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 앞 우르르, 단톡방 와글와글…음모론 키워버린 선관위

6·3지방선거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SNS서 "중국 조작 선거" 등 가짜뉴스 퍼져
시민들도 "선거 결과 믿기 어려워" 비판
전문가 "민주주의 신뢰 흔드는 중대한 문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유되고 있는 6·3지방선거 관련 부정선거 의혹 주장을 담은 사진. SNS 캡처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부정선거 음모론'에 기름을 부었다. 온라인에서는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하는 각종 허위·조작 정보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고,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도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에 대한 불신도 커지는 모양새다.

반복된 선거관리 논란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며 근거 없는 음모론까지 확산할 토양을 제공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국이 세팅한 선거"…SNS타고 번지는 음모론

5일 스레드(Thread)·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엑스(X·옛 트위터) 등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각종 부정선거 음모들이 쏟아지고 있다.

'윤어게인 송파구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이름의 오픈채팅방에는 "우파 지역만 투표용지가 부족한 것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민주당의 의도적인 조작 선거다", "선거 결과에 이미 셋팅값(설정값)이 있다"는 취지의 대화가 지속적으로 오갔다.

SNS 캡처

중국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음모론도 확산했다. 스레드에는 중국계 계정으로 보이는 한 이용자가 지난달 16일 지방선거 결과를 예측한 게시물이 공유되면서 "중국이 선거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다", "중국이 세팅한 선거"라는 내용의 글이 도배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게시글의 예측 수치는 출구조사 결과는 물론 실제 선거 결과와도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계정에서는 시·도지사 선거 결과를 14대 2로 예측했지만, 실제 결과는 12:4였고, 서울시장 선거 결과 등 주요 후보 득표율도 상당 부분 달랐다.

중국인 지방선거 투표권을 둘러싼 허위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선거 외국인 유권자 약 15만 명 가운데 중국 국적자가 약 78%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근거로 "선관위 내부에 중국계 인사가 많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나왔다.

SNS 캡처

빳빳하게 묶여있는 투표용지 사진도 공유되고 있다. 일부 이용자들은 접힌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투표지 묶음 사진을 올리며 사전 기표나 투표지 바꿔치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는 투표용지는 일반 인쇄용지보다 복원력이 우수한 종이를 사용해 접힌 자국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같이 상당수 문제제기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거나 이미 반박된 주장들이다. 앞서 대법원도 부정선거를 실체가 없는 의혹으로 결론 내렸다. 지난 2022년 대법원은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21대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이뤄졌다고 제기한 선거무효 소송을 기각하며 "부정선거는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복된 관리 부실…흔들리는 선관위 신뢰

4일 새벽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 시위대와 주민들이 몰려 있다. 송선교 기자

그러나 SNS 등에서 음모론이 확산하는 것과 별개로 선관위의 무능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선관위가 스스로 선거에 대한 불신을 자초한 셈이다.

송파구에서 나고 자랐다는 60대 김모씨는 "투표를 못 한 사람들은 당연히 화가 났을 것"이라며 "강남구에서도 투표용지를 받지 못한 사례가 나왔다고 하니 선거 결과를 믿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진 서울 송파구 잠실7동 투표소 근처 아파트 주민 20대 박모씨는 "모든 사람한테 주던 권리가 몇 시간도 안 돼서 (투표용지가 부족한) 상황이 나왔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중앙선관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안을 낼 건지 설명해 줘야 한다"고 했다.

강동구에 사는 30대 최모씨는 "(송파구는) 투표용지를 애초에 유권자의 50%만 준비했다고 하는데, 운영할 때부터 국민이 지방선거는 투표를 잘 안 한다는 가정 하에 만든 건지 이해가 안 된다"며 "국민성에 대해 선관위가 얼마나 만만하게 보고 있는지 의문이고, 정치 저관여층 국민들도 우리나라 선거에 불신을 가지게 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2년 대통령선거 당시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 과정에서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는 일부 유권자가 관외 사전투표용지를 받은 상태로 투표소 밖으로 이동한 사실이 알려지며 '부실관리'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우리나라 선거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고 지적한다.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신율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있어서는 안 될 중차대한 실수"라며 "선관위는 이미 사전투표 관리부실 등 여러 차례 논란을 빚었음에도 최고 책임자들이 그 실수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는 제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하는데 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며 "사전 투표 전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을 두는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개표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투표가 계속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4일 새벽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유튜버 전한길씨 등 부정선거론자들이 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지은 기자

중앙선관위는 지난 4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긴급회의를 열고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의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서울 송파구 12곳, 강남구 1곳, 광진구 1곳 등 투표소 14곳에서 발생했다. 중앙선관위 허철훈 사무총장은 지난 3일 브리핑에서 "서울 송파구 지역의 경우 유권자 수의 50% 수준만 투표용지가 인쇄됐다"며 "유권자 수가 100명이라면, 그중에서 사전투표를 한 유권자도 계시고 하기 때문에, 전체 유권자 수에서 50%를 인쇄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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