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투표 용지 부족 사태의 여파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사무총장이 각각 사퇴하거나 사의를 밝혔다.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대는 선거가 끝난 지금까지도 투표함 이송을 막고 있다. 이 틈을 타 부정선거론자들과 극우 세력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7일 기자회견을 갖고 전국적인 재선거 실시와 사전 투표제 폐지, 대통령과의 회동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우선 장 대표의 전국적 재선거 주장은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하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 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일시 중단됐던 투표소는 전국 1만 4288곳 가운데 22곳이다. 나머지 1만 4266곳은 투표 용지 부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거나 투표에 차질을 빚지도 않았다.
전국적인 재선거는 대규모 선거 불복 사태를 불러 올 것이 훤하다. 재선거 결과 당락이 바뀌게 된다면 승리했다가 패배한 후보자들이 재선거 결과를 순순히 받아 들일 리 만무하다. 선거 무효 소송 등 선거 불복 사태가 전국적으로 번질 것이다.
선거 불복 뿐만 아니라 재선거 과정의 극심한 혼탁도 예상된다. 재선거에서 본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한 각종 합종연횡과 정치적 거래, 역선택 등이 전국적으로 난무할 수 있다. 이는 대규모 당선 취소나 선거 무효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또다시 선거를 해야 하는 악순환을 불러 온다. 반복되는 선거에 비용 낭비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 3일 투표에서 당선이 확정된 당선자들은 전국적 재선거 주장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장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나 유의동 경기도 평택을 국회의원 당선자 등 국민의힘 당선자들에게 '전국' 재선거를 치러야 할지 먼저 물어보라.
장 대표는 이번 사태를 빌미로 사전 투표 제도를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사전 투표제는 지난 2012년 여야가 합의해 도입한 제도다. 투표율이 갈수록 하락해 2008년 제18대 총선 투표율이 46%까지 떨어지자 투표 편의성을 높인 사전 투표제를 도입한 것이다. 부재자 투표와 달리 사전 신고 없이 아무 투표소에서나 투표할 수 있는 사전 투표제 도입 이후 투표율은 60% 대로 뛰어올랐다.
그럼에도 장 대표가 사전 투표제 폐지를 주장한 배경에는 사전 투표에서 보수 정당의 지지세가 약한 것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사전 투표에서 부정 선거가 횡행하고 있다며 사전 투표제 폐지를 고집스럽게 주장해 왔다. 장 대표가 투표 용지 부족 사태와는 아무 관련 없는 사전 투표 제도까지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다분히 정략적이다.
장 대표는 또 선관위와 함께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이 공범'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는 기본적으로 선관위의 무사안일에서 비롯됐다. 정부 여당이 보수 유권자들의 투표를 막기 위해 이번 사태를 작당했을 리 없다. 정부 여당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곧 들통나 전국민적 저항을 불러 일으킬 자충수를 둘 합리적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과 회동을 요구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겠다는 취지다. 장 대표는 그러나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의 정당 대표 회동 요구에 단식 농성을 이유로 불참했다. 2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양자 회동을 요구했지만 정작 8일 뒤 청와대에서 열린 3자 회동에는 또 불참했다. 민주당이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장 대표가 전하지 않아도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뚜렷이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대통령은 즉각 '유감'을 표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검경 합동 수사를 지시했다. 여당 역시 국정조사 방침을 확정하고 필요할 경우 특검까지도 할 계획이다.
장 대표의 전국적 재선거 실시와 사전 투표제 폐지 주장 등은 이처럼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해 사태의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될 수도 없고 받아 들여지지도 않을 주장을 고집하는 것은 책임 정치가 아니다. 책임 정치는 여당만의 몫은 아니다. 야당도 책임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