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사후 100주기를 맞아 그의 사유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록 '레우스 수기'가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됐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카사 밀라, 카사 바트료, 구엘 공원 등을 남긴 20세기 대표 건축가다. '곡선의 마술사', '신의 건축가', '광기의 천재'라는 수식으로 기억되지만, 정작 그가 직접 남긴 글은 많지 않다.
1936년 성가정 성당 부지 안 작업실이 불타면서 모형과 도면, 노트 등 원본 자료 상당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레우스 수기'는 가우디의 건축 세계를 작품 밖에서, 그것도 그의 목소리로 들여다볼 수 있는 드문 1차 자료다.
책의 중심을 이루는 '레우스 수기'는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서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한 1873년부터 졸업 이듬해인 1879년까지 7년 동안 사용한 노트다. 현재 레우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며, 가우디의 실제 필체로 남은 유일한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기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다. 막 건축가의 길에 들어선 청년 가우디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남긴 단상에 가깝다. 그래서 화려한 완성작 뒤에 가려져 있던 그의 고민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우디는 장식을 단순한 꾸밈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장식은 대상에 성격을 부여하는 본질적인 요소"라고 보면서도, 불필요한 장식은 오히려 본래의 의도를 흐린다고 적었다. 장식은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기능, 비용과 제작 방식까지 함께 고려해야 할 문제였던 셈이다.
빛과 그림자, 재료에 대한 감각도 곳곳에 드러난다. 그는 훌륭한 결과를 얻고 형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드로잉을 강조하며, "드로잉에는 항상 그림자가 표현되어야 한다"고 썼다. 야외 조각은 자연광 속에서 본질을 드러내고, 실내 회화는 촛불과 어울릴 때 고유한 빛을 얻는다고도 보았다.
책은 흔히 '영감의 건축가'로 소비돼 온 가우디의 이미지를 다른 방향에서 보여준다. 그는 감각적인 천재이기 이전에 구조, 대비, 건설, 재료, 효율을 집요하게 따진 건축가였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건축이 무엇인지, 기존 양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제작 방식과 생활 조건까지 다시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거에 대한 글에서도 그의 문제의식은 구체적이다. 가우디는 도시의 집이 채광과 환기, 방의 독립성을 잃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윤 중심의 도시 개발 속에서 '가문의 집'이 사라지는 현실을 비판했다. 건축은 보기 좋은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조건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었다.
책의 뒷부분에는 가우디가 시장에게 보낸 공식 서신, 설계 설명서, 일간지에 기고한 유일한 기사글 등이 함께 실렸다. 이 글들은 청년 시절 노트에 머물던 생각이 실제 건축과 공공의 언어로 어떻게 확장됐는지를 보여준다.
'레우스 수기'의 출간은 가우디 사후 100주기와 맞물려 의미를 더한다. 그의 대표작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이 여전히 세계의 관심 속에 완성을 향해 가는 시점에, 이 책은 완성된 건축물이 아니라 그 건축을 가능하게 한 생각의 출발점을 비춘다.
안토니 가우디 지음 | 이병기 옮김 |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