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현장의 경고를 수 시간 동안 파악조차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선관위와 시·군·구 선관위 사이 보고 체계 전반이 먹통이었기 때문이다.
10일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실이 중앙선관위에게 제출받은 '송파구 투표용지 부족 사태 경과' 자료 등에 따르면, 송파구선관위는 선거 당일인 지난 3일 오전 11시 40분쯤 서울시선관위에 투표용지 부족 가능성에 대비해 시위원회 보관 투표용지의 일련번호 부여 여부를 문의했다.
그 직후인 오전 11시 58분 송파구 오금동 투표소에서 송파구선관위에 투표용지 부족 대처 방안을 문의했다. 실시간 투표율을 모니터링하던 송파구선관위와 투표소 현장 양쪽에서 비슷한 시각 경고음이 울린 것이다.
이어 송파구선관위는 오후 1시 45분 일련번호가 없는 무번호 투표용지 500장을 사용하기 위해 재차 일련번호 부여를 요청했다. 오후 3시 5분에도 무번호 투표지 추가 불출을 위한 2차 문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중앙선관위가 공식적으로 사태를 처음 인지한 시점은 오후 4시 25분이었다. 선거상황실이 가락2동 제3투표소의 투표용지 부족과 관련한 민원인 전화를 받고서야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결국 중앙선관위는 내부 보고 체계가 아닌 유권자 항의를 통해 투표용지 부족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셈이다.
실제 보고서에는 오후 4시 25분 이후 선거안내센터 등에 다수의 항의 전화가 접수됐고, 오후 6시 20분이 돼서야 송파구 10개 투표소와 강남구·광진구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 부족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서울시선관위가 송파구에 회신을 준 것은 최초 문의 후 5시간 넘게 지난 오후 5시 10분쯤에서였다. 무번호 투표용지 소진을 재확인한 후 관내 인근 투표소에 있는 여유분을 회수해 옮기라고 안내한 것이다. 중앙선관위 선거상황실도 비슷한 시각 투표용지 부족 수량 및 수령 여부 파악에 나섰다. 사실상 투표가 끝날 무렵에서야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가 행동에 나선 것이다.
서울시선관위 관계자는 중앙선관위와 시·군·구 선관위 사이 보고 체계 등 당시 상황과 관련해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상황 설명이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는 "서울시선관위가 무번호 투표용지 500매씩을 추가 배분하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중앙선관위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양부남 의원실에 설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선관위가 파악한 원인 '넷'
또 선관위가 국회 각 정당의 원내대표실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는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인쇄비율 부적정 △상황판단 부족 △가이드라인 부재 △위기대응 체계 부재 등 네 가지를 꼽은 것으로 파악됐다.선관위는 자료에서 "과거 선거 투표소별 투표율을 고려하지 못한 인쇄비율 산정이었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선거 지침을 바꿔 '전체 유권자 수의 50%'로 용지 인쇄비율 하한선을 낮췄다. 전국 256개 시·군·구 선관위 중 이 지침을 따라 유권자 수의 50%만 용지를 인쇄한 곳은 34곳(13.3%)에 그쳤다. 서울 내 송파구보다 투표율이 낮은 구들도 다수가 60% 기준을 적용했다.
상황판단 부족으로는 "(선거일 전일) 사전투표율 고려 투표용지 교부 시 무번호 투표용지를 함께 배부하는 방안 등 대책 미고려"라며 "(선거일) 전체적인 부족 상황 파악 없이 요청 투표소에 한해 제한적인 대응, 이후 동시다발적인 부족 상황에 대처 불가"라고 자료에 명시했다.
가이드라인 부재와 관련해서는 "선거별 일련번호 기재, 추가 교부매수 기준, 배부 절차 등 부재로 대응 가능한 시간 실기"라면서 "투표용지 부족 상황 발생 시 업무처리 절차·역할 분담 등 구체적인 기준 부재"라고 분석했다. 위기대응 체계 부재로는 "6~13명의 소수 인원으로 투표관리, 우편투표 접수, 개표관리 등 짧은 시간에 다중 업무처리로 선거기간 중 만성적 인력 부족"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선거당일은 개표소에서 개표사무원 및 개표참관인 교육, 투표지분류기 시험운영 등 개표관리 준비 및 사무실 내 민원업무 폭증으로 사실상 투표소 사건‧사고 시 신속한 대응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아니라 현장 보고, 상황 전파, 의사결정 체계 전반이 흔들린 결과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앙선관위는 이날부터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를 운영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