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민간단체 기후변화센터가 주도하고 SK그룹과 한국전력공사, 한국남동발전 등 한국 기업이 투자한 미얀마 쿡스토브 보급 사업이 2021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의 인권침해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얀마가 내전으로 인명 피해와 강제이주, 식량불안 등을 겪고 있어 해당 사업에 대한 정상적인 감축량 모니터링이 불가능한 상황을 고려할 때,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으로부터 인정받은 배출권이 엉터리로 부풀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도 거론된다.
기후시민단체 플랜1.5는 최근 미얀마정책연구소(Myanmar Policy Institute), 글로벌산림연합(Global Forest Coalition), 깁슨기후정의연구소(Gibson Climate Justice Lab), 바이오퓨얼워치(Biofuelwatch)와 공동으로 '논란에 휩싸인 탄소 크레딧 - 미얀마, 반인도적 범죄, 그리고 유엔의 '높은 무결성 탄소시장'이 직면한 신뢰성 위기' 보고서를 발간했다.
기후변화센터는 기존에 추진하던 미얀마 쿡스토브 보급 사업에 대해 파리협정 6.4조 메커니즘(PACM: Paris Agreement Carbon Mechanism)에 따라 기존 사업을 전환 신청, 올해 2월 감축량을 전 세계 최초로 인정받은 바 있다.
PACM은 교토의정서상 청정개발체제(CDM)를 대체한 것이다. CDM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수행하면 그 감축실적 일부를 선진국의 감축실적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CDM 체제에서 해당 사업은 100만 톤이 넘는 잠정 감축량을 인정받기도 했다.
쿡스토브는 나무 땔감·숯 등을 연료로 한 고효율 조리기기로, 열효율이 높아 기존 재래식 취사도구보다 연료 사용량이 적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미얀마 지역에 기존 저효율 조리기기를 고효율 조리기기로 대체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하고, 2021년 UNFCCC에 등록돼 감축량에 대해 배출권을 발행해 온 것이다.
문제는 해당 사업이 쿠데타 발생(2021년 2월 1일) 이전에 등록됐음에도 불구하고, 쿠데타 이후 아무런 조치 없이 군부 협조하에 해당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사업의 현지 파트너(Dry Zone Greening Department, DZGD)는 2021년 쿠데타 발생 이후 군부 통제 하에 놓여 있는 천연자원환경보전부(MONREC) 관할이다.
보고서는 해당 사업이 군사 정권의 탄압이 가장 심한 지역에서 수행됐으며, 제대로 된 인권영향평가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군사 정권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민간인 가정에서 발생한 배출권이 우리나라의 감축 목표(NDC) 혹은 대기업들의 배출 규제 회피에 활용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봤다.
고효율 조리기기를 보급한 지역은 주로 사가잉(Sagaing), 마그웨이(Magway), 만달레이(Mandalay)인데, 배출권 발급 대상 기간(2021년 1월~2022년 5월) 해당 지역에서 총 1153건의 정치적 분쟁과 물리적 공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중 298건은 군부가 민간인을 상대로 자행했다는 것이다.
자우 투셍(Zaw Tuseng) 미얀마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사가잉 지역에서 미얀마 군사 정권이 배출권 발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데이터는 검증이 불가능하며, 허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중립적이고 분쟁 영향을 고려한 감사를 실시할 수 있을 때까지 배출권 이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플랜1.5는 이 같은 국제사회 반발에도, 해당 사업에서 발급된 배출권이 우리 기업의 규제 이행 목적으로 활용돼 온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수연 플랜1.5 정책활동가는 "기후변화센터의 사업은 인권, 성평등, 환경적 무결성(Environmental Integrity) 등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부적격 사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정부는 품질이 낮고 ESG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배출권이 대기업들의 규제 이행과 NDC에 활용되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기후정책에서 탄소상쇄(Carbon Offsetting) 방식의 배출권 사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탄소상쇄는 기업이나 국가가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대신, 다른 국가 또는 지역에서 이뤄진 온실가스 감축 사업의 실적을 구매해 자신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받는 방식이다.
정부가 2035년 국제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으로 설정하면서 잡은 국제감축 부문 목표치는 마이너스(-) 2980만~3400만 이산화탄소환산톤(tCO2eq)이다.