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中 격변 관계에 휘말린 '유령 인생'…'여지'가 필요하다

[유령이 된 탈북자들⑥]
전문가들 "유령 탈북자 위한 제도 개선 시급"
유령 탈북자 위한 예외 규정·특별법 도입 의견
'증명 책임' 탈북자 아닌 국가가 지는 방안도

CBS노컷뉴스 보도에서 소개된 '유령 탈북자'들. 왼쪽부터 김천일씨, 전경수씨와 모친 고(故) 김옥만씨, 윤성화(가명)씨. 이원석 기자·전경수씨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단독]20년 전 '처치곤란 유명인'은 잔반통 뒤지는 노숙인이 됐다
②미국도 '탈북자' 인정했는데…엄마는 '불체자'로 세상 등졌다
③"난 중국말도 못 하는 북한 사람"…난민도 안 되는 '유령'들
④[단독]법무부 '유령 탈북인' 연구용역도 맡겼지만…여전히 방치
⑤'유령 탈북인' 3인, 국적 찾아 나선다…"하나님 부디"
⑥北·中 격변 관계에 휘말린 '유령 인생'…'여지'가 필요하다(끝)

"모든 사람은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UN·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에 담긴 내용이다. 바로 10일 뒤인 같은 달 20일 한국도 국적법을 처음 제정했다. 그로부터 78년, 국내엔 '국적을 가질 권리'를 외면당한 '재북 화교' 후손의 '유령 탈북인'들이 산다.

이러한 무국적 탈북자들의 국적 문제에 대해 국적 업무를 총괄하는 법무부는 줄곧 '법과 규정에 따라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은 관계 기관들의 행정편의주의적 대응을 지적하면서 당장 법·제도 개선을 통해서라도 이들의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아주고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구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가 접촉한 국내 재북 화교 후손 대부분은 부모 중 한 사람이 태생부터 북한사람이거나 중국 혈통이지만 북한 땅에 정착하며 국적을 취득한 경우였다. 따라서 그 자녀들인 유령 탈북인들은 북한 국적법에 따라 '북한 공민'으로 태어났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정하고 있어 북한 주민은 우리 국민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국적법 제2조는 '출생 당시에 부(父) 또는 모(母)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자'는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재북 화교 2·3세들은 한국 국적을 인정받을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들이 국내에 들어와 국적을 인정받지 못하는 주된 근거로 작용하는 규정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진하여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는 규정이 담긴 국적법 제15조가 거론된다. 이들이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얻었기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다. 유령 탈북인들은 과거 북한에서 평범한 주민으로 지내다 갑작스럽게 부모에 의해 북한 내 '화교' 신분을 얻어 외국인등록증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 중국 국적을 회복한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가 격변이었던 1950~60년대 중국에서 건너온 화교들에게 중국 국적을 포기하도록 압박했다가 중국과의 관계 완화 등을 이유로 다시 이들에게 화교 신분을 부여했는데, 이 자체로 일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이들의 국적이나 신분에 대해 정작 중국에선 부인하고 있다.

이규창 통일연구원 인권연구실장이 지난 5월 7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원석 기자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들 배경의 특수성을 고려해 국적법 제15조 1항에 예외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지난 2012년 재북 화교 출신과 같은 무국적 탈북자들 사례와 관련해 '무국적 탈북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대응 방안 모색'이란 연구를 했던 이규창 통일연구원 인권연구실장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인 혈통이라고 하더라도 남북 간의 특수관계와 북한 독재정권의 심각한 인권침해 등으로 탈북할 수밖에 없는 사정 등을 감안해야 한다"며 "국적법 제15조 제1항에 단서 규정을 신설해 '재북 화교 출신 탈북자와 같은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둘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이들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국제인권법 전공인 장복희 선문대 경찰행정법학과 교수는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라 중국말도 할 수 없는 재북 화교 후손 탈북자들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 대해 특별법을 만들어 국적을 부여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이런 문제에 대해선 항상 주권 중심이 아닌 인권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해외에선 단 한 사람을 위해서 특별법을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국적 판단에 있어 증명 책임을 무국적 탈북자들이 아닌 국가가 부담하는 식으로 제도 개선도 필수적이란 목소리가 여럿 나온다. 현행법 안에서도 부모 중 일방이 북한 주민이거나 태생부터 북한 국적을 가졌던 유령 탈북인들은 법무부에 '국적판정'이나 '국적회복'을 신청해 국적에 대한 판단을 받아볼 수 있다. 국적판정은 한국 국적의 보유 여부 등이 분명하지 않을 때, 국적회복은 과거 한국 국적을 보유했다가 상실한 사람이 신청하는 절차다. CBS노컷뉴스 보도에서 소개된 3명의 유령 탈북인들도 현재 법률전문가들과 함께 국적판정 절차를 밟을 준비를 하고 있다.(관련 기사: '유령 탈북인' 3인, 다시 '국적판정' 나선다…"하나님 부디")

그러나 대개 무국적 탈북자들이 이러한 절차들을 밟을 때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증명'의 어려움이다. 폐쇄적인 북한의 특성상 자신의 과거 북한 출생이나 거주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당 절차에선 증명의 책임을 주로 탈북자 본인이 지운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2018년 나온 '재중탈북자의 국적 문제와 보호 방안 연구'(윤병율)에선 국적법 제20조(국적판정) 1항에 '이 심사에 법무부, 통일부, 국정원 등 관계 기관이 합동으로 심사하여야 한다'는 단서 규정을 신설해 증명 책임을 관계 기관이 함께 지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규창 인권연구실장도 이와 관련해 일반적인 무국적자와 탈북자 대상 국적판정을 이원화하고 국가가 입증 책임을 부담하는 식으로 제도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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