를 마련했고, 인천고등법원 설치와 해사전문법원 유치에도 앞장섰다.

44년 동안 금지됐던 인천 앞바다 야간 조업 규제 완화 역시 대표 성과로 꼽힌다.

22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12·3 내란 사태 대응 과정에서 당시 이재명 당대표와 '투톱'으로서 당을 이끌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과정에서는 상임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아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그가 '이재명 파트너' 가운데 핵심 인물로 평가된 배경이다.

인천의 도약을 이끌 새로운 설계, ABC+E 전략

시민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박찬대 당선인 모습. 박 당선인 측 제공

이제 박 당선인은 입법부를 떠나 지방 행정부 수장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가 제시한 인천의 새로운 미래는 'ABC+E'로 압축된다. AI(인공지능), Bio(바이오), Culture(문화), Energy(에너지)다.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AI 기반 첨단 물류 허브로 육성하고, 송도 바이오산업을 신약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 중심으로 고도화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제물포·문학·부평을 잇는 문화콘텐츠 벨트를 조성해 원도심을 활성화하고, 인천 앞바다의 청정에너지를 산업단지에 공급하는 친환경 산업 전환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기반으로 시민 평균 연봉 5500만원 시대를 여는 게 최종 목표다.

이로써 판자촌에서 키운 한 소년의 꿈은 이제 인천이라는 대도시의 비전을 설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박찬대 당선인은 "이재명 정부와 인천을 잇는 가장 튼튼한 다리가 되겠다"고 밝혔다.

박찬대 당선인이 지난 선거 기간 당시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와 함께하고 있는 모습. 박 당선인 측 제공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 당선인은 4일 오전 2시(개표율 66.8%) 기준 득표율 55.37%로 현직 시장인 유정복 국민의힘 후보(득표율 43.55%)에 앞서며 당선이 확실시 됐다.

그는 소감문에서 "하늘길과 바닷길, 유서 깊은 원도심과 활기찬 신도시까지, 다채로운 삶을 품고 중앙정부와 완벽하게 발을 맞추겠다"며 "더 낮게 듣고 더 치열하게 뛰고 압도적인 성과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재명 픽' 후보로서 힘있는 여권 시장 이미지와 일꾼론으로 시민들의 선택을 받은 것 같다"며 "인천이 대통령을 배출하는 등 민주당 강세권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흐름의 결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특정 계파에 갇히지 않고 합리적 이미지를 갖춘 게 강점"이라며 "중앙정부와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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