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대입구역 근처 고깃집에 5일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됐다. 다시 한국을 찾은 글로벌 AI 산업계의 '거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곳에서 SK, LG, 네이버 등 국내 기업 수장들과 삼겹살에 '소맥'을 곁들여 공개 회동을 진행했다.
황 CEO는 한국과의 관계를 "거대 파트너십"이라고 표현하며 서울에 엔비디아의 AI 연구 센터를 짓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방한하자마자 "깜짝 선물을 갖고 왔다"고 예고한 황 CEO는 국내 기업인들과 만찬을 마치고 2차로 '치맥'(치킨·맥주) 회동까지 이어가면서 추가적인 대규모 협업 가능성에 대한 국내 업계의 기대를 키우는 모양새다.
서울 한복판에 모인 산업계 거물들…'소맥'으로 친분 다져
이날 오후 김포공항으로 입국한 황 CEO는 저녁 7시10분쯤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 고깃집에서 SK그룹 최태원 회장, LG그룹 구광모 회장, 네이버 이해진 의장과 만났다. 특유의 가죽자켓을 걸친 황 CEO가 뒤늦게 도착하자 미리 도착해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던 세 기업인들은 함께 일어서 반갑게 맞이했다.
이들의 회동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황 CEO는 깻잎으로 삼겹살 쌈을 싸 먹은 뒤 양손을 들어올리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고기는 참석자들 가운데 가장 젊은 구광모 회장이 주로 구웠다. 이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는 최태원(66) 회장이며, 젠슨 황(63) CEO, 이해진(59) 의장, 구광모(48) 회장 순이다.
황 CEO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듯 나이 순으로 술잔을 먼저 채워주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고깃집 직원이 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에 숟가락을 넣어 거품을 일으키는 '소맥 제조 장면'을 보여주자 이를 그대로 따라하며 동석자들에게 술잔을 나눠주기도 했다. 건배사로 "고(Go) 코리아, 고 SK, 고 LG, 고 네이버"라고 외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들은 '만석'인 음식점의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손님들 한 가운데서 식사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리였던 만큼, 모두 셔츠 또는 티셔츠 차림으로 회동에 임했다. 주변 손님들이 사인과 사진을 요청하자 황 CEO는 흔쾌히 응했다.
'형님 저요'라는 이름의 이 음식점은 야외로 창이 열려 있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다. 글로벌 기업인들의 이례적인 공개 회동을 보기 위해 인근에는 수 시간 전부터 시민들이 빼곡하게 모였다. 황 CEO와 이들 기업인들은 식사 도중 밖으로 나와 준비한 선물을 나눠주는 등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도 보였다. 황 CEO는 최 회장이 준비한 HBM 콘셉트의 과자 'HBM 칩스'를 나눠주면서 "모어(more) HBM"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엔비디아에게는 더 많은 HBM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젠슨 황 "韓 기업과 거대 파트너십 구축…서울에 AI 연구센터 지을 것"
황 CEO는 이 과정에서 취재진 앞에 서서 약 7개월여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제 친구들인 LG, SK, 삼성, 현대, 네이버 모두가 번창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과의 거대한 파트너십을 축하하기 위해 왔다"며 "그들은 정말 잘 해주고 있다. 그들의 주가가 높아서 정말 행복하고, 한국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입국길에 본인이 준비했다고 언급한 '깜짝 선물'에 대해서는 "제가 가져온 큰 선물은 네 가지 새로운 사업 기회다. 베라 루빈, 베라, RTX 스파크, 젯슨 토르"라며 "한국은 매우 바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베라 루빈은 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인공지능 가속기이며, 베라는 이 제품에 들어가는 CPU(중앙처리장치)다. RTX스파크는 에이전틱 AI 기능을 탑재한 새로운 노트북 라인업을 의미한다. 젯슨 토르는 로봇 구동을 위한 엔비디아의 하드웨어다.
황 CEO는 "(한국의) 제 친구들은 매우 좋은 한 해를 보냈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라며 해당 기술과 제품들이 방대한 메모리를 사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메모리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미 베라 루빈에는 두 기업의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 HBM4가 탑재된다. 황 CEO는 RTX스파크와 관련해서도 "많은 양의 LPDDR5 메모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젯슨 토르와 관련해선 "우리는 로보틱스 분야에서 현대자동차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고 언급했다.
황 CEO는 특히 "우리는 한국에 인공지능, 로봇 공학 연구 등을 위한 아주 중요한 AI 연구 센터를 세워 모든 파트너와 협력할 것"이라며 "(센터 후보지는) 서울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현재 채용 중이니 주변에 AI 연구자나 엔지니어가 있다면 엔비디아에 지원하라고 말해 달라"고 말했다.
계산은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2차로 '치맥'까지 3시간 넘게 회동
이처럼 한국과의 깊은 유대 관계를 강조한 황 CEO는 오후 9시쯤 식사를 마쳤으며, 계산은 이 의장이 네이버페이 결제 단말기인 커넥트의 안면인식 시스템을 통해 했다. 식당 안에서는 "네이버"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 의장은 함께 식사했던 주변 손님들의 식사비도 모두 계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해당 만찬에서 그치지 않고, 식당에서 약 250미터 가량 떨어진 BBQ 치킨집으로 이동해 2차 '치맥 회동'을 이어갔다. 지난해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했던 황 CEO는 당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수장과 만나 '치맥 회동'을 하며 크게 주목 받은 바 있다.
황 CEO는 이번에도 "한국식 치킨을 좋아한다"는 말을 수 차례 했는데, 2차 메뉴도 그 때문에 '치맥'으로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3시간 넘게 이어진 이들의 회동은 오후 10시 30분쯤에서야 끝났다.
황 CEO는 다음 주 초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국 기업인들과 연쇄 회동을 갖고, 예능 프로그램까지 출연하며 대중과의 접점 확대에도 주력할 예정이다. 특히 황 CEO는 오는 7일에는 프로야구팀 두산베어스의 서울 잠실 홈 경기에서 시구자로 나서며,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 그룹 회장은 시타자로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두산 그룹은 로보틱스와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엔비디아와 긴밀하게 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