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외교는 흔히 '중립외교'라는 말로 기억된다.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완전히 기울지 않으려 했던 현실적 선택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그 외교는 왕의 판단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계승범의 신간 '상놈과 국왕'은 광해군의 외교를 조정 대신들이 아닌 한 평민 통역관의 시선에서 다시 읽는다. 주인공은 평안도 만포에서 여진어 통역을 맡았던 향통사 하서국이다.
하서국은 양반 관료가 아니었다. 변방에서 군역을 지던 평민이었고, 그의 아내는 노비였다. 신분제 사회 조선에서 양반들이 '상놈', '상것'이라 부르던 존재였다. 그런 그가 후금의 도성 허투알라와 조선을 오가며 광해군과 누르하치를 잇는 비밀 통로가 됐다.
책은 광해군 재위 기간 조정을 뒤흔든 두 논쟁 가운데 명과 후금 사이 외교 노선을 둘러싼 갈등을 다룬다. 저자의 전작 '모후의 반역'이 인목대비 폐위 논쟁을 통해 충과 효의 충돌을 다뤘다면, 이번 책은 명에 대한 사대 의리와 후금의 군사적 압박 사이에서 광해군이 택한 이중외교를 추적한다.
17세기 초 동아시아 정세는 급변했다. 누르하치는 만주의 건주여진 세력을 통합하고 1616년 후금을 세웠다. 1618년에는 요동의 무순을 공격해 명나라를 압박했다. 명은 조선에 파병을 요구했고, 조선 조정 대다수 신료는 임진왜란 때 명이 베푼 은혜를 들어 참전을 주장했다.
광해군의 판단은 달랐다. 명을 돕기 위해 무리하게 파병하면 후금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고 봤다. 병농이 분리되지 않은 조선에서 갑작스러운 병력 동원은 국경 방어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도 있었다.
이때 후금과 조선 사이의 말을 옮긴 인물이 하서국이었다. 누르하치가 "명과 후금의 전쟁은 조선과 상관없으니 끼어들지 말라"는 취지의 서신을 보내왔을 때, 그 차관을 상대한 이도 하서국이었다.
요동전쟁이 벌어지자 하서국의 역할은 더 커졌다. 광해군이 명의 압박을 받아 강홍립을 도원수로 삼아 조선군을 파견했을 때, 하서국도 통사이자 길잡이로 출정했다. 그는 누르하치에게 조선은 후금과 싸울 뜻이 없었고 명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실록과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이런 설명이 후금의 보복 침공을 피하려 한 광해군의 뜻이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하서국은 국왕의 명을 받아 후금의 국서를 조선에 전달했고, 광해군을 직접 알현한 뒤 화친 의사를 누르하치에게 구두로 전하는 임무도 수행했다.
그는 단순한 통역관이 아니었다. 명을 섬겨야 한다는 조정의 숭명배금 분위기 속에서 후금과의 대화를 이어가려 한 광해군의 '그림자 외교관'이었다.
그러나 하서국의 외교는 오래가지 못했다. 후금이 요동을 장악한 뒤 정세가 급변했고, 하서국은 1622년 봄 후금에서 처형됐다. 책은 그 배경으로 조선 비변사의 모호한 태도, 후금 내부 강경파의 부상, 하서국의 간첩 행위 탄로 등을 짚는다.
하서국의 죽음 뒤 후금은 조선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왔다. 광해군은 명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후금에 우호적인 국서를 보내려 했지만, 조정 신료들의 반발은 거세졌다. 명나라를 군부로 섬겨야 한다는 사대 의리의 세계관 속에서 광해군의 외교는 정통성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광해군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났다. 하서국이 후금 강경파의 손에 처형된 지 1년 만이었다. 저자는 전략가 광해군과 실행자 하서국이 각각 조선과 후금의 강경파에 의해 정치적·물리적으로 제거됐다고 본다.
'상놈과 국왕'은 광해군 외교를 미화하거나 단순한 실리외교로 정리하지 않는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자위력을 갖추지 못한 조선이 어떤 외교적 한계에 놓였는지, 그리고 그 위태로운 틈새에서 하서국 같은 변방의 실무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책은 광해군의 외교를 왕의 결단이나 조정의 명분만으로 보지 않는다. 기록의 바깥에서 목숨을 걸고 말을 옮긴 실무자들이 조선 외교의 또 다른 축이었음을 보여준다.
계승범 지음 | 역사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