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마지막 주말 파주의 한 대형아울렛을 찾았다. 아내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고가 명품부터 합리적 가격의 스포츠 브랜드 매장까지 손님들이 넘쳐났다. 우리 경제가 진짜 잘나가는 것 같았다.
결제를 하면서 매장 직원에게 '손님이 정말 많다'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직원은 "다 주식 덕분이죠"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옷을 고르면서도 주식 얘기를 해요. 온 세상이 주식에 빠진 것 같아요"라고 했다. 전날 코스피는 8400선을 넘어섰다.
이틀 뒤 월요일 코스피는 9천선을 눈앞에 두게 됐다. 점심시간 식당 안은 '삼전닉스', '반도체' 소리로 가득찼다. 주식 얘기를 하지 않는 테이블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방선거를 마친 코스피는 거짓말같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5일 금요일 밤 미국 증시의 반도체주가 급락하자 8일 코스피는 7400대까지 8% 넘게 주저앉았다. AI 혁명에 따른 반도체 초호황을 타고 고공비행하던 국내 증시가 한 방에 추락한 것이다.
AI는 거품이고 그 거품이 터진 것일까? 투자자들, 특히 포모(FOMO)를 견디지 못하고 뒤늦게 '빚투'로 추격매수에 나선 투자자들은 불안감에 퍼렇게 질려가고 있다.
시간을 되돌려 1990년대 후반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미국은 듣도 보도 못한 인터넷이란 미래기술로 흥분에 빠져 있었다. '.com'이란 멋져 보이는 이름이 붙은 기업들에 돈이 쏟아졌고 미국 증시는 미친 듯이 날아 올랐다. 현재 실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미래 기대감에 투자자들은 무지성으로 올인했다. 주가는 수십 배씩 튀어 올랐다.
1995년부터 2000년 3월까지 미국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불과 5년 만에 7배나 오르며 5천선을 돌파했다. 한국 코스닥은 더 극단적이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과 맞물리면서 코스닥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센 광풍이 불었다. 1998년 말 600선(현재 지수 환산치)이던 코스닥 지수는 2000년 3월 10일 2900선까지 돌파했다. 당시 새롬기술은 6개월 만에 주가가 150배 넘게 폭등했다. 그야말로 광기였다. 이를 후대는 '닷컴버블'이라 부른다.
2000년 3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이은 금리 인상에 '빛 좋은 개살구'인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드러나면서 거품은 순식간에 꺼졌다. 나스닥 지수는 7개월 만에 78%가 폭락하며 시가총액 5조 달러(당시 환율 기준 6천조 원)가 증발했다. 나스닥이 다시 5천선을 회복하는 데는 1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코스닥은 오른 속도만큼 초고속으로 붕괴했다. 9개월 만에 80% 넘게 폭락했다. 투자자들의 자산은 신기루처럼 날아갔다. 1년 사이 사상 최고치와 사상 최저치를 동시에 갈아치운 유일한 기록이었다.
AI도 버블일까? 전문가들은 반도체를 비롯한 AI 기업들은 실제 엄청난 실적을 내고 있는 만큼 닷컴과는 다르다고 한다. 일시적인 조정은 장기 상승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한다. 일각에선 다시 주어진 저점매수 기회라고도 한다. 다행히 간밤에 미국 증시는 반등했지만 쉽사리 걱정을 떨쳐낼 수 없다.
일단 이재명 대통령은 "맨날 오를 수만도, 내릴 수만도 없고 적정한 가격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이 대통령은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내 증시가) 아직도 약간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한다"며 "(코스피 상승은)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주식 투자자로서 이 대통령의 예측대로 코스피의 하락이 단기조정이고, 중장기적으로는 우상향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을 성공의 비용이자 도약의 마찰음으로 과소평가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7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즉 성장 동력이 지난해 1.85%에서 올해 1.66%, 내년에는 1.46% 계속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역대 최저치이다. 10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외부에선 단순한 마찰음이 아니라 위기의 신호로 자꾸 오독한다. 혹시 오독이 아니고 정확한 진단이면 어떡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