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韓기업들과 AI 동맹 전방위 강화…하루도 안 쉬었다

반도체부터 로봇·인프라까지 전방위 결속
'베라 루빈' 맞춤형 부품 독점 공급
새만금에 'AI 밸리' 조성하자는 현대차에 화답하기도
'아이작 그루트'로 LG와 휴머노이드 공동 개발
네이버·SKT와 손잡고 'DSX' 전격 도입
엔비디아 생태계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되새겨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해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메모리 반도체 공동 개발은 물론 AI(인공지능) 팩토리를 함께 만들고, 엔비디아 플랫폼을 국내 기업의 하드웨어에 이식하는 로봇 동맹까지 전방위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 중심이었던 협력 구조를 차세대 먹거리인 'AI 데이터센터(AIDC)'와 '피지컬 AI(로봇·자율주행)' 전반으로 확장한 것이다.

글로벌 AI 산업계의 선두주자인 엔비디아와의 교집합 확대는 한국 산업계 전반에 분명 득이 되는 일이지만, 일각에는 AI 기술 개발 측면에서 엔비디아 기술에 종속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설계부터 '원팀'… 삼성·SK와 최고 수준 동맹 구축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서울 종로구 SK 서린빌딩에서 열린 엔비디아-SK 협력 관련 언론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젠슨 황은 방한 일정 마지막날인 전날까지 그야말로 종횡무진 서울과 수도권을 누볐다.

SK 서린빌딩을 시작으로 LG사옥, 서울대, 현대차 양재동 사옥, 네이버 분당 사옥,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경영진 면담에 이어 스타트업 간담회까지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반도체 부문에서는 엔비디아의 핵심 근간인 초고성능 AI 가속기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차세대 반도체의 설계 단계부터 협업하는 최고 수준의 동맹을 맺었다.

삼성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부회장)은 젠슨 황과 7·8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4E와 HBM5의 공급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전 부회장은 "내년부터는 HBM4E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비즈니스, HBM5 등 장기적인 협력도 많이 이야기했다"며 "단기적으로는(엔비디아에) 올해부터 HBM4나 SOCAMM(소캠·서버용 저전력 메모리 모듈)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파운드리 협력 확대 관련 논의에 대한 질문에는 "저희가 4나노와 8나노에서 필요한 자율주행 칩과 엔비디아의 액셀러레이터 칩인 그록 칩에서 협력하고 있고 그다음 세대의 협력도 같이 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삼성전자는 본격 양산에 돌입한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업계 최고 수준인 11.7Gbps 이상의 성능을 구현한 6세대 HBM4(초고속 메모리)를 공급하고 있다. 베라 CPU에는 LPDDR5X 기반 'SOCAMM(소캠)2'를, 스토리지 영역에는 PCIe Gen6 기반 'PM1763' 등을 공급 중이다. 최근에는 최선단 1c D램 코어 다이와 자체 파운드리 4나노 공정 베이스 다이를 결합해 최대 16Gbps 대역폭을 구현한 7세대 제품 'HBM4E'의 샘플까지 세계 최초로 엔비디아에 공급했다.

SK그룹과는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AI 팩토리 구축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젠슨 황은 양사 간 협업 방향에 대해 "AI 팩토리를 성장시키는 것을 넘어 파트너십을 다각화하고, 나아가 로보틱스와 기타 컴퓨팅 플랫폼 분야로까지 그 영역을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엔비디아와의 협력은 그간 주로 메모리 분야의 협력이었는데, 지금부터는 그 차원을 더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AI 인프라, 개인용 AI, 피지컬 AI 등 엔비디아가 개척하는 AI 분야 신시장에도 진출한다. 양사는 베라 루빈, 베라, RTX 스파크, 젯슨 토르용 메모리를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 베라 루빈은 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인공지능 가속기이며, 베라는 이 제품에 들어가는 CPU(중앙처리장치)다. RTX스파크는 에이전틱 AI 기능을 탑재한 새로운 개인용 PC 라인업을 의미한다. 젯슨 토르는 로봇 구동을 위한 엔비디아의 하드웨어다. 황 CEO는 이 모든 제품에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가 쓰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엔비디아-韓기업 피지컬 AI 체제 완성하나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를 찾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젠슨 황은 AI 알고리즘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할 '몸통'으로 현대차그룹, LG, 두산을 낙점하고 피지컬 AI 생태계 확장에 속도를 낸다.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새만금 사업에 힘을 보태기로 한 점이다. 젠슨 황은 전날 정 회장과의 회동을 마친 뒤 "정의선 회장이 새만금에 엔비디아를 구축하도록 나를 초대했다"며 "나는 새만금에 엔비디아를 구축하는 것을 매우 기꺼이 할 것이라고 답했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투자 규모나 시점 등은 미정이지만 AI·로보틱스·데이터센터를 아우르는 'AI 밸리'를 조성하기로 뜻을 모은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전북 새만금에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활용해 상용차 자율주행 실증 및 그린수소 생산·모빌리티 생태계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보유한 AI 슈퍼컴퓨팅 아키텍처인 DSX와 로봇 특화 플랫폼 인프라를 결합해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AI 팩토리'와 데이터센터를 통합할 수 있다. 향후 현대차그룹이 제조할 지능형 로봇과 자율주행 모빌리티의 핵심 '뇌'를 생산하는 거점이 될 수도 있다.

엔비디아는 LG그룹과 '아이작 그루트(Isaac GR00T)'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휴머노이드 로봇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LG그룹의 가전 제조 노하우와 고도화된 하드웨어 기술력에 엔비디아의 로봇 플랫폼을 이식해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고난도 가사 노동이나 산업 현장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완성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두산그룹과는 정밀 제어가 핵심인 산업용 협동로봇의 지능화 작업을 가속화한다. 두산이 보유한 정밀 기계 제어 기술에 엔비디아의 실시간 AI 연산 및 비전 기술을 접목해, 작업 환경을 스스로 인식하고 사람과 안전하게 협동하는 지능형 로봇 시스템을 고도화할 방침이다. 나아가 양사는 두산의 대형 산업용 장비 관리와 제조 공정 전반을 최적화하는 AI 팩토리 솔루션 부문에서도 기술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젠슨 황은 이번 방한을 통해 현대차와는 AI 모빌리티·로봇 뇌 생산 기지 구축을, LG와는 인간형 휴머노이드 로봇 공동 개발을, 두산과는 산업용 협동로봇의 지능화 및 제조 공정 혁신을 각각 추진하기로 하며 전방위적인 '피지컬 AI 맹주 체제' 기초 공사를 다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AI 팩토리 허브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5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고깃집에서 국내 기업 총수들과 만나 '삼쏘(삼겹살·소주) 회동'을 마치고 취재진 앞에서 포즈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LG그룹 구광모 회장, 네이버 이해진 의장, 황 CEO, SK그룹 최태원 회장. 황진환 기자

젠슨 황의 걸음은 반도체와 로봇에서 멈추지 않았다. 국내 주요 기업의 ICT 인프라 역량을 엔비디아의 생태계와 결합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네이버, SK텔레콤(SKT) 등과 손잡고 엔비디아의 DSX AI 팩토리 레퍼런스 디자인을 전격 도입한다. 엔비디아 DSX는 칩·시스템부터 인프라 소프트웨어·시설·파트너 기술까지 풀스택 전반에 걸쳐 AI 팩토리의 설계·구축·최적화 방식을 정의하는 플랫폼이다.

SKT는 엔비디아의 클라우드 파트너로서 기가와트(GW)급 초대형 AI 데이터센터(AIDC)를 구축해 아시아 인프라 확장의 전초기지 역할을 맡는다.

네이버와 엔비디아는 초대형 데이터센터 '각 세종'에 엔비디아의 최신 GPU를 대거 유치해 개별 국가의 문화와 규제에 맞춤화된 '소버린(Sovereign) AI' 생태계를 공동 구축해 글로벌 시장에 동반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네이버 이해진 이사회 의장은 "이번 동맹을 통해 전 세계 각 지역과 국가가 독자적인 소버린 AI 역량을 구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고무적이다"라며 " 네이버가 보유한 기술 인프라 경쟁력이 글로벌 시장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협력에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달콤한 독사과 될라…기술 종속은 경계해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서울대학교 해동첨단공학관에서 열린 '빌드어클로(Build-a-Claw)' 행사장을 찾아 강연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젠슨 황이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잇따라 만나는 등 광폭 행보를 하는 사이 산업계 일각에선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무조건적인 환호를 하기보다 기술 자립 전략도 반드시 세워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한 IT업계 전문가는 "엔비디아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공급망이 필요한데 (그 핵심은) 한국의 HBM"이라며 "최종 단계에서는 데이터 센터와 그걸 활용할 피지컬 AI, 즉 현대차와 두산(도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메모리 공급 능력과 하드웨어 인프라가 엔비디아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필수적인 만큼, 젠슨 황이 직접 마케팅을 펼쳤다는 해석이다.

특히 AI 센터에 대해서는 득실을 더 면밀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부가 국산 데이터 주권을 지키는 '소버린 AI' 정책을 총력 추진 중인 상황에서, 국내 전력과 인프라 자원이 엔비디아 주도의 생태계에 잠식당할 경우 국가적 자원 낭비는 물론 기술 자립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막대한 국가 자원이 투입되는 인프라 부담에 비해 고용 창출이나 부가가치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관계자는 "(젠슨 황의 행보를 보면) 엔비디아의 피지컬 AI 생태계 안에 들어오라는 것"이라며 "엔비디아의 플랫폼을 뼈대로 삼아 기술을 개발하면 당장 편하지만, 개발 뒤 우리 기업들이 자립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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